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형민 기자] 4개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4개월은 한 팀의 완벽한 전력을 만들어내는 데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아시안컵 결승전까지가 4개월이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결승 진출과 우승 도전에 대한 확신은 적었다. 박지성도 지난 2011년 아시안컵에서 아쉽게 3위에 머물러 후배들의 우승을 바랐지만 정작 한국의 우승에는 표를 던지지 않았다. 감독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대회가 시작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대표팀은 이러한 짧은 기간에 대한 편견들을 하나씩 깨뜨려가기 시작했다. 결국 결승전까지 오른 한국은 55년 만의 한을 풀 기회를 목전에서 놓쳤다. 31일(한국시간)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혈전 끝에 호주에 패했다.
염원하던 우승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예상하지는 못했던 결과다. 비록 준우승이었지만 슈틸리케호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토너먼트에 적합한 '늪' 축구와 적절한 선수 기용과 보석들의 발견으로 보여준 가능성은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높였다.
진주들을 발견한 슈틸리케의 결단
아시안컵 최종명단을 발표할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진주'들을 발탁해 화제가 됐다. 직접 상주를 가서 5번이나 확인했던 이정협을 비롯해 남태희, 조영철, 김진현 등 젊고 잠재성이 충분한 선수들을 포함시켜 슈틸리케호 만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얼굴들의 등장은 슈틸리케 감독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오랜 기간 대표팀의 한 자리를 차지해 오던 박주영을 제외한 결정은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동국, 김신욱 등이 부상으로 빠지는 상황에서도 경기감각과 몸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박주영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각자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이 대신 명단을 채웠다. 주변에서는 다소 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다양한 공격 전술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며 확신을 보였다.
평가전을 비롯해 아시안컵 경기들을 소화하는 동안 슈틸리케 감독으로부터 선택 받은 이들은 기대에 응답했다. 특히 이정협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A매치 평가전을 비롯해 호주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골맛을 봤다.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선제 헤딩골을 터트리며 한국을 결승무대로 이끈 이도 바로 그였다.
수문장 경쟁에서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로 떠오른 김진현 역시 화려한 선방쇼로 태극마크의 이유를 증명했다. 5경기 연속 무실점행진을 벌였고 동물적으로 몸을 날리는 순발력은 대표팀의 필드플레이어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결승전에서는 아쉽게 2골을 실점했지만 끝까지 몸을 눕혀 손을 뻗는 공에 대한 집중력은 그의 진가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수비부터 손질한 슈틸리케호의 '늪' 축구
지난해 10월 슈틸리케호는 다가오는 2015 호주 아시안컵을 준비해야 했다. 아시안컵 성적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는 한에서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향해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슈틸리케 감독도 자신의 방식대로 차곡차곡 대표팀에 자신의 색깔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을 본 곳은 수비였다. 선수시절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수비수로 뛰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필드플레이와 세트피스에서 선수들이 그대로 구현해야 할 수비의 전술과 방법들을 먼저 훈련시켰다.
지난해 7월까지 가장 약점으로 지적받던 대표팀 수비는 개월수를 넘기면서 변화가 생겼다. 아시안컵에서는 수비가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리를 잡았다. 일명 '늪' 축구라고 붙은 별명은 슈틸리케호의 수비력을 직접 설명해주는 단어가 됐다.
한국이 승리하는 조건에는 단 한 골이면 충분했다. 조별리그 3경기를 무실점 3전 전승으로 통과했고 8강전에서도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동안 한 골도 내주지 않고 2-0 승리를 거머쥐었다. 0의 행진은 4강전까지 이어졌다. 이라크를 상대로 나온 스코어도 2-0이었다.
5경기까지 이어지던 무실점행진은 아쉽게 결승에서 끝났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수비가 강점이 된 대표팀의 변화는 괄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수비진은 한국의 약점으로 꼽혔다. 조별리그에서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중앙 수비의 조합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로서 자신들의 진가를 보여주면서 슈틸리케호는 더욱 단단해졌다.
변수에 미흡했던 대표팀 관리는 숙제
슈틸리케호의 아쉬운 부분은 바로 관리였다.대회 기간동안 대표팀은 다양한 변수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차전 오만전 이후에 손흥민과 구자철, 김진현 등이 감기 증상으로 고생을 해야 했다.
또한 경기 중에는 핵심 선수들이 잇달아 실려 나갔다. 이청용과 구자철은 각각 정강이와 팔꿈치를 다치면서 대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잔여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선수단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슈틸리케호는 다행히 흔들리지 않았다. 감독의 다양한 용병술과 승부수가 적기에 효과를 보면서 위기들을 돌파해갔다. 자원이 없어도 있는 한에서 최선의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2선 공격수가 적어지자 토너먼트에서는 이정협을 앞세운 원톱으로 문제들을 풀어갔고 좌우 윙어들을 다양하게 기용하면서 다른 색깔들을 냈다.
8강전에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한교원이 수비형 윙어로 나섰고 이근호는 공격력과 활기를 줄 카드로 선발과 교체를 오갔다. 결승전에서는 박주호가 왼쪽에서 시프트 전술을 이행하기도 했다. 각각 선수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해내면서 결승전으로 한국이 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은 아쉽게 마무리됐다. 호주에게 패해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쳤다. 카드가 적었던 슈틸리케호는 연장전에 많은 변화를 주기에 무리가 있었다. 이번 토너먼트의 경험을 좋은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의 대회도 핵심들의 이탈을 그때그때의 차선책으로 매번 메워갈 수는 없다. 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슈틸리케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김형민 기자 khm193@xportsnews.com
[사진=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 대한축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