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차갑고 거칠게 보이지만 막상 품에 안기면 온기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암벽은 그렇게 다가왔다. 홀드(인공암벽에 붙은 물체)를 하나씩 잡으면서 올라가는 스릴감은 무엇보다 짜릿했고 완등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스포츠 클라이밍의 세계에 빠져든 김자인(24,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은 세계를 정복했다. 올 시즌 리드 부분 세계랭킹 1위에 복귀하면서 자존심을 회복했다. 또한 한국스포츠클라이밍 사상 처음으로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세계선수권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올렸다.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의 전도사가 됐다.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레저스포츠로 여겨진 이 종목은 김자인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전파됐다. 김자인의 영향으로 최근 인공암벽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인구가 점점 늘어서 무엇보다 기쁩니다. 주로 20~30대 분들이 많이 찾아오시고 어린 친구들도 스포츠클라이밍에 재미에 빠져들고 있어요."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선수로는 유일하게 두 종목 결선행
기나긴 국제대회를 마친 김자인은 이달 초 잠시 국내에 들어왔다. 올 시즌 가장 큰 대회인 세계선수권이 막을 내렸지만 4개의 대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김자인은 지난주 중국 시닝에서 열린 월드컵시리즈에 출전해 리드 부분 동메달을 획득했다.
지난달 16일(이하 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자신의 주 종목인 리드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지난해에 이어 금메달을 아깝게 놓쳤지만 볼더링에서 결선에 진출해 종합 1위에 올랐다.
"리드 종목 1위를 노렸지만 볼더링에서 결선에 올라 너무 기뻤어요. 예선에서는 20위(예선 20위까지만 준결승 진출)로 턱걸이를 해서 준결승에 진출했죠. 그리고 결선까지 올랐는데 여자부 중 리드와 볼더링에서 모두 결선에 오른 선수는 저 밖에 없었어요. 이러한 성과가 종합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한국 스포츠클라이밍 역사를 새롭게 쓴 그는 일주일 후에 열린 벨기에월드컵 리드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달 초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리드월드컵 5차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 시즌 월드컵 우승에 목말랐던 김자인은 3개 대회에서 연거푸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와 비교해 신체적으로는 크게 힘든 점이 없었어요.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그렇지 않았죠. 시즌 초반에는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들었는데 세계선수권대회를 기점으로 상승세가 이어졌습니다."
시즌 막판으로 접어든 현재 김자인은 3개 대회를 남겨놓고 있다. 특히 오는 19부터 전남목포 국제스포츠클라이밍센터에서 열리는 IFSC 리드 월드컵 7차전에 출전할 예정이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국내 일반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자인의 여정은 목포까지 이어졌다.
▲김자인이 항상 품고 다니는 MP3 플레이어, '즐겁게 완등가자'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요즘 대세는 나쁜 남자? 전 선한 남자가 끌려요
스포츠클라이밍 선수의 스케줄은 대회 출전으로 쉴 틈이 없다. 바쁜 와중에도 학업에 충실했던 그는 올 2월 고려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지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때도 대부분 과목에서 높은 학점을 받았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강해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하반기에 몰려있는 국제대회가 때문에 현재는 휴학을 한 상태다. 암벽과의 치열한 사투가 끝난 뒤 책과 씨름을 했던 김자인의 낙은 '음식 맛보기'다. 일주일동안 시간이 주어지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우선 먹어야죠"라며 활짝 웃었다.
"오늘 아침도 스테이크를 먹었어요.(웃음) 먹는 것 중에서도 육류를 특히 좋아하는데 소고기를 가장 선호합니다. 그리고 양고기도 즐기죠. 국제대회 출전 때문에 많은 나라를 방문해요. 그래서 다양한 음식을 접해볼 수 있는데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습니다.(웃음) 중국에 가면 안 맞는 음식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계세요. 하지만 전 그곳에서도 음식에 잘 적응했어요.(웃음)"
시간이 나면 맛 집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검색하는 것이 그의 취미다. 정말로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꼭 찾아가기도 한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다른 20대 여자들처럼 옷과 꾸미는데 욕심이 많다"고 밝혔다.
"평소 운동을 할 때는 운동복 차림을 선호하지만 일상에서는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여성적이면서 세련된 풍의 옷을 선호하지만 너무 공주풍의 옷은 거부감이 들어요.(웃음) 경기를 할 때도 화장을 하는데 꽤 신경 써서 하고 나오죠.(웃음)"
"현재 싱글 9개월째"라고 솔직하게 밝힌 그는 "전체적으로 선한 사람이 끌린다"라고 공개했다.
"나쁜 남자가 대세라고 하는데 전 선한 사람이 좋아요. 전체적으로 선한 인상에 호감이 가는 편이죠. 외모를 보는 눈은 그리 높지 않아요. 하지만 개념이 없는 사람은 호감이 생기지 않아요. 자상하게 잘 챙겨주면서 헌신적인 남자가 좋습니다. 또한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저와 많은 것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클라이밍을 함께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죠.(웃음)"
양손에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암벽을 등반한 그는 바위처럼 변함없이 달려왔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등반을 계속할거라고 밝힌 김자인은 "스포츠클라이밍에서 경쟁자는 순위를 다투는 사이지만 동일한 코스를 오르는 동반자와 같다"는 말을 남겼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