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5.04 01:29 / 기사수정 2007.05.04 01:29
엑스포츠뉴스는 '예.스.(예비스타) 인터뷰'를 통해 내일의 슈퍼스타를 꿈꾸는 선수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두사부 일체'가 적힌 내의 세레머니와 함께 파이팅 넘치는 활약으로 대전 시티즌의 차세대 수비수로 주목을 받고 있는 대전 시티즌의 김형일 선수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수비수로 살아가기.
"고2 때부터 수비를 했어요. 그 전에는 센터 포워드. 왜 그렇게 놀래요? 저, 대학에서도 센터 포워드로 뛰고 그랬어요."
센터 포워드란 말에 깜짝 놀라자 김형일은 뭘 그렇게 놀라느냐며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지금의 김형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비수가 아닌 김형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공격수 김형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데, 마침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있던 임충현이 김형일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고는 한 마디를 흘려 놓는다.
"얼굴에 스토퍼라고 쓰여 있어요."
그렇다. 김형일은 딱 수비수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그런 김형일이 3~4년 전까지는 센터 포워드였다니. 놀랍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그렇다면 어째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뺏는 게 재밌어서 수비수가 됐어요. 사실 공격수는 계속 못 하다가도 한 골 넣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한 방을 노리는 것, 저한텐 매력이 덜해요. 그리고 자주 뺏기잖아요. 전 그렇게 뺏기는 게 싫어요. 뺏는 게 재밌고 좋죠. 스포트라이트가 스트라이커들한테만 가도, 억울하진 않아요. 팀이 이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스스로 원해서 수비수가 되었다는 김형일. 그렇다면, 그런 김형일은 수비수가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던지자,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김형일은 한 가지의 미덕을 꼽는다. 지금의 김형일이 가장 잘 갖추고 있는 바로 그것.
"투지요."
라고 말이다.
"경기 때마다 매번 주심이 불러서 반칙하지 말라고 그래요. 하프타임 끝나고 들어갈 때마다 그 얘기 들어요. 그래서 페널티 지역 안에서는 파울 안 하려고 진짜 노력 많이 해요. 우리가 그동안 페널티 많이 줬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침착하려고 노력 많이 해요."
"경기 중에 말을 많이 하는 건, 옛날부터 그랬어요. 충현이 형도 그러고, 저한테 형들이 다 그래요. 나한테 너무 뭐라고 그러지 말라고. 그런데 전 말을 많이 해야 집중이 돼요. 안 그러면 정말 경기 중에 딴생각도 들어요."
김형일의 경기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김형일은 정말로 투지 넘치는 경기를 한다. 파이팅을 외치는 김형일의 목소리는 커다란 경기장 안을 쩌렁쩌렁 울리기에도 충분하다. 경기가 시작되면 끊임없이 박수을 치고 동료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도 김형일의 몫이다. 김형일은 90분이라는 시간 안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완벽하게 발산해 버리는 타입이다. 그리하여 경기가 끝나면 김형일은 지쳐 보이지만, 다음 경기가 시작할 때면 또 똑같은 투지로 똘똘 뭉친 김형일이 나타난다.
김형일은 현재 대전 시티즌의 맥박을 한 박자 더 빠르게 뛰게 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김형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선수가 있는 한 대전 시티즌은 절대로 느리게 걸어가는 침울한 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어제의 패배를 기억하고,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다.
"대학 시절에, 저희 경희대랑 국가 대표가 비공개로 연습을 했어요. 대학교 3학년 때니까 2005년이었네요. 한참 잘 나가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랑 뛰어본다는 흐뭇함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죽기 살기로 뛰었는데, 졌죠. 그렇지만, 안정환 선수나 차두리 선수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랑 뛰어봤으니까. 그게 참 기억에 남아요."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묻자, 김형일은 국가대표와의 연습 경기에 관한 기억을 꺼내놓는다. 선수들은 보통 자신이 결승골을 넣거나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경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는 법인데, 그저 연습 경기였을 뿐이었던 경기를, 그것도 졌던 경기를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이야기하는 김형일은 참 독특하다.
아니나 다를까. 올 시즌 펼쳐진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아보라고 해도, 김형일은 1-1로 비겼던 서울전(4월 11일)을 이야기한다.
"그 경기, 제가 너무 못했어요. 그 전에 부상도 있었고 해서 몸이 되게 안 좋았어요. 그래도 들어가 보자 해서 들어갔는데, 들어간 지 얼마 됐다고 다리에 쥐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끝까지 못 뛴 것도 너무 아쉬워요."
그런 김형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째서 이 선수는 자신이 졌던 경기, 자신이 못한 경기를 더욱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렇지만, 김형일의 이야기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면, 그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자연스레 풀린다.
"상대편에게 지는 것, 너무 화가 나요. 지고 있는데, 경기가 끝나려고 하면 경고든 뭐든 그냥 막 태클이라도 하고 싶지만 감독 선생님이 그런 걸 싫어하셔서……."
그렇다. 김형일은 패배가 싫은 것이다. 너무나도 패배가 싫기 때문에 지난 패배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패배를 기억하고 있다가, 김형일은 다음엔 반드시 승리할 것을 기약한다. 상대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니,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더욱 말이다.
"저는 아직까지 다 부족해요. 신체조건이나 정신력 그런 게 좋아서 그렇지, 사실 능력은 다 백지 한 장 차이에요. 제가 지금 선발로 경기를 뛰고 있긴 하지만, 다 부족해요. 진짜 다 부족해요. 제가 잘하는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남들보다 적응을 좀 빨리 했고, 키가 좀 크고…… 그런 거예요. 전 지금 제가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도 살얼음판이죠."
마찬가지로 김형일은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서 평할 때도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점만을 이야기한다. 마치 자신이 가진 강점이라곤 커다란 키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뿐인 것처럼.
"전 뒤에서 조율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뒷공간도 많이 내주고…… 제가 발이 느리거든요. 그리고 헤딩도 좀 부족해요."
그런 김형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결국은 웃음이 터진다. 김형일의 헤딩 실력은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도 김형일은 그러한 자신의 장점마저 부족한 점으로 꼽아버린다. 그래서 거짓말 말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김형일은 왜 못 믿는 거냐는 듯 억울한 목소리까지 내어 보인다.
"진짜예요. 저 헤딩 안 잘해요. 성훈이 형이랑 헤딩 경합하면 한 번도 못 이겨요."
결국, 그런 김형일을 보다 못한 임충현이 "너, 헤딩 잘 따."라고 이야기해주어도 김형일의 의구심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 파울이라고 그러던데요?"
원래 지나친 겸손은 보기 좋지 않은 법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김형일의 겸손은 더해지기만 한다. 그런데도 참 이상한 것은 아무리 해도 김형일의 겸손이 보기 싫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김형일이 끊임없는 자책으로 의기소침해 하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김형일의 겸손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어제의 패배를 기억하여 내일의 승리를 기약하듯이, 자신의 부족함을 되뇌어 더 큰 발전을 꿈꾸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밝은 미래를 꿈꾸다.
"월급은 통장을 부모님께 드렸기 때문에, 부모님이 관리하세요. 그냥 용돈을 받아쓰죠. 한 50만 원 정도 받는데, 별로 부족하진 않아요."
"가족은 부모님이랑 저랑 남동생 한 명, 이렇게 네 명이에요. 동생도 원래 축구를 했는데, 지금은 안 해요. 동생은 악바리 같은 근성. 그런 게 좀 부족했어요. 그래서 축구를 그만두게 됐죠."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김형일을 보고 있다 보니 문득 이 선수 '여성 팬들도 꽤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요즘 대전 선수들 사이에선 김형일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돌고 있는 중. 그래서 '요즘 팬들 많죠? 대전에서 형일 선수가 인기 제일 많다던데?'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김형일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휘휘 손을 내젓는다.
"누가 그래요? 아니에요. 저 인기 별로 없어요. 인기는 충현이 형이 많아요. 어제도 밥 먹고 있는데, 충현이 형한테 선물이 온 거예요. 이만한 바구니 안에 김밥에 샐러드에…… 잔뜩 들어 있었어요. 그런데 누가 준 건지도 몰라요. 아직도 누가 준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덕분에 포식했어요.”
자신의 인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지만, 결국 김형일은 제 동료의 인기 자랑만 실컷 늘어놓는다. 결국 '넌 너무 방송용 멘트만 하는 것 아니냐'는 동료 임충현의 타박에도 김형일은 두 볼에 보조개를 띄우며 웃어보일 뿐이다. 187cm의 커다란 키. 83kg의 든든한 체구. 그런 체격을 하고서도 김형일은 자꾸 그렇게 수줍게 웃는다. 그래서 김형일에게서는 아직도 소년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소년의 웃음을 짓고 있기 때문에, 김형일이 꿈꾸고 있는 미래는 어떤 것인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전 항상 미래를 짧게 짧게 봤어요. 중학교 땐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등학교 땐 대학교 진학에 대해서 생각하는 식으로. 그리고 늘 생각했던 대로 잘 이루어왔어요. 대전에 오고 나서는 거제도 갔을 때까지만 해도 제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전 2군도 아니고 2.5군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올해 10경기도 못 뛰면 군대 가려고 했어요. 부모님께도 미리 그렇게 말해뒀는데, 지금은 이렇게 경기도 뛰고 있고. 전, 이 정도로도 너무 고마워요."
지금까지 김형일은 성급하게 먼 미래를 내다보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미래를 생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순간에도, 김형일은 시즌이 끝난 뒤에나 정해질 신인왕이나 몇 년 후가 될지 모를 국가대표 입성 같은 꿈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고마워하며,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한 후에 다음 자리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
"축구는…… 솔직하게 말하면 직업이죠. 저한테는 축구가 직업이고 돈벌이에요."
자신에게 축구란 뭐냐고 묻자 김형일은 웃으며 대답한다. 삶의 전부, 삶의 의미 그런 것을 따지기 전에 축구란 자신의 직업이라고. 그렇다면, 김형일은 자신과 참 잘 어울리는 직업을 가졌다. 그리고 김형일은 참 보기 드물게, 자신의 직업을 즐기고 있는 사람 같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자신의 대답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탓일까. '멋있게 좀 써주세요.'라면서 웃어보이는 김형일에게선 다시 한 번 잔디의 냄새가 났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같은 자리에 있었건만, 김형일은 마치 방금 이라도 잔디 위를 달리다가 온 것 같은 푸릇푸릇한 냄새를 풍긴다. 그리고 그 냄새를 맡고 있다가 문득 생각을 한다.
싱그러운 냄새. 이 잔디의 냄새는 경기가 끝나면 온 머리에, 등에, 무릎에, 잔디의 풀을 잔뜩 묻혀 나오는 김형일과 참 잘 어울린다고. 그래서 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김형일이 얼마나 열심히 잔디 위를 달리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그렇게 김형일은 잔디 냄새 가득한 채로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밝은, 자신의 미래를 말이다.
[사진=성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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