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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타자' 프로야구 완전정복

기사입력 2006.05.14 02:16 / 기사수정 2006.05.14 02:16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8] 수퍼루키 ② 1996년 박재홍 

현대 프런트의 야심작 '지명권 트레이드'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고 프로야구에 뛰어든 현대는 의욕적으로 팀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팬 공모를 통해 팀명을 현대 유니콘스로 확정했고 감독 경험이 전혀 없는 김재박 코치를 새 사령탑으로 선임해 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 현대는 초고교급 유격수 박진만이 입단하고 '괴물타자' 박재홍이 가세해 한층 탄탄한 선수진을 구축했다.

광주일고-연세대를 졸업한 박재홍은 원래 해태가 1992년에 1차 지명한 선수였지만 박재홍은 해태 대신 실업팀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 해태는 살림이 어려운 처지에서도 파격적인 제시를 했지만 박재홍이 만족을 못하니 협상에 진전이 없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같이 입단하는 김종국이 박재홍과 자존심 싸움을 벌여 해태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태평양을 인수하고 프로에 발을 디딘 현대가 모기업이 갖고 있는 현대 피닉스의 힘을 빌려 박재홍을 프로에 들여올 계획을 세웠다. 결국 해태는 현대의 물량공세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울며 겨자 먹기'로 현대에 트레이드를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 2006년 현재 SK에서 뛰고 있는 박재홍 선수
ⓒ 남궁경상
이때 해태는 박재홍을 포기하는 대신 투수 안병원을 트레이드카드로 요구했으나 현대가 난색을 표했다. 현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최상덕으로 카드를 수정 제의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트레이드는 최상덕이 해태로 가는 대신 박재홍의 지명권을 받는 것이다.

결국 현대는 해태의 동의를 얻었고 이렇게 해서 박재홍은 현대 선수가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현대 프런트의 첫 작품이었고 프로야구의 역사를 바꾼 트레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편법 트레이드라며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박재홍은 실업팀에서 받기로 한 계약금 4억 3천만 원을 모두 보장받는 조건으로 정식 입단했다.

어렵게 '괴물타자'를 '모셔온' 현대는 박재홍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김재박 감독은 박재홍을 톱타자 겸 우익수로 정했고 박재홍은 클러치 능력과 빠른 발을 앞세워 개막 초부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부응했다.

상대의 견제에 흔들림없는 진정한 대형타자

96년은 억대 신인이 풍년을 이룬 해였다. 전설의 92학번이 졸업한 것은 물론 우수한 고교유망주들의 등장 그리고 각 팀의 과열된 스카우트 경쟁으로 억대 계약금을 받은 선수가 무려 41명에 이르렀다. 최고 계약금은 차명주(롯데), 최창양(삼성)이 받은 5억 원. 막차로 프로에 들어온 박재홍도 기대를 한몸에 받고 현대에 입단해 몸값을 해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개막 초 톱타자로 기용된 박재홍은 기회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다. 박재홍은 5월부터 3번타자로 전환해 주자만 모이면 싹쓸이하는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며 신인인데도 홈런-타점 부문 상위에 올랐다. 개막 전만 해도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던 현대가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것도 박재홍의 가세가 결정적이었다.

박재홍에 대한 견제가 심해진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투수들은 그가 나오면 더는 직구를 던지지 않았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으로 장타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박재홍은 가볍게 단타로 연결해 16연속 경기 안타를 기록해 지혜롭게 타격감을 유지했다.

고향인 광주로 가자 사건이 터졌다. 5월 10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해태전에서 박재홍이 타석에 들어서자 심한 야유가 쏟아졌다. 어떻게 고향팀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있느냐는 해태 팬들의 항의. 그런데 경기가 진행되면서 그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현대가 경기를 앞서자 관중의 야유는 점점 심해졌고 심지어 물병까지 던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7회 말 수비에 들어가는 박재홍에게 외야에서 맥주 캔이 날아오기까지 했다. 결국 관중이 던진 이물질에 안면을 강타당한 박재홍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정타석 논란도 박재홍을 괴롭혔다. 타석에 들어서면서 왼발이 타석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간파한 타팀이 이를 두고 항의를 거듭한 것이다. 심판에게 경고를 받은 적도 있어 이는 논란 대상이 되었고 이 때문에 박재홍은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그래도 흐트러지지 않고 다시 타격에 전념한 박재홍은 새로운 대기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기록, 바로 30홈런-30도루 클럽.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그동안 20-20도 희귀종으로 꼽혔던 만큼 박재홍의 30-30 도전은 야구판을 뒤집어놓을 만큼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줬다. 차곡차곡 도루를 쌓아놨던 박재홍은 도루를 이미 30개 이상 채워놓은 상태에서 김용수(LG)에게서 30번째 홈런을 기록, '괴물타자'의 진가를 보여줬다.

이러자 박재홍이 신인왕은 물론 MVP까지 타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전례도 없는데다 신인이 MVP까지 동시석권 하는 일은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결국 그는 신인왕을 타는데 만족해야 했다.

현대는 선두를 질주하다 시즌 막판 투타의 균형 상실로 4위로 주저앉았다. 다행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현대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2연승으로 연파하고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쌍방울과 치른 플레이오프에서 전주 2연전을 모두 내줘 벼랑 끝에 몰렸으나 인천 2연전과 마지막 잠실 5차전을 모두 싹쓸이하며 역대 유례없는 대역전극을 일궈냈다.

한국시리즈에서 전통의 명가 해태와 만난 현대는 1차전 해태의 집중력에 밀려 8-3으로 경기를 내줬지만 2차전에선 연장 11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1승을 만회했다. 인천으로 무대를 옮긴 현대는 3차전에서 이강철에게 완봉패를 당했지만 4차전에서 정명원이 노히트노런으로 설욕, 2승 2패로 균형을 이룬 뒤 잠실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현대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포수 장광호가 눈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펼쳤고 박재홍도 생애 첫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해태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한국야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신인

한국야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신인을 꼽으라면 아마 박재홍이 그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박재홍이 일으킨 돌풍은 야구 판도를 뒤집은 것은 물론 흐름도 바꿔놓았다.

박재홍의 활약이 더욱 빛난 이유는 억대 계약금이 판을 친 당시 유일하게 제 몫을 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억대 선수들이 프로에 적응하지 못해 구단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지만 박재홍은 달랐다.

개인 기록뿐 아니라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며 현대가 야구 명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30-30 클럽 가입으로 프로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앞으로도 박재홍의 96시즌이 한국야구역사에 슈퍼 루키의 데뷔시즌으로 길이 남을 이유다.

박재홍 (1996) → 30홈런 108타점 36도루 타율 0.295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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