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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14' 대한민국, 야구로 물들다

기사입력 2006.03.16 00:17 / 기사수정 2006.03.16 00:17

윤욱재 기자

2006년 3월 14일.

세상에 우리가 미국을 이겼습니다. 야구 종주국이자 뿌리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야구를 한국이 꺾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사실 미국전 승리를 기대하고 지켜본 팬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미국 야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예상과 다른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1회말 이승엽이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치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승엽의 페이스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난해 22승을 거둔 미국 대표팀 에이스 돈트렐 윌리스의 직구를 담장 밖으로 보낼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윌리스가 프로에서 뛰었던 3년동안 왼손타자에게 단 3개의 홈런을 허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승엽의 선제 솔로홈런이 터지고 곧이어 만든 찬스에서 이범호가 좌전적시타로 김태균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두 점째를 얻었습니다. 사실 이범호는 '주포' 김동주의 부상으로 대신 주전 3루수로 뛰게 된 선수입니다. 물론 이범호도 출중한 파워를 갖췄지만 국제 경험이 풍부하고 4번타자로 적격인 김동주가 빠진 공백이 쉽게 메워지겠냐며 주위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범호는 자신에게 온 찬스를 마다하지 않고 가볍게 적시타를 터뜨렸고 3회엔 땅볼타구를 날려 3루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팀배팅으로 이날 2타점을 기록, 한국 승리의 수훈갑이 되었습니다. 

2-0으로 앞서던 3회초. 선발투수로 나선 손민한이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솔로홈런을 허용하며 첫 실점을 허용합니다. 그리피는 1루를 돌며 베이스 코치로 있는 아버지와 하이파이브를 했고 홈으로 들어와선 배트보이로 나온 아들과 기쁨을 나눴습니다. 3대가 모두 대표팀에서 활약하다니. 가문의 영광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요?

한국은 한 점을 추가해 3-1을 만들었지만 상대가 무시무시한 파워를 갖고 있는 미국이란 점을 생각하면 '여유'란 단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추가점이 필요했습니다. 

4회말 한국 공격. 쉽게 투아웃을 당한 한국의 공격은 이렇게 무위로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한방이 터져나옵니다. 김민재가 좌중간을 가르며 원바운드로 펜스를 넘긴 것입니다. (이럴 경우 2루타로 인정됩니다.) 더 놀라운 상황은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날렸던 이승엽이 등장하자 미국 코칭스태프가 고의4구를 지시한 것입니다. 아무리 한국의 최고타자인들 세계최강을 자부하는 미국이 고의4구를 지시하다니? 이것은 세계최강 답지 못한 행동이었고 또 가장 큰 실수였습니다.

1사 1,2루. 한국은 4회부터 던지기 시작한 미국의 불펜투수 댄 휠러가 오른손 투수임을 고려해 김태균을 빼고 최희섭을 대타로 기용합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최희섭은 몸쪽 직구를 자신있게 때려냈고 아슬아슬하게 폴대 안으로 들어가자 경기장의 교민들과 TV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3점홈런이 터진 것입니다.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승리의 예감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이긴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던 것입니다.

물론 아직 경기가 끝나진 않았지만 미국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은 투지와 정신력에서 우리보다 한참 밀렸습니다. 그러니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경기하는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강타자들로 구성된 미국 라인업을 살펴보면 모두 소속팀에서 없어선 안될 실력파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구는 이름값으로만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않았던 한국은 결국 7-3으로 승리했고 대회 무패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세상에 우리가 미국을 이기다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조국에 승리를 안긴 대표팀을 보며 힘찬 박수를 건넨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기자이기 전에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감격스럽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납니다.

집에서 TV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웠고 회사에선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습니다. 물론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학교 수업 도중에 휴대폰 문자로 확인하며 속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봤던 청춘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지인들을 통해 들은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기뻐했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한국이 미국을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날 경기를 중계했던 SBS는 이례적으로 황금시간대에 하이라이트 방송을 편성했고 각 방송사의 뉴스 프로그램에선 야구 얘기로만 20분 이상을 할애하며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승전보를 전한 적은 꽤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후세 사람들이 '한국이 미국을 7-3으로 꺾었다'는 단순한 문장으로 이 사실을 알게되는 것이 아니라 이날 미국전 승리가 얼마나 대단하고 국민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 수 있도록 짧은 글로 나마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대회가 끝나진 않았습니다. 4강 진출도 확정이 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 야구의 저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희망을 얻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선수들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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