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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고마워] '태극 로봇' 차두리가 달려온 집념의 14년

기사입력 2015.03.31 20:43 / 기사수정 2015.03.31 20:59

김형민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김형민 기자] 2015년 3월 31일, 차두리(35)가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자신의 마지막 A매치였던 뉴질랜드전에서 42분을 소화한 뒤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경기장에 모인 많은 관중들은 영웅의 떠나는 길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고 차두리도 하늘 높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14년이었다. 그는 대표팀을 뛰면서 많은 기쁨과 행복을 한국축구에 선사해줬다. 뉴질랜드전까지 A매치 총 76경기를 뛰면서 4골 7도움을 기록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를 시작으로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 3위, 2015년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은 그의 헌신과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제 정말 작별이다. 이별이 실감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대표팀에 차두리가 남긴 발자취들을 돌아봤다.

질주의 시작과 강렬했던 오버헤드킥

로봇이 처음 달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 11월 8일이었다. 전주에서 열렸던 세네갈과의 A매치 평가전에서 차두리는 A매치 무대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 후반 40분 김남일을 대신해서 교체 투입된 차두리는 5분동안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 나선 히딩크호에도 승선했다. 대표팀 공격의 전설로 남아 있는 아버지 차범근씨의 아우라를 기억한 이들은 차두리의 활약 여부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주로 교체로 활약했던 그가 남긴 명장면은 강렬했던 오버헤드킥이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교체 투입돼 모습을 드러낸 차두리는 송종국의 코너킥이 안정환의 머리를 거쳐 연결된 공을 그림 같은 오버헤드킥으로 연결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아쉽게 공은 당시 이탈리아 골문을 지킨 잔루이지 부폰이 잡았다.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못했지만 이 순간 하나는 아직도 차두리의 대표팀 인생에 가장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2010년 로봇의 탄생을 알린 파워 드리블

본격적으로 로봇이라는 별명을 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가졌던 일본과의 원정 A매치 평가전이었다. 당시 경기에서 차두리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섰고 일본의 공격진에 맞섰다.

전반 중반이 지날 즈음 일생일대의 최고 드리블 장면이 왔다. 차두리는 페널티박스 오른쪽 부근에서 공을 잡은 뒤 과감하게 건장한 체격을 이용해 일본 선수들 하나하나를 벗겨내며 박스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차두리의 몸싸움에 못 이겨 튕겨나간 일본 선수들의 모습을 보고 축구팬들은 차두리에게 '차미네이터'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남아공월드컵을 비롯해 각종 A매치에서 차두리의 파워 드리블은 전매특허가 됐고 그의 뒤에는 항상 로봇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저돌적인 돌파는 대표팀 은퇴를 고한 오늘 이후에도 K리그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동생들의 눈물을 안타까워 한 선배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3위에 힘을 보태고 난 뒤 차두리는 잠시 주춤했다. 2012년까지 활약했던 스코틀랜드 셀틱FC를 떠나 자신의 제 2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독일의 뒤셀도르프에 둥지를 텄지만 적응과 경기력 문제 등으로 경기에 출전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K리그 FC서울로 이적하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차츰 몸을 끌어올린 차두리는 2014년에 있을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내다봤다. 하지만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2014년 3월 그리스와의 원정 평가전을 앞두고 대표팀은 차두리를 호출했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소집되지 못하고 사실상 브라질행 티켓과도 멀어졌다.

차두리가 나서지 못했던 한국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아쉬운 경기력을 보이면서 조별리그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내용과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비판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브라질에서 선수 대신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차두리는 끝내 방송 중 눈물을 흘렸다.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국이 2-4로 패하자 중계석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대표팀에서 선배로 함께 해주지 못했던 아쉬움과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한 눈물이었다.

2015년 영웅과 함께 한 마지막 축구여행

2014년 말 차두리는 대표팀으로 돌아왔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팀에 필요한 베테랑으로 차두리를 선택했다. 이제 황혼기를 바라보고 있던 차두리는 아시안컵을 마지막 무대로 여겼다. 그래서 우승에 더욱 간절했고 후배들에게 좋은 선물을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슈틸리케호에서 차두리는 분위기메이커를 자처했다. 대표팀 전체가 묶이는 데 앞장섰고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는 진심 어린 조언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슈틸리케호는 더욱 강해졌다. 그라운드에서는 응집력과 투혼을 앞세워 한 단계씩 헤쳐갔다.

차두리의 폭풍질주도 변함 없이 등장했다. 대회 초반 교체카드로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해냈던 차두리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시원한 질주와 수비력으로 대표팀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손흥민의 득점을 도왔던 70m 질주는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하려고 했던 최종 은퇴 무대를 변경했다. 많은 권유와 응원을 등에 업고 3월 뉴질랜드전에서 42분 간 국내팬들 앞에서 활약한 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영웅과 함께 했던 꿈 같은 축구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김형민 기자 khm193@xportsnews.com

[사진=차두리 ⓒ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기자, SBS 방송화면 캡쳐]

김형민 기자 sport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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