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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메리까!] 메시와 체 게바라: '영웅의 도시' 로사리오

기사입력 2011.01.20 20:02 / 기사수정 2011.01.20 21:48

윤인섭 기자


[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의 수다메리까!] - 풋볼 아메리까노(17)
 
로사리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에 이은 아르헨티나 제3의 도시로 우루과이의 정서 쪽 약 200km 지점(부에노스아이레스 북서쪽 약 300km)에 위치해 있다. 파라과이까지 이어지는 파라나 강의 중심지로 그 주변의 밀, 콩 등 각종 농산물의 집산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동시대적 의미에서 로사리오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리오넬 메시라는 아르헨티나가 낳은 3대 영웅 중 두 사람의 고향으로 상징된다. 참고로, 남은 한 사람은 디에고 마라도나인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위성도시, 라누스(아르헨티나 출신의 농구 국가대표, 김민수의 고향이기도 함) 출신이다.
 
그리하여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체 게바라와 메시가 '로사리노(로사리오 사람)'라는 같은 별명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 둘 뿐인 것은 아니다. 축구인들만 살펴봐도 칠레 감독, 마르셀로 비엘사, 아르헨티나 축구의 미래, 앙헬 디 마리아, 리버풀의 막시 로드리게스,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 킬리 곤살레스 등이 '로사리노'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번 시간에는 로사리오가 낳은 이러한 영웅들에 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다. 우선, 로사리오가 어떤 도시인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아르헨티나의 시카고, 로사리오
 
로사리오의 별명은 아르헨티나의 시카고이다. 물론, 19세기 후반에 붙여진 별명이기에 오늘날의 시카고와 로사리오의 유사성은 많은 부분 흐트러진 면모도 있다.
 
그러나 시카고가 오대호의 중심도시이자 철도 교통의 요지로서 주변 지방의 물류 및 교통의 중심지로 19세기에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듯, 한낱 시골에 불과했던 로사리오도 철도와 해운업의 발달로 19세기에 들어서 집산지의 기능을 안으며 아르헨티나 제3의 도시로 눈부신 성장을 거두었다.
 
또한, 19세기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경제 호황을 반영하듯, 로사리오 곳곳에 가득한 웅장한 신고전주의적 건축물들, 다수의 영국인 이민자들이 들어오며 남겨놓은 영국식 가옥들의 존재는 '아르헨티나의 시카고'란 로사리오의 별명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끔 한다.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로사리오는 아르헨티나의 국기, 알비쎌레스테(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애칭이기도 함)의 고향이기도 하다. 흰색과 하늘색을 의미하는 알비쎌레스테는 1810년, 스페인 식민지 군과 맞선 아르헨티나 민병대의 군복 색깔이었고, 당시 민병대를 지휘했던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에 의해 하늘색과 하얀색을 바탕으로 한 아르헨티나의 국기가 제정되었다.
 
철도 교통의 쇠퇴로 21세기 전환기에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철도 교통의 재인식,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로사리오는 파라과이, 우루과이로의 접근이 용이한 지리적 이점을 안고 있음)의 출범 등으로 오늘날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로사리오가 낳은 영웅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1928~67)-
 
'20세기 예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체 게바라의 존재는 '현대적 신화'가 되었다. 1928년, 로사리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의대생의 장밋빛 미래를 과감히 버리고 혁명 투사로 변모,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혁명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쿠바 혁명의 성공으로 피델 카스트로에 이은 쿠바 서열 2위에 올랐으나 자신의 안락한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자이르(현 콩고 민주 공화국), 볼리비아 등 '혁명일선'에 투신,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적 자세'로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다. 1967년, 볼리비아 정규군에게 체포되어 총살, 장대한 '영화적' 최후를 맞이했다.
 
-리오넬 메시(1987년생)-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최고의 선수를 꼽는 데 가장 큰 지지를 얻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1987년, 로사리오에서 태어났고 바르셀로나로 떠난 2000년까지 로사리오의 대표적 축구 클럽,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배웠다.
 
얼마 전 수상한 제1대 FIFA 발롱도르를 비롯, 2009년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 2009년, 2010년 라 리가 올해의 선수, 2009/10 유럽 골든슈, 2008/09 UEFA 챔피언스리그 MVP 등 세계 최고의 선수에 부여되는 시상은 지난 2년간 메시의 독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1938년생)-
 
197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감독으로 아르헨티나에 첫 우승컵을 안긴 전설적 감독이다. 1974년부터 1983년까지 무려 9년간 알비쎌레스테 감독을 역임했는데,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한 인물이다. 대표팀에서의 성공 이후, FC 바르셀로나, 보카 후니오르스, 리베르플라테, AT 마드리드, 페냐롤 등, 유럽과 남미의 명문 클럽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마르셀로 비엘사(1955년생)-
 
괴팍한 성격 탓에 '광인(El Loco)'이라 불리지만, 선수단을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화끈한 공격 축구를 지향, 남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감독 중 하나이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재직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실패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우승으로 멋지게 보완했다. 이후 3년간의 야인생활 끝에 2007년 칠레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 칠레를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호르헤 세고비아가 칠레 축구협회 회장으로 당선되며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했으나, 회장 선출과정에서 세고비아의 비리 혐의가 붉어지자 세고비아의 회장직 박탈을 조건부로 칠레 감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세고비아의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현재, 일단 오는 22일,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킬리 곤살레스(1974년생)-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빠른 발과 정확한 크로스로 10년간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왼쪽 측면을 책임졌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와일드카드로 참가, 조국의 우승에 일조했다. 클럽팀에서는 보카 후니오르스, 발렌시아, 인테르 밀란 등에서 활약, 발렌시아의 라 리가 우승 2회, 인테르의 세리에-A 우승 1회를 함께 했다. 지난해 6월, 2부리그로 강등당한 친정팀 로사리오 쎈트랄로 백의종군하며 소속팀의 1부리그 복귀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앙헬 디 마리아(1988년생)-
 
킬리 곤살레스가 지난날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왼쪽 측면을 책임졌다면, 현재와 미래의 왼쪽은 킬리의 로사리오 후배, 디 마리아가 책임지고 있다. 로사리오 센트랄, 벤피카를 거쳐 지난해 여름, 2,500만 유로(372억 원)에 레알 마드리드로 입성했다. 180cm, 70kg의 호리호리한 체구지만, 빠른 발과 폭발적인 돌파력으로 공격 기회를 창출하는 데 특출난 재능을 보이고 세련된 슈팅 센스로 준수한 득점력마저 선보여 올해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영입선수로 선정되었다.
 
-막시 로드리게스(1981년생)-
 
알비쎌레스테 군단의 왼쪽에 디 마리아가 있다면, 오른쪽에는 동향 출신의 막시가 있다. 최근 하락한 폼으로 예전의 굳건했던 대표팀 내 지위가 많이 흔들리고 있으나 막시는 그림 같은 득점(멕시코와의 16강 연장전)으로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8강에 올려놓았다. 킬리, 디 마리아가 활약한 로사리오 쎈트랄의 라이벌, 뉴웰스 출신으로 지난해 겨울, AT 마드리드에서 리버풀로 이적했다.
 
로사리오의 축구클럽
 
-로사리오 쎈트랄-   
창단: 1889년 자국리그 4회 우승
 
우승 기록과 현재 입장은 동향 라이벌, 뉴웰스에 뒤지지만, 아르헨티나 축구 클럽 중, 세 번재(힘나시아 라플라타, 킬메스가 1, 2위)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지난해 여름, 올보이스와의 플레이오프에 패해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클럽의 전성기는 명장 앙헬 라부르나와 전설적 공격수 마리오 켐페스가 이끌던 1970년대 초반을 들 수 있다. 1970년 전기리그 준우승을 거둔 후 1971년과 1973년 전기리그 우승으로 자신들의 시대를 개막했고 1974년에는 켐페스의 활약에 힘입어 전기와 후기 모두 준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대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1980년 후기리그 우승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1984년 2부리그로 강등을 맛봤고 1985년 2부리그 우승으로 1부리그에 복귀, 단일리그로 치러진 1986/87시즌, 1부리그 복귀 2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는 파란을 선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재정악화로 클럽의 성적이 곤두박질 쳤고 지난해 여름, 2부리그로 강등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주요배출선수: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마리오 켐페스, 킬리 곤살레스,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 세사르 델가도, 루시아노 피게로아, 앙헬 디 마리아 등
 
-뉴웰스 올드 보이스-
창단: 1911년 자국리그 5회 우승,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준우승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라이벌 로사리오 쎈트랄에 뒤지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연이은 1부리그 상위권 진입으로 로사리오의 상징은 뉴웰스가 되었다.
 
1974년, 후기리그 우승으로 첫 우승을 거둔 뉴웰스는 공격형 미드필더 헤라르도 마르티노(현 파라과이 대표팀 감독), 수비수 로베르토 센시니를 앞세워 1980년대 후반 클럽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단일리그로 진행된 1985/86, 1986/87시즌 연달아 준우승을 차지했고 1987/88시즌에는 14년 만에 1부리그 정상으로 복귀했다.
 
이어 마우리씨오 포체티노가 가세하며 1988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차지했고 1990/91시즌, 1991/92시즌 후기리그에서 아르헨티나 1부리그 정상에 오르며 아르헨티나 축구의 강호로 도약했다.
 
지난 아페르투라 2010(2010/11시즌 전기리그)에서는 9위를 차지했다. 현재 클럽의 주축 선수로는 아르헨티나 대표로 남아공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 참가한 베테랑 수비수, 롤란도 스치아비, 베네수엘라 대표팀 주전 풀백, 가브리엘 씨체로, 촉망받는 공격형 미드필더 마우로 포르미카를 들 수 있다.
 
주요배출선수: 호르헤 발다노, 헤라르도 마르티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로베르토 센시니,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알도 두스체르, 가브리엘 에인세, 막시 로드리게스, 마우로 로살레스, 페르난도 벨루스치, 후스토 비쟈르

* 칠레리그 올해의 선수 & 남미 국가명과 그 안의 숨은 뜻이 궁금하다면? => 수다메리까

[사진=체 게바라, 메시, 로사리오 밤거리, 비엘사 ⓒ 코르다 사진전, 문도 데포르티보, 로사리오 시청, 엘 메르쿠리오 홈페이지]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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