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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4할, 200안타!

기사입력 2006.03.08 01:47 / 기사수정 2006.03.08 01:47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11] 1994년 이종범


인상적인 데뷔시즌, 94시즌 ‘돌풍’ 예고


마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신호와 같았다. 이종범이 몰고 온 바람은 이미 야구판을 뒤흔들 만큼 강력했다. 대형 신인들의 대거 출현으로 흥미로웠던 1993시즌은 이종범의 해태가 7번째 우승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종범은 신인왕은 놓쳤지만 팀 우승과 한국시리즈 MVP 수상으로 잊지 못할 루키 시즌을 마감했다.


장종훈(한화)의 1루수 전환으로 대형 유격수를 잃어버린 프로야구 팬들은 이종범이 그 명맥을 이을 유일한 주자로 기대했다. 타고난 1번타자 이종범은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로 평가받으며 한국야구를 이끌 차세대 스타로 꼽혔다.


한편 이와 달리 해태는 비상이 걸렸다. 93시즌 완벽하게 부활하며 국내 최고 투수의 위용을 지킨 선동열이 일본 진출 실패로 훈련에 의욕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선동열은 연봉으로나마 보전을 받고 싶었으나 해태는 돈으로 사람 마음을 돌려놓는 구단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떠오른 아이디어는 부수입을 창출(?)하는 것. 그것은 바로 아무도 생각 못한 음반 취입이었다. 이 때 선동열과 함께 그룹을 이룬 멤버로 가수 양수경과 이종범이 참가했다. 이종범은 잘난 선배 덕(?)에 자신의 음반도 내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다.


개막 전부터 이종범은 숱한 화젯거리를 만들어냈지만 사실 예고편에 불과했다. 94시즌이 개막되고 페넌트레이스가 치열하게 전개될수록 이종범의 안타 하나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이종범은 도전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4할과 200안타, 그 험난한 길


이종범에게 안타는 그냥 단순한 안타가 아니었다. (여기서 말하는 안타란 내외야 어디든 타구를 날려 1루로 진루하는 단타를 의미한다.) 이종범은 1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 그만의 득점 공식에 따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종범만이 할 수 있는 천부적인 베이스러닝 능력은 상대 배터리의 공포대상이었다. 어느새 2루, 3루로 진루해있는 이종범은 후속타자의 적시타로 여유 있게 홈을 밟는다. 그야말로 ‘바람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종범이 현란한 주루플레이를 보이기 위해선 역시 타격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이종범은 어느 코스 가리는 것 없이 빨랫줄 같은 타구를 만들어냈고 단순한 땅볼타구라도 전력질주를 통해 안타로 만드는 능력은 국내최고였다. 거기에 결정적일 때 한방 터뜨리는 펀치력까지. 야구의 신이 프로야구에 내려준 선물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타격과 주루, 그리고 수비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 완벽주의를 실현했던 이종범은 어느덧 리그를 지배해가고 있었고 그가 쌓아온 기록은 어느덧 새로운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타율 4할에 근접한 것은 물론 페이스대로라면 200안타도 가능해보였다.


4할과 200안타. 먼저 타율 4할은 프로 원년의 백인천 이후 아무도 기록하지 못했고 200안타는 듣도 보도 못한 꿈의 기록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특히 200안타야 말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아무리 팀당 경기수가 126경기로 늘었다고 해도 경기당 약 1.6개의 안타를 생산해야 근접할 수 있는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기록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것이다. 499타수 196안타 타율 0.393. 네 개의 안타만 더 보탰더라면 4할과 200안타 모두 달성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1%가 부족했다.


투고타저 시대에 남겨진 찬란한 기록


4할과 200안타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이종범의 기록은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록으로 남아있다.


국내 최초의 4할타자 백인천은 리그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풋내기 시절에 남긴 기록이라면 이종범의 기록은 프로야구가 어느 정도 발전하고 정착한 상태에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 차이가 있지 않느냐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물론 백인천과 이종범의 기록 모두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다.


200안타에는 4개 모자랐지만 국내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이와 더불어 84도루를 기록하며 역대 시즌 최다 도루 신기록 역시 수립, 신기록 행진을 벌였다. 당연히 정규시즌 MVP는 이종범의 몫이었다.


사실 이 당시 프로야구는 투고타저의 성향이 강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완벽하게 보여준 이종범의 활약은 어떤 칭찬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음해에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듬해 방위병으로 변신한 이종범은 홈경기에만 출전하도록 제한되는 바람에 반쪽 기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종범이 시대를 조금 더 타고났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보는 이유다.


이종범 (1994) → 19홈런 77타점 84도루 타율 0.394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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