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로스엔젤레스(미국) 문상열 칼럼니스트] LA 다저스 좌완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연착륙으로 많은 야구팬들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곧잘 비교를 한다. 대부분 팬들의 지적은 “류현진은 편안하게 볼을 던지고 불안감이 없다”는 것이다. 빠른 볼을 구사했던 박찬호의 갑작스런 난조로 볼넷을 남발했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는 운이 좋게도 14년 전 박찬호가 다저스 전성기를 누렸을 때와 메이저리그 루키로서 기대 이상으로 안정된 피칭을 하고 있는 류현진을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다. 팬들의 그런 지적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박찬호는 제구력이 뛰어났던 투수는 아니다. 류현진도 그렉 매덕스, 클리프 리(필라델피아 필리스)급의 송곳같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하는 투수는 아니지만 볼넷 허용의 컨트롤 기준에서는 박찬호보다 나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이룬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최초’가 갖고 있는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도 없다. 굳이 ‘박찬호 키드’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있었기에 현재의 류현진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의 선구자였다. 일본의 노모 히데오가 그랬듯이. 류현진이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 동안 활약하고 국내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계약한 6년 이상을 더 뛸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는 게 야구다.
현재 8경기 등판에서 4승을 거뒀으니 등판대비 승수를 따지면 5할이다. 매우 높은 수치다. 초반의 페이스를 감안하면 올시즌 두자릿수 승수는 무난해 보인다. 물론 부상이 없다는 전제가 있다. 박찬호는 1996년 LA 다저스에서 풀타임 메이저리그를 시작한 이후 2010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까지 통산 124승98패를 기록했다. 아시안 출신 투수로는 최다승이다. 124승 작성이 간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만만한 승수는 아니다. 바로 투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투수는 언제 부상을 입을지, 구위가 실종될지 판단이 어렵다.
일본인 마쓰자카 다이스케(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이너리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쓰자카도 류현진처럼 같은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포스팅시스템으로 6년 계약을 체결하고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류현진이 대한민국의 에이스라면 마쓰자카는 일본 프로야구의 에이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108승60패 방어율 2.95를 작성하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2007년 보스턴에서 둥지를 틀 때 26살이었다. 류현진보다 한 살 많았다. 일본 언론의 호들갑은 알아줘야 한다. 실체도 없는 자이로볼을 등장시키며 마쓰자카를 띄웠다. 마쓰자카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투수였다. 선동열이 국내 프로야구에서 이룰게 없어 일본으로 진출했듯이 마쓰자카 역시 그의 무대는 세계 최고봉 메이저리그였다.
마쓰자카는 2007년 메이저리그 첫 해 32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204.2이닝을 던졌다. 투구이닝만으로도 팀내 최다였다. 방어율은 4.40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15승12패와 함께 팀은 월드시리즈 정상을 밟았다. 삼진도 투구이닝과 맞먹는 201개였다. 보스턴의 마쓰자카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펜웨이파크의 작은 기자실은 매 경기 일본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본 기자들의 대거 취재로 보스턴 구단은 보조 기자실을 만들어야 했다.
2008년 마쓰자카의 위력은 눈부실 정도였다. 6월에 부상자명단에 오르고 시즌 29경기에 등판해 167.2이닝을 던져 18승3패에 방어율 2.90을 마크했다. 메이저리그 승률 1위였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부문에서 4위에 랭크됐다. 이 해 사이영상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클리프 리가 22승3패로 수상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마쓰자카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갈수록 위력을 떨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마쓰자카의 성적은 이 때까지로 사실상 끝났다. 2009년 부상으로 59.1이닝을 던졌다. 방어율은 5.76. 2010년 153.2이닝 투구로 9승6패 4.69. 2011년 37.이닝, 2012년 45.2이닝. 이쯤되면 마쓰자카의 굴욕이다. 메이저리그 통산 6년 동안 거둔 성적이 50승37패다.
올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뒤 ‘빅리그’ 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사실 입단 첫 해와 이듬해 마쓰자카의 초고속 상승세를 봤을 때는 노모 히데오(123승)의 승수를 뛰어 넘는 것은 아주 간단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승수다. 박찬호의 아시안 최다 124승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다르빗슈 류(22승)가 노모와 박찬호의 승수를 가장 먼저 경신할 수 있는 후보로 꼽힌다. 나이(26)와 체격조건(195cm)등에서 마쓰자카보다는 다르빗슈가 월등히 앞선다. 마쓰자카는 메이저리그 투수로서 생존하기에는 다소 작은 체구(182cm)다. 운동선수는 하드웨어가 좋아야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전성기는 1996년과 프리에이전트를 선언한 전 해인 2001년까지다. 딱 6년이다. 23살부터 28살까지다. 구원과 선발을 오간 1996년 5승을 작성한 뒤 이후 5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이 때 200이닝 이상을 3차례나 했다. 대박을 터트리기 전인 2001년에는 메이저리그 최다 35경기에 선발로 나서 234이닝을 던지며 15승을 거뒀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234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저스틴 벌랜더가 유일하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R A 디키가 뉴욕 메츠에서 233.2이닝을 투구했고, 아메리칸리그의 데이비드 프라이스(탬파베이 레이스)는 211이닝에 불과했다. 박찬호가 얼마나 훌륭한 투수였는지를 기록으로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류현진은 다저스에서 있는 동안 한 시즌 200이닝 이상 투구가 쉽지않다.
선수의 능력은 한 시즌으로 결정나는 게 아니다. 박찬호가 제구력이 흔들려서 가끔씩 불안감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다저스에서의 6년은 정말 위력적인 구위로 팬들을 즐겁게 해줬다. 155km의 불 같은 강속구는 야구팬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 청량제였다.
로스앤젤레스 | 문상열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박찬호 은퇴식 ⓒ 엑스포츠뉴스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