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4.06.13 08:34 / 기사수정 2004.06.13 08:34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에피스드 Ⅰ
차범근 감독의 고민, 우리의 고민
축구의 흥행. 이것은 각 언론사의 축구담당 기자들은 물론이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어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이야기는 단연 화두였다. 비록 대한민국이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이룩해내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표현 그대로 신화이자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요소는 무엇이고, 그 해결법은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한국 프로리그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어느 기자가 차범근 감독에게 이렇게 묻는다. 일각에서는 프로리그의 질적 수준(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차범근 감독은 이렇게 받아친다.
- 유럽과 비교하면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대표 경기에는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가.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고민해야 한다. 축구협회, 프로연맹, 구단이 계속 대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하여 거리를 좁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대표팀의 성적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축구협회에서 일방적으로 지시를 해서는 안 된다.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안 그러면 모두가 망한다. 현재도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또 이런 얘기도 했다.
- 대표팀 선수들이 없이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것도 반대다. 전 세계적으로 대표팀 경기로 인해 프로선수들이 시즌 중 모두 빠져나가는 나라는 드물다.
-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 골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의미에서 심판 판정이 잘못 내려지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고,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경우에는 프로축구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불행한 일이다. 최근 그러한 상황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 사실 판정의 시비는 다른 팀에서도 많이 있었다. 이로 인해 선수들의 사기 저하 및 경기 흐름의 차단이 우려될 정도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어렵다.
-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스타플레이어가 만들어지도록 언론에서 도와 달라. 스타플레이어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또한 그렇게 탄생한 스타플레이어를 키워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스타플레이어가 탄생하기는 어렵지만 그 선수를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 쉽다면서 말이다. 물론 이 날 얘기한 것 이외에도 더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 협회와 구단 간의 관계 개선, 심판의 공정한 판정, 언론의 역할.
차범근 감독의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보자. 그는 팬들이 그라운드를 찾지 않는 이유를 팬들의 탓으로 돌리거나 팬들을 원망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비단 축구계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동안 “네 탓이오”를 외쳐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다. 이제는 좀 잠잠해진 편이지만 얼마 전 기술위원장 선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어 자리를 물러났고, 또 누군가는 뒤로 숨었다. 씁쓸한 얘기지만, 그나마 팬들이 한 목소리를 내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팬들이 축구의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프로축구의 흥행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도중 필자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시민구단의 창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민구단의 창단이 프로리그의 만성적자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좋은 의견이다. 팬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시민구단이 창단 되면 기업이 운영하는 프로팀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그러한 시도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시민구단의 장점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람직하다. 제도는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면서도 부작용이 없도록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피소드 Ⅱ
축구를 하는 이유
앞서 열거한 이야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꼭 소개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 차범근 감독 직접 겪은 에피소드인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 활약한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
- 독일에서 활약할 당시 내가 골을 넣었을 때는 “차범근”이라고 전광판에 한글로 이름을 적어 줬었다. 아직도 그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힘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그 말 한마디가 내가 축구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내가 받은 그 감동을 팬들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해 아직도 고민 중이다. 축구교실을 1990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내가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자 국민들과의 약속이다.
차범근 감독은 이 외에도 여러 이야기를 더 들려주었지만 필자가 굳이 이 이야기를 인용하는 까닭은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매우 멋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응원의 말 한마디가 자신이 축구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선수로써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계의 선배의 입장에서 들려 준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수들은 무얼 먹고 사나.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쩌면 팬들의 응원소리를 듣는 낙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은 때론 연봉 때문에, 혹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해외로 나가거나 팀을 이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느 곳에 있건 간에 팬들이 외면한다면 그 선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멋진 경기를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과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들려주는 일. 그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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