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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주의 첫 골, 짧았던 기쁨

기사입력 2006.05.22 08:15 / 기사수정 2006.05.22 08:15

편집부 기자

◆제16회 1998년 프랑스 월드컵(下)


▲한국, 월드컵 도전사-1998년 프랑스 월드컵


비록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축구는 분명 발전하고 있었다.

1983년에 출범해 어느덧 청소년기에 접어든 국내 프로 축구가 꾸준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고, 황선홍 홍명보 김도훈 같은 고참급 선수들의 기량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여기에 고종수 이동국 같은 어린 선수들의 성장도 눈부셨었다.

이런 한국 축구의 성장을 지켜본 팬들은 월드컵 무대에서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었고, 그런 기대는 1998년 프랑스에서 개막되었던 20세기 마지막 월드컵으로 쏠려 있었다.

'H-H' 라인을 구축했던 황선홍과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성장했고, 김도훈 최용수로 꾸려진 공격진에도 모자람은 없었다. '쌕쌕이' 서정원과 '왼발의 달인'이라는 하석주, 그리고 '앙팡 테리블' 고종수와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이상윤이 가세한 허리 라인도 뭔가 일을 낼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토털싸커의 재림'이란 평가를 들었던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북중미 챔피언인 멕시코, 여기에 유럽의 붉은악마인 벨기에와 한 조가 된 한국의 앞날은 어둡기만 했다. 우리가 5:5의 승부를 걸어볼 곳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2년 전, 멕시코 월드컵에서 보여준 놀라운 한국 축구를 기대하는 팬들이 여전히 밤잠을 설치며 대표팀을 성원했지만, 기쁨과 희망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그리고 대회 개막전 당했던 황선홍의 부상은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불운을 미리 암시하고 있었다.

▲경기 다시 보기

△1998년 6월 13일(이하 한국 시각), 리옹 제를랑 스타디움
대한민국 vs 멕시코


멕시코와의 본선 1라운드 경기가 있기 전, 국내 언론들은 멕시코의 주 득점원인 에르난데스와 블랑코를 막아야 한다고 하루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우리의 이민성과 홍명보가 이들만 묶어 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던 것이었다.

전반 초반, 이런 예측은 비교적 맞아떨어졌다. 멕시코와 기 싸움을 벌이던 대표팀은 상대 투 톱인 에르난데스와 블랑코를 묶으며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고, 전반 27분 월드컵 본선 경기 사상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것에 성공했다.

멕시코의 아크 정면 23m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한국은 '왼발의 달인'으로 평가받던 전문 키커 하석주를 내세웠다. 하석주는 멕시코 골키퍼인 캄포스의 오른쪽을 공략하며 킥을 시도했고 킥을 하는 순간 캄포스도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공은 벽을 쌓고 있던 멕시코 선수의 머리를 맞고 왼쪽을 흘렀고 캄포스는 고개를 돌려 그물을 흔드는 공을 쳐다봐야만 했다.

역사적인 첫 선제골, 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리드를 잡는 그 순간.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2분 뒤 너무나 적극적이었던 하석주의 백태클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전체에 암운을 드리웠었다.

숫적 열쇠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후반. 에르난데스와 블랑코에 고전하던 한국은 후반 교체 투입된 펠라에즈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우리가 그토록 막아야 한다고 열을 올렸던 에르난데스에게 후반 30분과 39분 연이어 두 골을 허용하면서 0-1로 패하고 말았다.

물론 하석주의 퇴장이 경기 결과를 뒤바꾸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백태클'에 대한 조치 강화를 FIFA가 수차례 경고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른 시간대에 그런 실수를 범한 부분은 아직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1998년 6월 20일, 마르세유 벨로드롬 스타디움
대한민국 vs 네덜란드


'싸움닭'으로 유명한 다비즈를 중심으로 박지성의 에인트호벤 동료였던 필립 코쿠와 세계 최정상급 날개였던 오베르마스, 그리고 골잡이 베르캄프가 포진한 네덜란드는 처음부터 우리와는 수준이 다른 팀이었다.

우승을 꿈꾸는 팀과 본선 1승을 꿈꾸는 팀의 경기력 차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차이뿐만이 아니었다.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 그리고 열정과 의욕 등 모든 부분에서 현격한 실력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월드컵에서 34년 만의 참패를 불러 왔었다. 1998년 6월 20일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마르세유의 대참사'로 기록된 날이었다.

멕시코에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대표팀이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준 경기는 실망 그 자체였다. 기량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경기에 임하는 대표 선수들의 파이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국은 전반 호각과 동시에 시간을 끄는 플레이로 일관했고, 이해할 수 없는 경기를 계속했다. 이기려는 의지는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체면만 치레하고자 하는 안일한 경기 운영이 계속되었다. 그 파이팅 좋던 이상윤과 서정원의 플레이도 이날만큼은 없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곧 큰 화를 불러왔다. 네덜란드는 전반 중반까지 한국의 골망을 흔들지 못하다가 후반 37분 코쿠가 첫 골을 성공시키며 한국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한국을 상대로 여유있는 경기를 펼쳤다.

오베르마스, 베르캄프, 반 호이동크, R. 드 보어에 연속골을 허용한 한국은 대회 도중 차범근 감독이 옷을 벗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대패의 수모는 물론 매너 없는 팀이란 오명까지 써야 했다. 0-5란 점수보다 더 크고 많은 충격을 불러왔던 경기였던 것이다.

△1998년 6월 25일, 파리 파크 드 프랑스 스타디움
대한민국 vs 벨기에


네덜란드전이 끝난 뒤, 국내 언론과 여론은 그야말로 폭발하고 말았다.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테프에 비난의 화살이 날아갔고, 선수단 전체에도 무차별한 폭언이 난무했다.

여러 가지 충격과 수모를 안은 대표팀은 벨기에와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 나섰고, 선수들은 이전의 두 경기 특히 네덜란드와의 경기와는 전혀 다른 경기를 펼쳤다.

당시 벨기에는 네덜란드 멕시코와 모두 비기며 2무를 기록, 남은 우리와의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막다른 길에 처한 우리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경기에 임했고, 원조 붉은 악마인 벨기에의 발목을 잡아끌며 마지막 작은 희망을 잡는 것에 성공했다.

경기는 분명 한국이 주도했었다. 비록 전반 7분, 벨기에의 닐리스에 선제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이기고자 하는 의지는 이상하게도 우리 선수들이 앞서 있었다. 헤딩 경합중에 이마가 찢어진 이임생은 울먹이면서도 붕대 투혼을 보였고, 멕시코전에서의 아픔이 있는 하석주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전반 서정원과 최용수가 두세 차례의 기회를 무산시키며 0-1로 뒤진 채 전반을 마친 대표팀은 후반에도 공격의 주도권을 잃지 않고 벨기에의 문전을 위협했다. 후반 27분,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에서 기다리던 동점골이 터졌다.

하석주는 벨기에의 아크 왼쪽 모서리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에서 바깥쪽 골포스트를 향해 빠른 킥을 올렸고, 문전으로 달려들던 유상철은 공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끝까지 쫓아가며 슬라이딩 슈팅으로 연결해 귀중한 동점골을 얻었다. 이기고자 하는 의욕이 만들어냈던 골이었다.

이후 한국 대표팀은 공세를 더욱 강화하며 앞선 두 경기의 참패를 월드컵 '첫 승'으로 갚으려 했지만, 최용수의 결정적인 헤딩 슈팅 두 발이 모두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가면서 역전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던 멕시코와 네덜란드전에서 보여준 경기와는 전혀 다른 경기를 펼쳤던 이날 경기는, 세계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었고, 또한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경기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또 하나의 새로운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축구에서 기술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가에 대한 것이었다.

'스스로 포기한 자는 그 무엇으로도 도울 수 없다.'라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이 다가오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위한 양분이 되었었다.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던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의 참패만큼 충격적인 월드컵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이었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아픔과 쓰라림은 한국 축구에 있어서는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이었던 것이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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