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키움 히어로즈라는 팀의 방향성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난 29일 KT 위즈는 FA 박병호와의 계약을 발표했다. KT는 3년 총액 30억원에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박병호를 품에 안았다. 직전 연도 연봉의 150%를 보상금으로 건네야 하는 C등급 보상규정 탓에 박병호의 이적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으나 KT는 거액의 보상금을 감수하고도 박병호를 데려왔다. 반대로 생각하면 키움은 박병호를 잡을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조건에도 팀의 상징적인 선수를 잃은 셈이었다.
사실 '잃었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박병호가 KT와 계약한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원소속팀은 그만큼 혹은 그 이하의 대우조차 포기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에이징 커브라는 시선과 싸운 최근 몇 년 박병호의 기록이 전성기보다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현저하게 추락한 건 아니었다. 박병호가 누구보다 고민하고 노력하는 선수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박병호만큼 히어로즈를 이끈 선수도 없었다. 단순히 이끌었다고 말하기엔 그 가치는 더 컸다. 2011년 트레이드로 처음 히어로즈의 유니폼을 입은 뒤 박병호는 줄곧 히어로즈의 역사와 함께했다. 히어로즈 팬들의 희로애락에는 반드시 박병호가 함께했다. 구단이 여러 사정을 전후해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해도, 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서 가지는 박병호의 의미까지 계산하지 못한 건 분명 문제가 있다.
시즌 중반에는 서건창을 트레이드로 내보낸 키움이었다. 일련의 사태로 선발투수 수혈이 급했지만 내주는 선수가 서건창이었던 건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서건창은 이미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선수가 됐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지금 키움의 팬들은 박병호와의 이별까지도 감내해야 한다.
물론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고, 갖가지 이유로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두 명이나 프랜차이즈 스타가 사라진 올해의 키움은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팀의 자부심이었던 선수들이 순식간에 모두 떠났다. 오랜 시간 함께 쌓은 서사가 한 시즌 만에 무너져내렸고, 앞으로 같거나 비슷한 와해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보장할 수 없다.
키움 팬들은 박병호의 이적이 유력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부터 트럭 시위를 감행했다. 응원의 동기를 잃은 팬들이 낼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였지만 박병호의 이적을 막을 순 없었다. 야속하지만, 팬들은 '이번에도' 버건디색이 아닌 유니폼을 입은 지난날의 히어로를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가오는 고척의 봄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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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