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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해피엔딩의 시작은 지금부터!"

기사입력 2008.03.18 20:14 / 기사수정 2008.03.18 20:14

박영선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영선 기자] '삼성하우젠 2008 K-리그' 2라운드가 끝난 현재 대전은 2연패, 무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수원과 제주를 상대로 한 두 경기 동안 대전의 일레븐에는 외국인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덕분으로 외국인 선수들이 차지하는 공격수 자리에 드래프트로 대전에 합류한 공격수 김민수와 곽철호가 자신들의 가능성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벤치의 고민은 여전하다. 시즌 전부터 문제되었던 외국인 선수 건은 유일하게 계약된 에릭마저 제주전에서 부상으로 경기직전 교체카드를 낭비하고 마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2007년, 데닐손-슈바-브라질리아의 브라질 3인방의 활약으로 6강까지 안착하였던 대전이었지만, 2008년 세 선수 모두 유니폼의 색을 바꾸었다. 

제주전까지 2연패 후 “골결정력에서는 반드시 외국인 선수가 필요하다.”라고 김호 감독은 말했다. 제주와의 후반전, 거의 앉지도 못한 채 선수들을 독려해야 했던 노감독의 근심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수원삼성과의 개막전을 앞두고 선수단의 마지막 훈련장이 퍼플아레나에서 있었다. 노랗고 듬성듬성한 3월의 그라운드를 보며, 잔디가 너무 올라오지 않아 부상이 걱정이라던 김호 감독은 갑작스레 “상처를 견뎌낼 수 있어야 할 텐데.”라는 말을 꺼냈다.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자, 재차 “팬들이 상처를 잘 견뎌낼 수 있어야 할 텐데.”라며 훈련 중인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2007년 31명(2007년 포르투갈 리그로 진출한 이형상 제외)의 대전 선수들 중 14명의 선수가 대전을 떠나야 했다. 급격한 선수단의 변화 후 남은 선수들 중 11명이 출전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들과 함께 이적생 박성호와 이여성, 이동원이 각각 공격과 미들, 수비를 맡아 뛰었다. 이외 드래프트로 선발된 김민수와 곽철호, 강선규가 2008시즌 데뷔전을 치렀다. 

나간 선수가 아닌 들어온 선수만 놓고 보자면 50%가 넘는 팀 인원에 변화가 있었다. 한 팀으로 호흡을 맞춰 나가는데, 필요한 시간은 통영에서 보낸 전지훈련 기간뿐이었다. 전술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아 서걱거리는 부분들은 이제 시즌을 겪으며, 선수단이 가다듬어 나갈 테지만, 그 사이 이들이 승리만을 얻어낼 것이라 누구도 자신할 수 없었다. 패배 후, 팬들이 받을 상처를 노감독은 걱정하고 있었다.

2008시즌 대전의 첫 상대는 얄궂게도 수원삼성이었다. 안정적인 구단의 지원에 대표팀에 이름을 오르내리는 선수들로 구성된 그들과 대전의 인연은 지역컨소시엄으로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위해 급하게 대전이 창단된 시발점에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그간 대전의 살림살이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10년간 서로에 대한 감정의 색깔도 농도는 달라지었을망정, 색이 달라지진 않았을 대전과 수원삼성, 그리고 양 팀에서 모두 감독을 맡게 된 김호 감독과의 삼각관계, 이에 대전에서 수원으로 이적한, 수원에서 대전으로 이적한 양 팀의 뒤바뀐 아이콘인 고종수와 이관우까지 사각, 오각관계의 어지러운 인생사가 펼쳐진 한판에서 승리를 자신할 수 없었던 감독은 팬들의 상처가 걱정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팬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시간이 짧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함께였다.




 

대전시티즌 서포터즈 퍼플크루 류진희 회장은 수원삼성과의 경기에서 대전이 이겨야 하는 이유를 그것이 ‘정의’라 한 인터뷰에서 표현하였다. 그것은 사전적, 법적 의미의 정의가 아닌 ‘감성적 정의’를 의미한다. 

대전 팬들의 대전을 향한 감성적 정의감은 대전의 태생과 현재, ‘인간극장’으로 추억되는 대전의 어려운 살림살이와 FA컵 우승을 통한 역경극복의 신화, 약자로서 피해 혹은 피해의식에 의해 심어진 것이다. 때론 상대적인 비교에 수원삼성 팬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감성적 정의감은 대전이 팬들에게 줄 수 있는 정신적인 선물이기도 하다.


2007시즌 6강 신화의 축제가 끝나고 난 후에도 대전 선수들의 훈련장을 찾은 한 열성 팬에게 김호 감독이 2008시즌 성적에 대한 기대를 물었다. 우승이라던가, 다시금 6강 진출을 희망한다는, 지난 축제의 여명이 사라지지 않은 해맑고 꿈에 가득한 대답이 예상되었지만, 선수단이 구성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할 것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답이 돌아왔다.


대전에 대해 감성적 정의감을 가진 그들은 꿈과 희망에 파묻혀 있을 듯하지만, 실상은 조금 현실적이다. 많은 선수가 대전을 떠나면서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다른 선수들을 여느 구단처럼, 스타급으로 채울 수 있는 형편의 대전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고 있었고, 리그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들이 녹록하지 않은 K-리그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함께 패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대전의 10년의 역사 동안 대전팬들에게 있어 그런 경험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8년 들어 2군까지 갖추게 된 대전 선수단이지만 여전히 전용 연습구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전용 연습구장에 대한 약속은 구단 사장이 바뀔 때마다, 대전 시장이 바뀔 때마다 입버릇처럼 반복될 뿐, 공염불 같은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제주와의 홈경기가 패배로 끝난 후에 선수단의 사정을 아는 대전팬은 말한다. “지는 것은 괜찮아요. 지더라도 재밌는 경기를 하면 돼요.” 한국 축구계의 거성인 김호 감독이 걸어온 길보다도 더 많은 패배를 맛보았을지도 모를 대전의 팬들에게는 패배에 단련되어 굳은살이 배긴 심장이 장착되어 있는 듯했다.

 

악연의 연속이라는 수원삼성과의 패배에서도, 제주유나이트와 홈에서의 패배에도 대전팬들은 괜찮아 보였다. 오히려 떨어진 경기력을 걱정하고, 자신들보다 패배에 더 힘들어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S석 앞에서 인사하던 선수단을 걱정한다. 백발의 노감독이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런 한두 번의 패배에는 끄떡없다는 듯, 더러는 웃기도 한다.
 
지난 두 경기 동안 김민수의 성장세가 기특하고 제주 전에서 이성운이 비어있는 골대 앞에서 헤딩으로 막아낸 실점위기를 즐겁게 이야기한다. 부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김형일의 수비라인이 걱정이지만,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대전 팬들은 잘 알고 있었다.



 

우승을 꿈꿀 수 있는 팬들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매번 승리를 장담하는 자신감을 가슴에 심어주는 팀도 K-리그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대전을 선택한 이들은 말한다. 

“이 팀과 함께하는 길에 영광보다 고통이 더 자주 마중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 어때? 팀이 존재하는 한 우리도 언젠가는 우승을 할 수 있다 계속 꿈꿀 수 있고, 오늘이 아니면 다음엔 승리할 거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오늘의 패배가 아니다. 그런 고통마저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했다. 이 이야기의 끝이 ‘어쩌고저쩌고 힘들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아름답고 착한 공주가 못된 계모를 피해 왕자의 구원을 받는다는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닌, 부족하고, 가진 것 없는 현실의 치열함을 극복한 대전의 해피엔딩을 말이다. 그리고 해피엔딩을 위한 시발점은 대전의 2008시즌 첫 골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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