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환 기자) 손흥민이 누구보다 그동안 토트넘 홋스퍼에 헌신한 선수라는 걸 잊은 걸까. 고작 한 번의 라이벌 더비에서 손흥민에게 지나칠 정도의 혹평이 내려졌다.
일부 토트넘 팬들은 토트넘이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에서 패배한 뒤 손흥민이 세트피스 실점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자 손흥민을 "최악의 주장"이라고 평가하는 등 손흥민을 비판했다.
손흥민은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 체제에서 세트피스 실점이 유독 많아진 토트넘의 현 문제점을 언급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일부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찰 자격이 없다며 성을 내고 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토트넘은 지난 15일 영국 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스널과의 2024-25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PL) 4라운드 북런던 더비에서 후반전 아스널의 센터백 가브리엘 마갈량이스에게 헤더 결승골을 헌납해 0-1로 패배했다.
앞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1-2 패배를 당했던 토트넘은 주장 마틴 외데고르와 핵심 미드필더 데클런 라이스 등이 빠진 런던 라이벌 아스널을 상대로 반전을 노렸지만 오히려 세트피스에서 결승골을 얻어맞아 패배, 2연패에 빠지고 말았다.
토트넘은 이번 시즌 레스터 시티와의 개막전에서 비긴 뒤 이어진 에버턴전에서 4-0 대승을 거뒀으나, 이후 2연패를 기록했다. 10경기 무패를 달렸던 지난 시즌 초반과 크게 비교되는 나쁜 성적에 분위기도 고꾸라졌다.
문제는 성적에 대한 분노 중 일부가 토트넘의 주장 손흥민에게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장이 선수단을 대표하는 건 맞지만, 현재 손흥민을 향한 지나친 비판과 분노는 정당하다고 보기 힘들다.
손흥민이 일부 토트넘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는 북런던 더비 후 방송사와의 인터뷰 도중 꺼낸 발언 때문이다.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자신의 주 포지션인 왼쪽 측면 공격수 자리에서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슈팅 1회에 그치는 등 별다른 활약 없이 경기를 마쳤다.
토트넘 입장에서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경기를 주도하고도 패배를 당했다는 점이었다. 토트넘은 아스널을 상대로 6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슈팅 10회(유효슈팅 6회)를 비롯해 경기 내내 수 차례 아스널을 위협했지만 한 골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후반전 세트피스에서 결승골을 내준 것이다.
손흥민도 충분히 아쉬움을 드러낼 만한 경기 내용과 결과였다.
손흥민은 북런던 더비에서 패배한 뒤 영국 방송사 '스카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경기를 지배하고도 또다시 세트피스에서 실점을 허용했다. 지난 시즌에도 그랬다. 정말 실망스럽다. 팬분들도 정말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이 부분을 100% 개선해야 한다. 힘든 순간이지만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손흥민은 "우리는 공격 지역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선수들은 득점으로 이를 책임져야 한다. 축구에서 가장 어려운 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냉철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회복할 것이다. 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 체제에서 토트넘의 고질병으로 지적되고 있는 세트피스를 언급한 것이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막바지에도 토트넘이 세트피스에서 지나치게 많은 실점을 허용하자 다른 선수들과 함께 세트피스의 중요성을 짚었는데,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두 번째 시즌에서도 이 부분이 개선되지 않자 다시 한번 세트피스 이야기를 꺼냈다.
그도 그럴 게 토트넘은 지난 시즌 치른 아스널과의 북런던 더비에서도 세트피스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게다가 세트피스에서의 토트넘의 약점은 비단 아스널전에 그치지 않고 시즌 막바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토트넘을 괴롭혔다. 손흥민의 발언이 정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 토트넘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해당 팬들은 북런던 더비 패배의 책임 중 상당수가 주장 손흥민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손흥민은 아스널전에서 슈팅 1회(유효슈팅 0회), 기회 창출 1회, 드리블 돌파 성공 2회 등을 기록했으나 경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영국 '풋볼 런던'을 비롯해 현지 매체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도 받았다.
글로벌 스포츠 매체 '골닷컴'에 따르면 일부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이 부진하자 "부끄러운 주장이다", "경기를 지배하는 게 이긴다는 건 아니다. 손흥민은 우리 팀 역대 최악의 주장이다", "주장은 목소리가 권위가 있고,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해야 한다. 손흥민은 주장감이 아니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레스터 시티전에 이어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다시 등장했다.
영국 매체 '풋볼 팬캐스트'는 "토트넘은 손흥민을 대신해 왼쪽에서 활약할 수 있는 측면 공격수를 여럿 보유했다"면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다가오는 경기에서 윌송 오도베르에게 선발 출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번리를 떠나 토트넘에 합류한 오도베르는 준족과 공을 다루는 기술을 보유한 윙어지만, 정작 아직까지 토트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 레스터전 이후 손흥민을 빼고 오도베르를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목소리가 사라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풋볼 팬캐스트'는 "오도베르는 기대 이하의 퍼포먼스로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오도베르는 토트넘의 시스템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며, 아스널전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토트넘에 필요한 에너지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그러면서 "손흥민은 아스널전에서 공격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도베르가 코번트리전에 출전하도록 손흥민이 선발에서 빠져야 한다"고 했다.
라이벌전 패배와 연패에 빠진 현 상황은 토트넘에 크나큰 악재가 맞다. 하지만 그 패배의 책임을 손흥민에게만 돌리는 건 과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팀의 세트피스에 대한 지적은 지난 시즌 막바지부터 나왔던 이야기고, 어려운 상황에서 팀이 하나로 뭉쳐 회복해야 한다는 건 주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분노한 토트넘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손흥민이 지난 9년간 토트넘에서 헌신했다는 걸 잊은 듯 손흥민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주장을 흔들면 결국 팀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진=연합뉴스
김환 기자 hwankim14@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