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태승 기자) 지난 여름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토트넘 홋스퍼에 처음 부임했을 때 축구종가 잉글랜드, 그리고 유럽 사람들의 시선은 회의와 의심으로 가득 찼다. 스코틀랜드, 일본, 호주에서 프로 감독을 했고 대표팀도 자국인 호주대표팀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토트넘이란 굵직한 구단을 축구 변방 호주에서 온 감독이 맡는다는 것 자체로도 부정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지금 잉글랜드는 그 최초의 호주 국적 프리미어리그 감독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 시즌 8위에 그쳤고, 간판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까지 내보내 전력을 모두 상실했다고 여겨진 토트넘을 이끌고 카리스마있는 리더십과 우직한 공격 축구를 밀고 나가 리그 초반 10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면서 선두까지 질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토트넘의 성공 비결은 바로 포스테코글루의 대인 관계에 있었다.
22일(한국시간) 호주 스포츠 전문 매체 '옵터스 스포츠'는 자국 위상을 드높인 포스테코글루와의 1대1 인터뷰 영상을 공개하며 프리미어리그 8~10월 '이달의 감독'을 수상한 신흥 명장을 파헤쳐보는 시간을 가졌다.
포스테코글루는 먼저 프리미어리그서 감독직을 역임하는 소감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금껏 맡았던 모든 리그와 팀들이 특별하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유달리 특별한 이유는 그 영향력에 있다"며 "사회와 전세계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리그"라고 했다.
이어 "프리미어리그에 있는 것이 (처음이지만) 어색하지 않다"며 "나는 한평생 축구에 미쳐 살았다. 모두가 축구에 미쳐 있는 (프리미어리그 같은)곳에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진행자로, 이동국과 함께 미들즈브러에서 뛰는 등 호주와 프리미어리그 스타 골키퍼로 활약했던 마크 슈워처가 포스테코글루에게 "지난 첼시전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수비 라인을 높게 올리는 공격적인 축구를 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줘 자랑스러운가"라고 물었다.
지난 7일 토트넘은 첼시와의 맞대결에서 2명의 선수가 퇴장당해 9명으로 경기를 치러야했다. 비록 토트넘이 1-4로 대패했지만 다수의 축구 전문가들은 포스테코글루가 오히려 수비라인을 높게 올려 대응한 점을 높이 사며 그의 공격 전술에 찬사를 보냈다.
포스테코글루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선수들만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는 "(패배 후) 코치들에게 '비록 오늘은 졌지만 우리는 이 선수들을 데리고 원하는 방식으로 축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우리가 졌다는 사실에 가려진 긍정적인 측면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코치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를 빨리 받아들여 기쁘다"며 "처음 손발을 맞춰보고 있지만 내 철학을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라고 감사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처음부터 코치들이 포스테코글루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 최정상 무대서 감독을 하다 온 사람도 아닐 뿐더러, 호주라는 축구계 제3세계 출신이었기 때문에 포스테코글루는 스스로를 증명해야했다. 그는 "시즌 전 코치들과 대담을 갖는 것은 중요하냐"는 질문에 "100% 그렇다"고 했다. 코치진을 충분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포스테코글루는 "지금 이 인터뷰에 나 혼자 왔다. 이 (토트넘 구단)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로만 설득할 순 없기 때문"이라며 "사람으로서 믿음이 가야 내가 하는 말이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사람과 사람간 커넥션을 중요시하는 포스테코글루의 모습은 그의 호주인 사랑에서도 드러났다.
토트넘은 지난 6월 포스테코글루를 감독으로 선임함과 동시에 새로운 코치 두 명을 선임했다. 그 중 하나는 마일 예디낵이었다. 예디낵은 호주 국가대표 주장 출신 코치로 선수시절 크로아티아, 튀르키예 등 각국 축구 리그를 거쳐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9년 은퇴한 후 친정팀인 애스턴 빌라 유소년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토트넘이 예디낵을 영입한 것은 포스테코글루의 요청에서 비롯됐다. 예디낵은 포스테코글루가 과거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할 때 주장을 맡았던 것을 인연으로 함께 토트넘에 입성하게 됐다.
포스테코글루는 그를 데려온 이유에 대해 "그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며 "그가 (호주 대표팀 당시)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모습을 보고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예디낵은 코치 자격증도 취득한 상태였다"고 술회했다.
'인맥'을 통한 선임에 회의적인 시선이 쏟아졌지만 포스테코글루의 생각은 확고했다.
포스테코글루는 "난 호주인들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며 "어쩔 수 없다. 호주서 축구 선수로 프리미어리그에 오는 것은 수많은 관문을 뚫어야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도자라면 10배는 더 힘들다"며 호주 출신의 비애를 전했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포스테코글루는 "호주인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족적을 남겨서 호주인들이 이곳으로 올 수 있게끔 더 많은 길을 터주고 싶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토트넘은 핵심 선수들의 부상과 이탈로 최근 리그 두 경기서 패배하며 1위에서 4위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포스테코글루는 이를 양분 삼아 재기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는 "아무도 힘든 시기를 맞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런 시간들이 오히려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더 웨스트 어스트레일리안, 옵터스 스포츠
이태승 기자 taseau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