기사입력 2008.04.01 08:38 / 기사수정 2008.04.01 08:38
[엑스포츠뉴스=이상규 기자] 4월 1일 만우절이네요.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일화를 전하려고 합니다, 바로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의 립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말, 저는 퍼거슨 감독 "박지성이 있어 측면 걱정 없어'라는 내용의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이 기사는 유독 반응이 좋았는데, 바로 그날이 박지성의 출전이 유력해 보인 아스톤 빌라와의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경기 하루 전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많은 독자분께서 이구동성으로 "이번에도 퍼거슨 감독이 터뜨렸구나"라며 그의 특기(?)인 '립서비스'에 속지 않겠다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교롭게도 당시 박지성은 2경기 연속 결장에 이어 결국 아스톤 빌라전에서도 퍼거슨의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레 립서비스에 대한 불쾌감이 고조됐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립서비스'를 사전적인 뜻을 찾아보면 '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상대방이 공감하기 좋다록 하는 것을 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작년 11월에도 라이벌 아스날전을 앞두고 "그들이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을 얻는 것이며 아르센 벵거 감독에게 도움되는 일이다"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팀에는 도리어 듣기 좋은 소리(?)를 전합니다.
한국과 관련된 일화도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2006년 "한국 선수를 한 명 더 영입하고 싶다"며 한국 언론과 축구팬들의 큰 기대감을 안겨줬지만 해당 선수에 대한 구체적인 영입 작업은 없었습니다.(그는 지난해 7월 한 공중파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에 관심 있다는 표시를 했었지만 한국팬들을 들뜨게 하는 특유의 멘트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여겨집니다.) 설득력 넘치는 그의 말이 한국 축구에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은 역시나 2007/08 시즌에도 립서비스를 내뱉으며 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게 했습니다. 아래는 퍼거슨 감독의 이번 시즌 립 서비스 예입니다.
"나는 누구도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2007년 7월 11일 트라이벌 풋볼)
퍼거슨 감독은 2007/08 시즌을 앞두고 앨런 스미스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방출설을 일축했습니다. 당시 여러 언론에서는 맨유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력을 펼친 몇몇 선수들의 방출설을 집중 거론하자 퍼거슨 감독이 그 선수들을 감싸는 표현을 쓰며 루머를 일축한 것이죠.
그러나 맨유에서 부진한 활약을 펼친 스미스와 키어런 리차드슨은 끝내 맨유를 떠나 각각 뉴캐슬과 선더랜드로 이적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잔류시키려고 애썼던 가브리엘 에인세 마저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죠. 방출설을 부정했던 그의 발언은 그저 무의미했습니다.
"맨유에겐 덩팡저우, 프레이저 캠벨, 데런 깁슨, 리 마틴, 크리스 이글스와 같은 좋은 선수들이 있다. 헤라르도 피케, 조나단 에반스, 데니 심슨 또한 훌륭한 선수다"(2007년 9월 7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
퍼거슨 감독은 팀의 벤치 선수들이 경기 출전이 적은 것에 절대 낙심하지 말라는 멘트를 날렸습니다. 언뜻 보면, 적절한 비유로 선수들의 용기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칭찬입니다.
그러나 10 여일 뒤 맨유가 벤치 멤버들을 앞세운 칼링컵 커번트리 시티전에서 0-2로 패하자 화가 난 퍼거슨 감독은 당시 경기에 뛰었던 일부 선수들을 임대 보내는 채찍을 선사했습니다. 몇몇 선수가 퍼거슨 감독이 요구하는 기량에 미치지 못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벤치 멤버의 기량이 좋다고 큰소리쳤던 그의 발언은 소위 '분위기 띄우기' 용이었죠.
"나니는 맨유에서의 미래가 밝다"(2007년 10월 11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
당시에는 립서비스로 여겨졌던 발언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시즌 초반 들쭉날쭉한 경기력과 EPL 적응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은 나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에 축구팬들은 2000년대 맨유에서 실패했던 유망주 클레베르손과 다비드 벨리옹의 예를 들며 단순히 선수를 띄워주기 위한 특유의 립 서비스가 아니냐고 의문을 품었죠.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졌습니다.
"마틴 욜 감독은 런던 최고의 감독"(2007년 10월 28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
퍼거슨 감독은 마틴 욜 토트넘 감독이 경질되자 이 같은 말을 내뱉으며 아쉬워 했습니다. 그는 욜 감독이 철저한 중위권 팀이었던 토트넘을 2시즌 동안 리그 5위로 이끈 실적을 치켜 세웠죠.
그러나 런던 클럽중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는 지도자는 욜 감독이 아닌 '퍼거슨의 적' 벵거 아스날 감독입니다. 욜 감독을 띄워주기 위한 그의 립서비스는 간접적으로 벵거 감독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블랙번은 빅4의 아성을 깨뜨릴 수 있는 팀이다. 빅4와 경쟁할 수 있는 블랙번의 올 시즌 활약이 놀랍다."(2007년 11월 10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
퍼거슨 감독은 당시 리그에서 6위(6승4무1패)를 기록중인 블랙번이 빅4(맨유, 아스날, 첼시, 리버풀)에 진입하여 기존 강팀들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는 다크호스로 꼽았습니다. 블랙번은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가 끝난 현재 7위(승점 50점)에 있지만 4위 리버풀(승점 62점)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경기 1~2일 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상대팀을 띄우는 발언을 자주 했던 그의 립 서비스를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루이 사아는 제2의 솔샤르이며 헤라르도 피케는 데이비드 베컴을 필적할 맨유의 미래다."(2007년 11월 10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
평소 선수 칭찬을 아끼지 않는 퍼거슨 감독은 부상 때문에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사아가 '슈퍼 조커' 올레 군나르 솔샤르의 후계자라고 치켜 세웠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21세 수비수 피케에 대해서는 베컴과 같은 맨유의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며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없다고 공언했죠.
그러나 두 선수는 올 시즌 내내 맨유의 벤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대표적인 서브 멤버들입니다. 사아는 시즌 종료 후 방출이 유력하며 피케는 고국 클럽들의 잇단 이적 제의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띄워주기로 끝났습니다.
"사우디 투어, 선수들에게 활력줄 것"(2008년 1월 21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
시즌 도중 '돈 벌이' 사우디 투어 강행으로 비난 받았던 퍼거슨 감독은 현지 여론의 좋지 않은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긍정적인 어조로 답변하며 이 같이 수습했습니다. 그러나 사우디 투어 이후 리그 3경기에서 1승1무1패의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거뒀으며 당시 1위였던 아스날과의 승점 차이가 5점으로 벌어지면서 한때 우승 전선에 적신호가 켜졌죠.
"박지성이 있어 측면 걱정 없어"(2008년 3월 28일 트라이벌 풋볼)
완전한 립 서비스로 보기에는 논란이 있겠지만, 최근 3경기 연속 결장한 박지성의 행보에 실망한 축구팬들은 퍼거슨 감독의 이 같은 발언을 립 서비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축구팬들이 원하는 것은 퍼거슨 감독의 빈번한 박지성 띄워주기가 아니라 그의 꾸준한 출전이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퍼거슨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모입니다. 타이밍에 맞는 적절한 주장과 표현을 구사하며 해당 선수와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맨유에서 20년 넘게 입버릇처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립 서비스는 퍼거슨 감독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절대적인 무기일지 모릅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든 다른 나라 축구팬들이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설득력이 담겨 있죠. 오늘 날 현역 최고의 축구 감독으로 인정받는 그가 맨유 감독직을 그만두는 날까지 얼마나 많은 립 서비스를 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사진=알렉스 퍼거슨 감독 (C)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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