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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말씀에 울컥" 윤산흠, 감격의 첫발 [조은혜의 슬로모션]

기사입력 2021.10.04 10:40


(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한화 이글스 윤산흠(22)은 1군 무대에 도착하기까지 또래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그 길은 남들보다 길고 거칠었지만, 그의 재능과 노력은 마침내 새로운 시작점을 찾아냈다. 

윤산흠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뒤 독립야구단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다. 이후 두산 베어스의 눈에 띄어 프로 유니폼을 입었으나 1군 기회는 없었고, 퓨처스리그 11경기 12이닝 평균자책점 5.25를 기록한 뒤 방출됐다. 그래도 야구를 놓지 않았다. 새로 창단된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에 합류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윤산흠은 지난 6월 한화와 육성선수로 계약하며 프로에서의 새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9월 29일, 세 자릿수 번호를 달았던 윤산흠의 등에 '32'라는 새로운 숫자가 새겨졌다. 정식선수로 등록된 윤산흠은 이날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고 이튿날 1군 데뷔전까지 치렀다.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팀이 2-6으로 뒤진 8회말 마운드에 오른 윤산흠은 두 타자를 효과적으로 막으면서 제 임무를 다했다. 선두 오선진에게 직구만 던져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고, 김상수는 유격수 직선타로 처리했다. 전력분석팀 스피드건에는 최고 148km/h가 찍혔다. 

데뷔 첫 등판 후 윤산흠은 "1군 콜업과 관중이 있는 곳에서 던지는 것이 처음이라 흥분이 됐다"며 "마운드에 올랐을 때 변화구를 밀어 넣었다가는 맞을 것 같아서 제일 자신 있는 직구 위주로 던졌다. 볼이 높게 가서 평소에 보고 던지던 포인트보다 더 낮게 보고 던지려고 했다. 첫 탈삼진 상대인 오선진 선배님은 독립리그 때 상대해 본 경험이 있어서 조금은 긴장감을 덜 수 있었던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2⅔이닝 단 10구, 이 10구를 선보이기까지 수많은 낙담과 다짐을 반복했을 그였다. 웬만한 용기와 끈기가 아니었다면 주어지지도 않았을 이 기회의 시작, 윤산흠은 그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윤산흠은 "두 타자를 상대하고 내려왔을 때 감독님께서 '오늘 잘 던졌고, 독립리그에서부터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와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으니, 너에게 온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셔서 순간 울컥했지만 꾹 참았다"고 전했다.


호세 로사도 코치는 윤산흠에 대해 "올림픽 휴식기 자체 연습경기 때 처음 봤을 땐 어깨와 팔 스윙이 좋은 선수라고 느꼈다. 다소 작고 마른 모습이지만 속은 강한 마인드를 가진 선수라 그를 보며 나의 선수 시절이 생각이 났다"고 평가했다. 첫 등판 당시에는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유는 당연히 그만큼 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음을 보이기도 했다. 

로사도 코치 역시 자신을 닮은 이 젊은 선수가 지나온 나날을 헤아렸다. 로사도 코치는 "독립리그를 거쳐 온 데뷔 과정이 인상적인데, 잘 극복하고 1군 무대에 섰다는 것이 더 감명 깊다"며 "본인에게 온 기회를 꼭 잡았으면 좋겠고, 앞으로 그와 함께할 날이 더 많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고 내다봤다.

감격의 첫 등판을 마치고, 윤산흠은 사흘 뒤 두 번째 등판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3일 광주 KIA전, 8회말 6-9의 스코어에서 등판한 윤산흠은 세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김민식의 땅볼 타구를 직접 잡아 홈으로 송구해 실점을 막았고, 이우성에게도 내야 땅볼을 이끌어내면서 1-2-3 병살을 만들고 그대로 이닝을 끝냈다. 내야수다운 송구가 돋보이는 수비였다. 위기에서의 침착함도 주목할 만했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오랜 기간을 기다려 나무가 되는 씨앗을 설명하는 이 문장은 윤산흠의 야구 인생과 똑 닮았다. 윤산흠은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부딪혀 보고 싶다"는 각오를 전한다. 비를 흠뻑 맞은 씨앗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사진=한화 이글스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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