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한국시간) 세계는, 웨일즈 카디프의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펼친 잉글랜드 FA컵 결승전에 주목했다.
잉글랜드 내 프리미어리그를 뛰어 넘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축구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두 팀의 결승전은 지난 79년 이후 26년 만에 대결한다는 점 외에도 많은 관심과 얘기 거리를 만들어 내며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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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 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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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아스날 |
통산 FA컵 우승 횟수(아스날 9회, 맨체스터 11회)에 대한 라이벌 의식, 두 팀 모두 프리미어리그와 칼링컵,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가운데서 치루어 지는 시즌 마지막 ‘챔프의 꿈’ 이였다는 점, 그리고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이번 시즌 팀 간의 전적에서 마지막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결정전(리그, 기타 컵 대회 포함 전적 2승 2패) 이였다는 점 등, 볼거리와 즐길 꺼리가 유난히 많았던 경기였다.
전, 후반과 연장까지 120분의 혈투를 치루는 동안 0-0 무승부를 기록해 ‘소문난 잔치 집에 먹을 것 없었다.‘ 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한 경기였지만,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치열한 경기력과 한 순간도 쉼 없이 진행되는 경기 흐름은 왜 이들 두 팀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간접적인 답을 해 주었다.
C.호나우두, 루니 앞세운 맨체스터의 맹공경기 초반은 앙리가 빠진 아스날의 공격력이 힘을 발휘 했었다. 노장 베르캄프와 최전방에 배치 된 례예스는, 경기 초반 빠르고 힘 있는 돌파로 맨체스터 수비진을 혼란스럽게 했고, 당초 수비 위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깬 아스날의 맹공에 맨체스터는 순간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전반 중반 이후, 맨체스터의 젊은 양 날개인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안 호나우두가 상대 측면을 허물면서 경기 주도권은 조금씩 맨체스터에게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C.호나우두와 루니는 빠른 스피드와 감각적인 드리블을 앞세워 애쉴리 콜과 로렌 등이 버티고 있는 아스날의 수비진을 당혹하게 만들며 승리에 대한 집념을 보여 주었다.
주도권을 틀어잡았던 전반 27분, 루니의 슈팅이 상대 골키퍼 레만의 선방에 막혀 흘러 나오자 공격에 가담했던 페르디난드는 침착하게 골문 안으로 집어넣었으나, 선심이 오프사이드를 선언 하면서 선제골의 기쁨을 간직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반 압도적인 우세 속에서도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맨체스터는 후반 더욱 더 거센 공격을 퍼부으며 아스날의 골문을 열어 제치려고 노력했지만, 골대를 두 번씩이나 맞추는 등 불운까지 겹치며 득점에 실패 했다.
한편 후반 초반에도 맨체스터의 거센 공격이 식을 줄 모르자, 아스날의 벵거 감독은 별 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베르캄프를 내리고 부상에서 막 회복한 융베르이를 투입, 대 반전을 노렸다.
실제로 융베르이가 투입된 직후 7~8분 동안은 융베르이의 오른쪽 측면 돌파와 A. 레예스의 움직임이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맨체스터의 공격력을 둔화 시키는데 성공 했으나, 약관의 두 어린 날개를 가진 맨체스터는 금세 주도권을 다시 옮겨오며 공세를 강화했다.
맨체스터 '아~골대 불운'하지만 맨체스터는 골대의 불운에 결국 분루를 삼켜야 했다. 후반 21분 루니가 골키퍼를 역동작에 걸리게 하며 날린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이 오른쪽 골대를 맞고 나오면서 불길한 전운이 감돌았고, 39분에는 스콜스의 코너킥이 골문 앞에 서있던 반 니스텔루이에게 정확하게 향했지만, 반니가 헤딩한 공이 골대 왼쪽을 지키고 있던 융베르이의 머리를 맡고 크로스바에 튕겨져 나오면서 다시 한번 불운에 울어야 했다.
사실 이날, 반 니스텔루이에게 더 많은 활약을 기대 했지만 반니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과 슈팅력으로 맨체스터를 응원하는 팬들을 실망케 했다. 반니를 세계 정상의 스트라이커라 평가했던 부분 중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기계적이면서도 동물처럼 감각적인 그의 득점력은 이번 경기에서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었고, 결국 반 니스텔루이가 놓친 3번의 결정적인 골 찬스가 아스날에게 FA컵 우승을 넘겨주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였다.
90분의 긴장된 혈투를 0-0으로 끝마친 두 팀은, 연장전에 돌입했고, 맨체스터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아끼고 아꼈던 라이언 긱스를 투입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99년 FA컵 4강에서 긱스의 결승골로 아스날을 꺽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맨체스터로서는 최후의 선택 이였다.
퍼거슨 감독의 특명을 받은 긱스는 연장 후반, 상대 수비의 실책성 플레이에 편승해 골키퍼와 1:1의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했지만, 이날 경기의 영웅인 레만의 결정적인 선방에 막혀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우승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아스날도 연장 후반, 좋은 지점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어 경기를 매듭지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반 페르시에의 환상적인 프리킥이 맨체스터의 골키퍼인 로이 캐롤의 선방에 막히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득점 찬스를 아쉽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스콜스의 승부차기 막아낸 레만, 아승날에게 우승컵 선사결국 120분간의 혈투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양 팀은 승부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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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을 자축하는 비에이라와 레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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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아스날 |
들어갔고, 양 팀의 명운을 걸었던 10명의 키커 중 두 번째로 나선 맨체스터의 폴 스콜스만이 승부차기를 실패 하면서 아스날이 승부차기 5-4 승리라는 짜릿함과 함께 FA컵의 주인이 되었다.
아스날의 우승에 일등공신이 된 골키퍼 레만은 4차례의 결정적인 선방과 페널트킥 하나를 막아내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펴쳐, 그 동안의 부진을 단번에 만회하며 벵거 감독의 마음을 흡족케 했다.
이로서 아스날은 공격의 핵인 티에르 앙리를, 좀 더 먼 미래를 위해 경기에 출장 시키지 않고도 시즌 마지막 우승컵을 따 냄으로서 리그 우승을 날려버린데 대한 아쉬움을 한번에 날려 버렸고, 맨체스터는 시즌 마지막 우승컵을 눈앞에 가져다 놓고도 거머쥐지 못해 올 시즌 무관에 그치며 다음을 기약 해야만 했다.
프리미어를 넘어 세계 최고의 클럽들의 경기였던 아스날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FA컵 결승전은 이렇게 끝나면서, 그 속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변덕스런 날씨만큼이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경기 전술들은 왜 많은 사람들이 유럽 리그에 열광 하는지를 보여준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골이 나지 않아도 재미있었던, 아니 되려 골이 터지지 않아 120분 내내 긴장 할 수 있었던 잉글랜드 FA컵 결승전 이였다.
손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