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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의 스포츠2.0] 시대가 만들어낸 '축구천재' 박주영

기사입력 2013.05.22 01:34 / 기사수정 2013.05.24 22:35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김덕중 기자]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이 천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도 마찬가지. 스포츠에서도 천재는 종종 스포츠 역사를 바꾸는 역할을 해 왔다. 그렇다면 스포츠 천재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혹자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스포츠 유전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려 주는 선물이라고 주장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네 상황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시대적 배경이 스포츠 천재를 만들고 양산하는 게 아닌가 싶다. 도처에 깔린 동시대의 수많은 천재들은,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이후 달라진 생활 패턴이 그렇다. IMF 발생 이후 더 이상 조직이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IMF 이전, 직장을 옮기면 배신자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분위기도 아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건강과 레저와 같은 개인의 일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동시에 스포츠 인기가 올라갔고 스포츠 스타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대표팀이라는 '전체' 보다는 스타라는 '개인'에 더 큰 관심이 쏠리기도 했으며, 국적의 벽을 무너뜨린 세계화는 해외스포츠에 대한 급격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세계와 경쟁하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는 한국인'에 대한 열풍이 불었다. LA다저스의 박찬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에 대한 관심이 이를 입증한다. 2005년 한국축구를 뒤흔들었던 ‘박주영 신드롬’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지 않을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으로 눈높이가 높아진 언론과 팬들은 대표팀의 호성적 뿐 아니라 축구천재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렸다. 때마침 박주영이 등장했고 연령별 청소년대표팀에서 선보였던 그의 유려한 드리블과 화려한 기술은 과거의 한국선수들과는 달라 보였다. '박주영은 천재'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곧 그의 거취가 깊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냉정히 바라보면 우리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전성기의 실력을 뽐내던 1980년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암담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종의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당시 유럽 스타일에 가까운 '킥앤러시'를 구사했던 아르헨티나는 일반인 보다도 키가 작은 마라도나가 나타나, 대표팀 색깔과 상반된 멋진 기술들을 선보이자 쉽게 감정이입이 됐다. 천재라 불리지는 못했으나 데이비드 베컴의 경우도 일맥상통한다. 과거 영국의 유력 신문 '가디언'은 잉글랜드 사람들이 베컴의 세련미에 그토록 열광했던 까닭 가운데 하나로 영국 사회의 트렌드 변화를 지목해 주목을 끌은 바 있다.

결과론이지만 박주영의 프리미어리그 아스날행은 패착이었다. 스페인 셀타 비고 임대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이 또한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스날 복귀를 앞두고 있으나 21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박주영을 유력한 방출 대상자로 지목했다. 영국과 스페인 매체의 잔인하리만치 냉혹한 평가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박주영 또한 시대가 만들어낸 축구 천재일 뿐이다. 박주영이 원했던 적도 없고 우리 또한 이를 모르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짊어져야 했던 어깨의 짐을 얼마나 덜어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첫 유럽 팀이었던 모나코로 떠나기 직전, 유난히 인터뷰를 꺼렸던 박주영을 어렵사리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박주영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천재'라는 단어를 극히 부담스러워했다. 또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궁지에 몰린 최근 상황 때문인지 박주영에게 들었던 퉁명스러운 한마디가 새삼스럽게 뇌리를 스친다. "태어날 때부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라운드에서 빼어난 플레이를 했다면 그만큼 노력을 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한 가지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리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사진=박주영 ⓒ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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