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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지진과 화산을 딛고 일어선 월드컵

기사입력 2006.02.20 08:32 / 기사수정 2006.02.20 08:32

편집부 기자
제1, 2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과 세계 대공황에 따른 경제적 한파 등으로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되지 못했던 월드컵은, 비로소 안정국면으로 들어선 국제 사회의 흐름에 따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월드컵 축제로 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6번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고, 그 결과 또한 성공적이었다. 전쟁과 혼란스러운 국제 사회의 분위기에 맞서 6번의 대회를 32년 동안 힘겹게 이어온 FIFA와 세계의 축구팬의 노력이 조금씩 그 결실을 보고 있었으며 '월드컵'이란 단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 제6회 1962년 칠레 월드컵

▲ 개최 배경

▲ 칠레 월드컵 포스터
ⓒ fifaworldcup.com
전후 후유증과 극심한 경제난을 포함한 여러 가지 악재 속에서 월드컵을 지속시켜온 FIFA는 오랜만에 정상적인 개최국을 선정할 수 있게 된다. 지난 5회와 6회 대회 때는 세계 대전의 후유증으로 스위스와 스웨덴이 갑작스럽게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었지만, 비교적 안정세로 들어선 국제 사회의 흐름에 따라 월드컵도 차츰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리스본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는 제7회 대회의 개최국 선정을 위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당시 7회 대회를 유치하겠다고 발표한 나라는 3개국. 서독과 칠레 그리고 FIFA와 악연을 이어오던 아르헨티나가 유치 신청을 하고 치열한 유치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서독의 경우 이전의 두 개 대회(5, 6회)가 유럽에서 열려 사실상 개최국으로의 선정은 밀려있었다.

유럽과 남미의 개최권 분할이란 암묵적인 명분 때문에 7회 대회는 남미에서 열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 유럽 국가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다. 2개 대회를 연속으로 개최한 유럽으로서는 남미에 다음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남미,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개최를 의심하지 않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지금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축구 열기를 자랑했으며, 비교적 우수한 축구 인프라와 축구 관련 시설들이 잘 준비되어 있어 월드컵 개최국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월드컵 개최를 위해 지난 6번의 대회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유치 신청을 했었다는 점도 아르헨티나의 7회 대회 개최를 더욱 유력하게 했다. 그 누구도 아르헨티나의 개최국 선정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개최국을 선정하기 위해 열린 FIFA 총회에서 칠레 축구협회장 카를로스 디트본의 연설은 아르헨티나에 또 한 번의 패배를 가져다주었다. 디트본은 칠레의 월드컵 개최를 응원하기 위한 연설에서 "지금 칠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칠레에게 월드컵마저 잃게 하시겠습니가?" 라는 말로 투표장에 들어설 FIFA 위원들을 감동시켰으며 결국 그들의 표를 이끌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FIFA와 오랜 악연을 끊지 못한 반 아르헨티나 세력인 유럽 회원국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1930년 첫 대회부터 매 대회 월드컵 개최를 희망하고도 단 한 체례도 FIFA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한 비운의 국가가 되었다.

▲ 본선 경기 사진
ⓒ fifaworldcup.com

▲월드컵 뒷얘기

세계를 감동시킨 디트본, 끝내 보지 못한 개막식

자연재해에 맞서 다시 일어서려는 칠레 국민의 염원을 전달해 월드컵 개최권을 따냈던 디트본 칠레 축구협회 회장. 칠레의 월드컵 개최를 위해 정열을 다 받쳐 노력하고, 성공적인 대회 유치를 위해 화산과 지진 등의 자연재해와 맞서 싸우던 디트본 칠레 축구협회 회장은 그토록 소원했던 월드컵 개막을 한 달 앞둔 1962년 4월 28일 눈을 감고 말았다.

화산과 지진으로 인해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칠레의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디트본 회장은, 대회 개막을 32일 앞두고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칠레 월드컵 성공을 위해 헌신한 디트본 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칠레는 신축했던 아리카경기장을 '카를로스 디트본 스타디움’이라고 명명해 그를 기념했다.

천재(天災)를 딛고 일어선 칠레

1960년 5월. 월드컵 개최를 2년 정도 앞둔 칠레는 국가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1900년대에 발생한 지진 중 가장 강력한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는 칠레 대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진도 9.5의 이 대지진은 칠레의 남부 해안에서 발생하였는데, 이 지진으로 약 5천 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두 개의 휴화산을 다시 활동시켰으며 거대한 해일이 태평양을 덮쳐 하와이와 일본에서도 사망자를 냈다.

세계는 칠레가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해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자 월드컵 개최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기 시작했으나, 디트본 칠레 축구협회 회장을 필두로 한 칠레 국민의 강력한 의지와 노력으로 2년 만에 대지진의 피해를 수습하고 월드컵 개최를 위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공포의 월드컵

경제력으로나 국력으로나 약소국이었던 칠레는 월드컵을 계기로 도약을 꿈꾸게 되었지만 그 꿈이 너무 지나쳐서였을까? 제7회 칠레 대회는 몇 안 되는 거칠고 매너 없는 대회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당시 월드컵은 공격 스타일의 남미와 수비 위주의 유럽 간의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FIFA가 대회 흥행을 위해 유럽과 남미의 대결 구도를 위한 조편성을 실시했고, 이는 바로 거친 경기로 나타났다.

특히 개최국이었던 칠레는 승리를 향한 열망 때문에 스위스의 개막전을 비롯하여 이탈리아와의 경기 등에서 스포츠 정신을 상실한 칠레 선수들과 관중의 거칠기 짝이 없는 경기 태도로 최악의 경기들로 기록되는 오점을 남기게 된다.

▲ 폭력으로 얼룩진 그라운드
ⓒ fifaworldcup.com

장애를 극복한 가린차

지난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현한 펠레라는 천재를 보기 위해 팬들을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펠레는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예선전에서 상대 골키퍼와 부딪혀 실려나가 다음 경기부터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예리한 창을 잃은 브라질의 대회 2연패가 염려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에는 '드리블의 신' 가린차가 있었다.

선천적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발이 짧았던 가린차는 불구를 딛고 '세계 최고의 오른쪽 날개'로 우뚝 선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가린차를 펠레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맹활약 대회 공동 득점왕과 브라질의 2연패를 가장 선두에서 지휘했다. 비록 은퇴 이후 알코올 중독으로 불우한 나날을 보내다 세상을 떠났지만, 가린차가 보여준 환상적인 터치 라인 돌파는 아직도 많은 축구팬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회 기록

*대회기간 : 1962.5.30 ~ 1962.6.17(22일간)
*참 가 국 : 아르헨티나, 브라질, 불가리아, 칠레, 콜롬비아, 체코슬로바키아, 잉글랜드, 헝가리, 이탈리아, 멕시코, 스페인, 스위스, 우루과이, 소련, 서독, 유고슬라비아 (16개국)
*개최도시 : 아리카, 산티아고등 4개도시
*총 득 점 : 89골, 평균 득점 2.78골
*총 관 중 : 776,000명, 평균 관중 24,250
*득 점 왕 : 가린차, 바바(이상 브라질) ,산체스(칠레), 이바노프(소련), 알베르토(헝가리), 예르코비치(유고)-이상 4골 공동 득점왕
*결 승 전 : 브라질 vs 체코슬로바키아( 3 : 1, 브라질 우승)
대지진이란 참사를 이겨내고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칠레. 비록 욕심과 열정이 지나쳐 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월드컵을 향한 칠레 국민의 뜨거운 성원과 지지,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 등은 이후 월드컵을 개최하는 많은 국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엄청난 자연재해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1962년 칠레 월드컵은 수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월드컵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승리에 도취되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잊게 되었을 경우 남는 것은 오명과 치욕뿐이라는 두 가지 소중한 교훈을 알려준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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