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마산, 윤승재 기자) 전정신경염. 사람의 귀 내부에는 몸의 평형을 감지하고 유지시키는 전정기관이 있는데, 이 전정신경에 염증이 발생한다면 심한 어지럼증은 물론 몸의 평형을 다시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이는 몸을 날려 수비를 해야 하는 내야수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이다. 하지만 이 심각한 고통을 3년이나 참고 뛰었던 선수가 있다. 바로 얼마 전 내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정현이다.
지난 3월 시범경기 막바지, 정현은 약 10년 만에 배트를 내려놓았다. 2019년부터 전정신경염을 앓은 정현은 3년 동안 재활에 힘쓰며 그라운드를 뛰어 다녔으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염증이 없는 온전한 상태를 100%라고 친다면, 한쪽 귀만 비정상적으로 20%까지 떨어지며 평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아예 0%까지 떨어졌다. 불과 3m 앞에 있는 타구도 흔들려 보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다고. 결국 올 시즌 더 이상 정상적으로 수비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현은 내야 글러브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현은 그라운드를 떠날 수 없었다.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대신 던지는 것은 자신 있었다. 그렇게 정현은 팀에 요청을 해 포지션을 변경했고, 투수 글러브를 잡으며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정현이 투수 글러브를 낀 건 중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약 13년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등번호도 외국인 투수 웨스 파슨스가 쓰던 67번으로 바꿨고 지금은 투수 루틴에 적응해 가며 투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야수로서의 아쉬움은 있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다. 결정은 올해 봄에 내렸지만, 포지션 변경 고민은 전정신경염을 처음 앓은 3년 전부터 계속 해왔기에 성급하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이렇게 계속 야구를 하다가는 자신은 물론, 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고, 하지만 이렇게 은퇴하기엔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투수 포지션 변경 고민을 구체화한 정현은 공필성 2군 감독과 이용훈 2군 투수코치의 응원 및 지도를 받으며 다시 일어섰다.
똑같은 처지에 있던 동기의 응원도 정현이 고민을 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13년 정현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을 받았던 윤대경(한화)의 응원이 정현의 결정에 힘을 실었다. 윤대경 역시 내야수로 입단했으나 데뷔 후 2년 만에 투수로 전향, 지금은 한화의 선발진 한 축을 담당할 정도의 투수로 크게 성장했다. 입단 동기 절친이자 내야수 출신 투수라는 공통점 때문에 윤대경의 조언은 정현에게 더 크게 와닿았고, 정현은 용기를 얻었다.
이제 정현은 투수로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다. 아직 던지는 스타일과 루틴을 파악하는 ‘입문’ 단계에 있지만 불펜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면서 조금씩 투수의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창원NC파크의 그라운드가 그립다는 그는 지금 입단 당시 1군 무대를 기대하는 신인의 기분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투수 전향의 고민을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그는 창원NC파크 마운드에 오를 그 날을 기대하며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1군 마운드에서 공 하나라도 던져보고 싶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뭉클한데, 정말 1군 마운드에 오르면 더 감격스러울 것 같다. 성공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1군 마운드에 오른다는 건 내 도전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까지 가려면 엄청 많은 과정과 힘든 시간을 다 거쳐야 한다. 하지만 난 다 이겨낼 준비가 돼있다. 신인의 자세로 더 열심히 하겠다.”
사진=마산 윤승재 기자, NC 다이노스 제공, 엑스포츠뉴스DB
윤승재 기자 yogiyoo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