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2.02 18:38 / 기사수정 2008.02.02 18:38
예로부터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에서 약속이라는 건 큰 역할을 해왔다. 약속을 지키는 정도에 따라 그 사람의 여러 가지가 평가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에겐 자연히 여러 사람이 따르게된다는건 예나 지금이나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축구 또한 그렇다. 구단은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승리’라는 것을 항상 약속하며 전력을 다해 상대방의 골문에 공을 차 넣고, 귓속에 팬들의 함성을 응집시키며 더욱 강한, 더욱 완벽한 구단으로 발전해나간다. 이 ‘승리라는 약속’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시작된 이래로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만이 갖게 된 약속이며, 또한 그 구단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그랬다. 탄식과 한숨이 안개가 되어 앞을 가리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과 눈물로 정화하며 결국, 우승이란 약속을 지켜내며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며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회장으로 기억되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게 서른 번째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모두들에게 ‘레알 마드리드는 여러분에게 한 약속을 잊지 않았으며 이 약속은 영원한 약속이 되어 영원한 지켜나가겠다’고 외친 레알 마드리드. 그들은 현재 엑스칼리버를 뽑은 아더왕처럼 ‘패배하지 않는 팀이란 어떤 팀인가’를 보여주며 그들의 약속을 다시 한번 지켜나가고있다.
-비야레알 역시 그랬다. 승격하겠다는 약속,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겠다는 약속, 그리고 다시 한번 챔피언스리그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약속. 비교적으로 승격한지 얼마 안 되는 팀인 비야레알이 이렇게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한 이유는 강팀들을 차례로 잡아내는 저력과 최근의 투자로 화려해지고 있는 선수층뿐만이 아니다. 바로 위의 저 ‘약속’들을 차례대로 지켜왔으며, 또한 지킬 수 있는 팀이기때문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축구라는 스포츠에서의 약속은 단순히 보면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기에 두 팀은 부족한 게 없었다. 몇몇 선수의 부상은 양 팀에게 마찬가지였고, 불안한 수비진마저 그들에게 똑같은 리스크를 주며 세상 어디인가 있을지도 모를 축구의 신은 양 팀이 박빙이 승부를 펼치기를 바랐고, 경기는 신의 뜻대로 진행되어갔다.
레알 마드리드는 공격에 대한 각선수들의 역할이 점점 맞아떨어져가면서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한방을 노리며 상대 수비진을 헤집고다니는 판 니스텔로이, 메디아푼타의 위치에서 기회를 엿보는 라울, 루드와 라울의 투톱에 집중된 수비의 빈 공간을 노리는 측면 공격수 호빙유, 그리고 그 뒤를 받쳐주는 밥티스타와 이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를 예측하고 있는 구티. 비야레알의 수비진은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고, 첫 번째 골은 정신없는 비야레알의 수비진을 정신 차리게 만들기엔 충분할 정도로 치명적인 상황에서 나왔다. 패스에 전율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신기하게도 지구상에는 패스한번으로 사람의 마음을 술렁이게 만드는 마법사, 아니 사기꾼이 존재한다. 그의 패스한번에 상대편의 수비진은 정신이 번쩍 들고, 팬들은 함성이 세어 나올 준비를 하게 된다.―허나 공을 받은 선수는 침착해야만 한다― 호세 마리아 구티. 내가 장황하게 킬패스에대해 말한 이유는 바로 이 선수 때문이다. 그의 패스와 호빙유의 슈팅으로 만들어낸 첫 골은 전 세계의 축구팬을 들썩이게 만들기 충분했고, 공이 디에고 로페즈를 지나치기까지의 과정은 현대 축구가 가져야할 ‘수비진을 뚫는 한방의 패스’라는 것을 아주 잘 나타내었다.
‘노란 잠수함’ 비야레알은 리가 3위라는 성적이 말해주듯이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이는 팀이었다. ‘이번 경기는 0:5의 복수를 위한 경기가 아니다’라고 비야레알의 한 선수의 경기 전 인터뷰처럼, 비야레알이 실점이후 시즌초 엘 마드리갈의 굴욕적인 패배를 다시 한번 맛볼 수 없다는 듯이 베르나베우에서 공격적인 태세로 나왔다면 비야레알은 쉽게 패배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레알 마드리드는 그렇게 달려드는 팀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허나 비야레알은 실점 후에도 그들이 펼칠 수 있는, 모순적일 정도로 침착하면서 다이나믹한 비야레알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를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를 공략해나갔다. 비야레알은 공격시 니하트, 로시의 투톱아래에 산티 카솔라, 카니 두 공격형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비야레알의 중심선수인 세나까지 공격에 가담하며 순간적으로 공격진을 다섯으로 늘리는 플레이가 굉장히 위력적이다. 특히 니하트와 로시 투톱이 좌우로 벌려주고 두 공격형 미드필더와 세나가 침투해 들어가며 페널티박스를 에워싸는 모습은 아무리 강팀이라해도 벗어나기가 어렵다. 물론, 비야레알은 공격만이 주특기가 아니다. 2선에서의 공을 커트하는 능력도 굉장히 뛰어난데, 비야레알의 위력적인 속공으로 인해 비야레알의 공격진이 많아지면 그만큼 수비진도 두터워야하기에 상대편이 수비에 집중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수비가담을하는 선수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또한, 공을 뺏어낸다하더도 수비가담으로 인하여 공격 쪽에 준비하는 선수가 적어지게 되고, 결국 패스를 줄 선수가 정해져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2선에서 준비하는 비야레알의 수비진들은 그 공이 흐르는 자리를 알아차리기가 쉬어지고, 공의 흐름을 끊고 다시 한번 비야레알로 공격의 주도권을 가져가기가 쉬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확실한 공수의 연계가 없으면 비야레알의 공격을 막기가 힘든데, 비야레알의 첫 번째 동점골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공을 뺏은 후 순간적인 역습, 누굴 막아야할지 망설이던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 그 틈을 노린 로시의 슈팅. 로시의 골은 실점한지 5분만의 빠른 동점골이란 의미뿐만 아니라 무실점 행진의 카시야스를 멈추게 한 골, 그리고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고 과시하는 듯한 멋진 골이었다.
전반 15분 1:1 동점. 그리고 두 팀은 시소게임을 시작한다. 레알 마드리드는 비야레알의 빠른 역습을 막기 위해 공을 뺏기는 즉시 1차적인 압박을 주며 비야레알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려했다. 특히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슬라이딩태클을 즐기는 가고는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자신의 직책에도 불구하고 1차적인 압박에 참여하며 공을 1차적으로 커트하는데 도움을 줬으나, 반대로 가고가 뚫리면 미드필더가 텅텅비게되는 문제점을 보였다. 비야레알은 레알 마드리드의 강력한 공격력을 막기 위해 수비진을 깊숙이 내리며 미드필더진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를 압박하였다. 허나 비야레알의 압박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좌우로 흔드는 호빙유와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살가도, 그리고 구티 이 세 명의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아떨어지면서 비야레알의 수비진을 농락하였고, 디에고 로페즈만이 놀라운 선방을 보이며 여러 위기를 넘겼다.
레알 마드리드의 주도 속에 이뤄진 팽팽한 줄다리기는 후반전이 되서야 깨졌다. 비야레알에게 보란 듯이 역습상황에서 호빙유의 골로 멋지게 득점에 성공한 레알 마드리드. 여기서 멋지게라는 말이 쓰인 것은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조연 디에고 로페즈의 열연 속에 멋진 골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골이라는 결과물이 나온데엔 세르히오 라모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언제나 역습의 중심에 있는 이 수비수는 어김없이 이번에도 빠른 돌파로 비야레알의 수비진을 혼란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마을에서 ‘슈스터’라 불리며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하던 한 소년은 ‘슈스터 마드리드’라는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 슈스터만큼의 센세이션을 수비수로서 일으키며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비야레알은 칸나바로와 라모스에게 니하트가 완전히 지배당했고, 세계축구계의 희망 중 하나인 로시마저 골과 몇몇 장면을 주고는 큰 장면을 주지 못했다. 니하트와 로시라는 비야레알에게 승리만을 안겨주는 투톱이 살아나기 위해선 그들 아래에 있는 두 공격형 미드필더가 역할을 제대로 해줘야하는데, 투톱에게 공을 공급하고, 투톱이 측면이 빠질 경우 그 빈 공간을 채워주며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맡은 카니는 토레스의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투톱을 아래에서 받쳐주는 클래식한 공격형 미드필더자리의 카솔라는 공격연결, 투톱이 열어주는 공간을 이용한 슈팅등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남미스타일의 마티아스, 유럽을 대표하는 피레스 둘의 결장 공백을 더욱 아쉽게 만들뿐이었다. 유럽과 남미를 연결하는 스페인, 그리고 스페인 특유의 클래식한 공격형미드필더 계보를 이을 임무를 맡은 산티 카솔라. 비야레알에서 어린데다가 잘하는 선수로서 로시, 마티아스 페르난데즈에만 집중되어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돌릴만한 인재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반면에 마르코스 세나는 공수의 연결고리, 팀을 지탱하는 기둥역할로서 가고와 밥티스타를 상대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오히려 밥티스타가 공격 쪽에 가담하고 수비 시엔 같이 협력수비를 해줘야하기에 경기템포가 빠른 이 경기에선 큰 덩치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느라 더 고전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공을 뺏긴 이후 1차적인 저지를 매우 뛰어나게 했기 때문에 비야레알이 공격을 재차공격을 할 때는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이 다 제자리를 찾은 뒤라서 비야레알이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위해선 세트피스가 가장 큰 무기가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비야레알은 코너킥 세트피스로 동점골을 넣는다. 데포르티보의 주장으로서, 아니 데포르티보의 배반자로서 비야레알로 이적하여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는 카프데빌라의 골로 동점상황을 만든 비야레알. 허나 그들은 베르나베우에서 카시야스를 상대로 두 번째 골을 넣었다는 것에 즐거워할 겨를도 없이 밥티스타와 교체하여 들어온 스네이더한테 쐐기 골을 헌납하며 상황을 1점차로 뒤지던 상황으로 다시 돌리고만다.
스네이더는 프리킥능력과 패싱이 뛰어난 선수다. 하지만 박스 투 박스 플레이는 더욱 뛰어난 선수로, 동점골을 넣어 약간 들떠있었던 비야레알선수들의 옅어진 집중력은 오프사이드라인에 있었던 라울과 판 니스텔로이에게 만을 신경을 쓰고 있었으며, 그로인해 스네이더는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더욱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가고와 스네이더의 환상적인 호흡은 비야레알의 선수들에게, 페예그리니 감독에게, 로이그 회장에게 비수를 꽂기 충분했다.
스네이더의 쐐기 골은 다시 돌아온 1점의 점수차보다 정신력 충격이 더 컸다. 겨우겨우 넣은 동점골을 1분 만에 허용한 쐐기 골과 바꿔야했기에 이미 그들은 마음만 급하지 지금까지의 강한 비야레알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결국 비야레알은 디에고 로페즈만이 제 역할을 해냈다. 레알 마드리드 출신인 디에고 로페즈는 정반대편에 자신을 주시하고 있을 카시야스에게, VIP석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칼데론회장에게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과시하는 듯이, 아니, 울분을 토해내는 듯이 수많은 선방을 해댔는데, 결과적으론 패배한 비야레알에서 가장 잘한 선수로 뽑히는 정도의 위안밖에 얻지 못했다.
경기종료막바지의 프리킥으로 인한 헤딩슛. 카시야스는 멋지게 펀칭해내며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공을 잘 막는 골키퍼중 한명이라는 것을 과시해냈다. 마치 경기장 반대편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디에고 로페즈에게 보란 듯이.
지난 마드리드더비리뷰에서 여러 선수들의 대결이 기대된다고 밝힌 적이 있다. 허나 이 경기를 보고 깨달은 것은 ‘선수들의 대결 따윈 무의미하다’라는 것이다. 결국 잘하는 선수들은 어떤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이다. 선수들 간의 대결에서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경우는 드물다. 선수와 선수들이 모인 구단과 구단과의 대결에서 승패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팀은 패배했어도 로시는 여전히 골을 넣었고, 디에고 로페즈는 수많은 선방으로 또 한명의 카시야스의 경쟁자로 발돋움했다. 만약 아라고네스가 이 경기를 봤다면 그를 선발해보는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아니, 아라고네스는 레알 마드리드를 싫어하고 라울을 뽑을 일이 없다는 발언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감독이니 여기서 국가대표이야기는 하지말자. 구티는 이번경기에서 확실하게 폭발하며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구티는 자신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선수다. 자신이 안되는 날은 짜증만내면서 이번 경기같은 경우에는 반칙을 당해도 싱글벙글 웃을정도로 자신의 컨디션이 좋다는걸 나타냈고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호빙유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그는 확실한 에이스로 자리잡기시작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많은 선수들은 점점 자신들의 각각다른 매력을 하나로 합쳐가고있다. 최근의 레알 마드리드는, 그래서 강한 것이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구단은 팬들과 ‘약속’을 한다. 리가에서 강등되지 않는 것이 약속인 구단도 있겠지만, 레알 마드리드라는 구단은 ‘우승’이라는 아무나 꿈꿀 수 없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우승은 아무 구단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구단, 최고의 모습을 보인 단하나의 구단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힘든 것이며 그 영광이 역사에 새겨지는 것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그 우승이라는 것에 가장 가까운 구단은 바로 레알 마드리드. 과연 레알 마드리드가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이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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