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시인 기자] 시즌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아스널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아스널은 23일(이하 한국시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12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2라운드 홈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1-2로 패했다.
이로써 리그 3연패를 기록한 아스널(승점 36)은 4위 첼시(승점 41)와의 승점차가 5점으로 벌어지며 빅4 진입에 적신호가 켜졌다.
아스널은 지난 1일 열린 퀸즈파크 레인저스와의 19라운드 홈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리그 4위로 올라선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열린 풀럼, 스완지전에 이어 맨유전까지 내리 패했다. 올 시즌만 벌써 리그에서 8패다.
측면 수비진의 줄부상이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지적받고 있지만 공격력 저하도 이에 못지 않다. 아스널은 1월 한 달 동안 열린 5경기에서 고작 6골을 터뜨리는데 그쳤다.
로빈 판 페르시는 맨유전에서 후반 26분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뜨려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경기력은 아쉬움이 남았다. 판 페르시는 평소보다 무거운 몸놀림으로 일관했고 미드필드 지역까지 내려와 볼을 받는 횟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시즌 초반 리그 17위까지 내려앉은 아스널이 5위까지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판 페르시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판 페르시는 리그에서 팀이 넣은 39득점 가운데 혼자서만 무려 19골을 책임졌다. 수치상으로 거의 50%에 육박하는 득점 비율이다.
하지만 판 페르시가 맨유전과 같이 부진할 경우 아스널의 공격은 무척 단조로워진다. 지난 맨유전에서도 판 페르시의 원활한 연계 플레이가 실종되다 보니 상대 진영에서 세밀한 패스와 유기적인 스위칭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한 선수가 경기마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러한 점을 채워줘야 하는데 현재의 아스널에선 판 페르시를 제외한 제2의 득점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시즌 9골(28경기)을 기록한 시오 월콧은 올 시즌 20경기에 출전해 3골에 머물렀으며 급격하게 폼이 저하된 아르샤빈(17경기 1골)은 최근 들어 벵거 감독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다. 영입생 제르비뉴(18경기 4골)의 득점력도 기대치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다. 지난 시즌 전 소속팀 릴에서 14골 10도움을 기록했지만 정작 아스널에선 골 결정력 난조로 인해 결정적인 기회를 날린 경기가 수두룩했다.
미드필더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부재는 아스널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파브레가스는 빠른 2선 침투에 이은 득점 빈도가 매우 높았을 뿐만 아니라 중원에서 정확한 패스를 공급하며 수많은 도움을 양산해냈다. 하지만 1990년생 애런 램지(21경기 1골)가 파브레가스를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강한 체력과 왕성한 운동량, 개인 기술은 뛰어나지만 실수가 잦고 파브레가스만큼의 패싱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또한 영입생 미켈 아르테타(17경기 3골)는 포백 라인 앞에서 안정적인 빌드업 전개에 치중하고 있어 전방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다소 적은 편이다.
물론 판 페르시의 활약이 시즌 막판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부상의 위험이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다. 지금까지 판 페르시는 2004년 아스널 입단 이후 리그에서 30경기 이상을 소화한 적이 없다. 그동안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유리몸이라는 별칭을 달고 다닌 판 페르시였기에 불안감이 쉽게 가시지 않는 이유다.
올 시즌 부상 없이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지만 전반기 내내 지나치게 혹사를 당했다. 판 페르시는 올 시즌 모든 대회 통틀어 선발로 출전한 25경기 가운데 무려 21번이나 풀타임을 소화했다. (선발 25경기 교체 3경기) 아르센 벵거 감독의 입장도 난처할 수밖에 없다. 에이스 판 페르시를 후반 도중 빼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판 페르시가 빠지면 골을 책임질 선수의 부재가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 백업 공격수 마루앙 샤막과 박주영이 판 페르시를 대체하기엔 전술적인 움직임과 기량적인 측면에서 부족한 게 사실이며 워낙 적은 출전 시간을 부여받은 터라 경기 감각이 크게 저하돼 있다.
최근 한 달 동안 판 페르시는 여전히 골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과부하에 걸린 탓인지 몸놀림이 눈에 띄게 무거워진 인상을 지울 수가 없으며 상대 수비의 견제는 더욱 극심해졌다. 후반기가 지날수록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판 페르시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인데 만일 부상으로 쓰러질 경우 플랜B가 제대로 가동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벵거 감독은 1996년 아스널 사령탑을 맡은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판 페르시 의존도를 얼마냐 줄이느냐가 향후 아스널의 운명을 좌우할 전망이다.
[사진 = 판 페르시, 아르샤빈, 월콧 ⓒ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캡처]
박시인 기자 cesc@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