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19:01

'흐르는 세월 속에 묻혀버린 거리'

기사입력 2005.01.24 08:38 / 기사수정 2005.01.24 08:38

김종수 기자

황산동 봉산마을을 거닐며… 
 

 

▲ 적막한 거리를 메우고있는 비슷한 모양새의 집들

전라북도 김제시, 봉황동사거리와 도장리고개 사이에 위치하고있는 작은 거리 '새마을'

행정구역상 황산동 봉산마을로 분류되지만 근처사람들은 '새마을'이라는 명칭에 더 익숙해져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 거닐어본 마을길.
곧게 뻗은 1차선 도로를 따라 비쳐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 그리고 이따금씩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만이 적막한 시골마을의 정적을 깨는 듯 하다.

도로변에 위치한 비슷한 생김새의 집들. 언제 지어졌는지 하나같이 나지막한 모양새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세월의 이끼들이 아련한 흔적들을 머금고 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마을의 밤은 이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아니 지역 내에서 가장 번잡하고 시끄러운 거리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봉산마을이었다.

"아이구…말도 말아. 해만 저물었다하면 이곳저곳은 미군부대 군인들로 시끌벅적했어. 낮에는 그렇게 조용하던 곳이 삽시간에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니까"

모정 뒤 교회 쪽 길가에서 40년 넘게 살고있다는 장아무개(77)씨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는 듯 얼굴 가득히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다.

일렬로 늘어선 집들을 뒤로 한 채 거리한쪽 오르막에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낡은 집.
오랫동안 사람이 살고있지 않았던 듯 곳곳의 페인트가 벗겨져 있고 주변은 잡초투성이다.

'남진미장원'
당시를 풍미했던 인기가수 남진의 영향 탓일까? 지붕 쪽으로 간판의 흔적만이 남은 가운데 흐릿하게 상호가 보인다.

지나는 마을사람의 발길을 붙잡고 여쭤보니 미군들을 상대로 영업하던 여인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미장원이었다고 한다. 밤에는 술과 웃음을 팔았던 여인들이 낮에는 이곳에서 단장을 하고 무료한 시간을 때웠으리라.

거침없이 흐르는 번화한 시간 속에서 고요함의 차례를 지킨 것일까?
미군들의 철수와 함께 양공주라 불리던 이들도 거리를 떠나고 그들 덕에 먹고살던 상당수의 장사치들도 서서히 흔적을 감추어갔다.

소문에 의하면 미군부대가 있는 타 지역으로 따라갔다고 한다. 아직도 마을을 지키고있는 일부 마을사람들은 정적만이 감도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도 그때의 영상을 어렴풋이 회상하고 있다.

한때의 번잡함을 상상하기 힘들만큼 썰렁한 분위기가 밤거리를 감싸안고 미군부대를 공군부대가 대신하고 있지만 마을의 모습은 큰 변화를 거부한 채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깜깜한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 사이로 조금씩 깊어져만 가는 겨울의 입김.

지나간 시간 속의 여러 그림자들을 세월 속에 묻어둔 채 마을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 

▲ 70년대 후반 거리의 여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는 '남진미장원'은 희미한 상호 속에서나 그때의 흔적을 예상해볼 수 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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