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5.13 07:33 / 기사수정 2006.05.13 07:33
1980년대 중반으로 들어오면서 세계 축구는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그때까지 축구는 공격과 수비로 양분돼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허리, 즉 미드필드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강한 공격과 탄탄한 수비를 이어주는 허리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졌다고도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현대축구'의 효시격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경기를 지배하기 위해 허리를 먼저 점령해야 했고, 이를 위한 압박과 치열한 중원 싸움이 본격화됐다. 허리의 재발견이 이뤄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그래서 빛나는 명승부가 많았던 대회였다. ◆ 제13회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개최 배경
하지만 문제는 월드컵 개최를 3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어났다. 1983년 콜롬비아는 자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 FIFA에 대회 개최 포기 신청을 했다. 경기장은 물론이고 대회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콜롬비아는 월드컵 효과를 기대하며 어렵게 대회 준비 작업을 이어갔지만 더 이상 무리하면 국가가 파산할 지경이었다. FIFA는 다급해졌다. 또 다른 개최국을 찾아 봤지만 단기간에 모자람 없는 월드컵을 개최할 능력을 가진 나라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과 브라질이 유치 신청을 했지만 FIFA는 축구 불모지인 미국에 월드컵 개최권을 안겨준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 거부했고, 브라질 역시 재정 상태가 불안해 FIFA가 믿기 힘들었다. 이때 FIFA가 떠올린 나라가 멕시코다. 월드컵(1970년)과 올림픽(1968년) 유니버시아드대회(1979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1983년) 등 대규모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데다 짧은 기간에 경기장 및 관련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FIFA는 1954년 대회를 열기 위해 스위스에 도움을 청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멕시코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고, 거부할 이유가 없던 멕시코는 흔쾌히 FIFA의 손을 잡았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2번째 대회를 개최하는 나라가 탄생했다. 그러나 유럽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 1970년 대회에서 고지대 핸디캡을 톡톡히 맛본 유럽은 FIFA에 개최국 변경을 주장했다. 하지만 FIFA는 여러 나라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예전과는 달랐다. 그리고 개최국의 문제점을 시비해 출전을 포기할 나라는 더 이상 없었다.
▲ 월드컵 뒷얘기 마라도나의, 마라도나를 위한, 마라도나에 의한 1986년 월드컵은 그야말로 마라도나를 위한 대회였다.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아픔을 맛봤다. 1978년 대회에서는 대표로 발탁됐지만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이 '다음에 기회가 있다.'며 선배들에게 양보할 것을 요청해 물러났고, 1982년 대회에서는 상대팀의 집중 마크를 당해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며 기다린 1986년 월드컵. 마라도나는 무르익은 기량을 뽐내며 26세의 많지 않은 나이로 세계 축구계를 평정했다. 잉글랜드와 치른 8강전에서 '신의 손' 사건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센터 라인 부근에서 출발해 골키퍼까지 제치고 성공시킨 두번째 골을 장면은 아직도 많은 축구팬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돼 있다. 1986년 대회의 두 번째 적, 대지진 콜롬비아 대신 월드컵을 개최하기로 한 멕시코에서는 1985년 대지진이 발생해 월드컵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갑작스런 콜롬비아의 개최 포기에 이어 일어난 대지진때문에 월드컵을 방해하기 위한 악령이 나타났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1985년 9월 19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를 강타한 리히터 규모 7.8의 대지진은 이틀 뒤 6.8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도시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2만여명의 사상자와 1천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낸 대재앙으로 멕시코는 커다란 위험에 빠졌지만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지진 피해를 복구하고 착실하게 월드컵을 준비했다.
두 명의 슈퍼스타 때문에 눈물 흘린 서독 서독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을 향해 쾌속질주했지만 결승전에서 파울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에 1-3으로 져 꿈을 이루지 못했다.그런데 4년이 흐른 1986년에도 똑같이 한 명의 축구 영웅에게 밀려 대회 2연속 준우승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1986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난적 프랑스를 2-0으로 따돌리고 결승에 오른 서독은 마라도나가 버티는 아르헨티나와 마주쳤다. 마라도나는 결승전에서 골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철저한 팀플레이를 펼치며 팀을 리드했고, 마라도나의 보이지 않는 힘을 받은 아르헨티나가 서독을 3-2로 힘겹게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2년 대회에서 로시에게 무릎을 꿇었던 서독은 4년 뒤엔 또 한 명의 축구 영웅인 마라도나때문에 월드컵 우승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중원을 지배하며 팀 승리를 만드는 플레이 메이커의 전성기가 시작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대회는 화려하고 뛰어난 중원의 마술사들이 그라운드에 눈부신 기량을 펼쳐 놓았던 수준 높은 대회로 기억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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