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감독님도 영원히 무서운 타자일줄 알았지."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이 열린 31일 부산 사직구장. 경기전 KIA쪽 원정 더그아웃 한켠에 투수 한승혁과 홍건희 그리고 박정수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막내급'에 속하는 이들이 조금 일찍 나와 있었던 이유는 타격 훈련이 끝난 후 공을 줍기 위해서였다. 세사람 뿐만 아니라 대개 야수, 투수조 어린 선수들도 함께 공을 줍고 훈련이 마무리 된다.
늘 하던대로, 다를바 없는 일과였지만 타격 훈련을 멀리서 지켜보던 김기태 감독이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김 감독은 평소에도 선수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농담 섞인 말을 건네거나 편한 대화를 종종 하는 편이다. KIA 더그아웃에서는 거의 매일 오고가며 선수들에게 꼭 한마디 웃음 섞인 이야기를 건네는 감독을 볼 수 있다.
이날은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승혁, 홍건희, 박정수 앞에 선 김기태 감독의 막간을 이용한 '눈높이 교육'이 시작됐다. 세 선수 모두 아직 나이가 어리다. 그나마 1군 경험이 있는 한승혁과 홍건희도 92년생으로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봉오리고, 박정수는 만 19살로 팀내 막내다.
김기태 감독은 "야구를 할 때 어떤 생각을 갖고 하느냐"고 운을 뗐다. 그리고 약 10분간 이야기가 이어졌다.
"보통 선수들은 그날 그날 한 경기만 생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래갈 수가 없어. 감독님도 마찬가지겠지? 다음 10경기, 또 내년 경기까지 생각하는게 감독님이 할 일이야. 선수들도 멀리 10년 후까지 내다보고 스스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홍)건희, 10년 후면 몇 살이지?(홍건희 : 서른넷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리지만 그때는 최고참이 되어있겠네.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봤어? 감독님도 선수 시절 잘나가던 때가 영원할 줄 알았어. 치면 홈런일 것 같았고, 투수들이 어렵게 상대하니까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3볼-1스트라이크였거든. 정말이라니까? 그게 계속될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있고 나중에는 어린 투수들이 한가운데에 거침 없이 스트라이크를 팍팍 꽂는 그런 타자로 변해있더라고."
터프한 말투지만 세심한 조언에 선수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독의 말을 경청했다. 김기태 감독의 짧은 강의는 선수들의 훈련이 모두 끝나면서 함께 막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이날 박정수와 홍건희는 중간 투수로 등판해 팀 승리를 이끄는 좋은 활약을 펼쳤다.
KIA는 성장해있는 선수들보다 성장할 선수들이 많은 팀이다. 올 시즌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고무적일 정도로 '진짜 강팀'이 되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시기라고 보는게 더 맞다. 당장 다음 시즌에도 특별한 전력 보강이 없다면 성적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진 재산이 많지 않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당장 급급해하지 않고 멀리 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야 팀의 근간과 자생력을 탄탄히 할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 시즌에도 거의 6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엔트리에 등록되며 최소 한번씩은 1군의 맛을 봤다. 경력이 부족한 선수들에게는 분명한 동기부여였다.
아직 합격자 발표가 나기까지 시간이 남아있지만, 어린 선수들의 군 문제도 예상보다 훨씬 과감하게 정리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선수들을 비롯해 싹이 보이는 어린 선수들도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그간 대졸 신인이 많았던 터라 20대 중반 선수가 많아 입대 대기자가 몰려있는 KIA다. 영원한 임기 보장이란게 없는 감독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없는 살림'에 단 한명의 전력이 아쉬울 수 있지만, 팀 전체의 미래까지 고려한 결정에 가깝다. 또 선수 개인의 인생에도 도움이 될 결정이다.
우승보다 하위권 탈출이 먼저 목표였던 KIA는 올 시즌을 어렵게 보냈다. 그러나 예상 밖의 소득도 많았고, 적어도 팀 전체 화합에 긍정적인 신호를 남겼다. 지금 쌓는 작은 돌들이 훗날 어떤 거탑으로 완성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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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