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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농구] 女농구, 값진 은메달…이젠 개혁이 필요한 때

기사입력 2010.11.26 13:24 / 기사수정 2010.11.29 03:38

이철원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철원 기자] 우여곡절 끝에 광저우로 떠났던 여자농구 대표팀이 중국에 분패하며 일정을 마쳤다.

여자농구 대표팀이 25일 광저우 인터내셔널 스포츠아레아에서 열린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64-70으로 패했다.

경기 중반까지 10점 가까이 점수가 벌어지며 중국의 높은 벽에 고전하던 한국은 경기 종료를 앞두고 2점차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심판의 석연찮은 반칙선언에 마지막 공격권을 넘겨주며 경기가 종료됐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노골드'에 그쳤던 여자농구 대표팀은 지난 세계선수권 8강의 상승세를 등에 업고 아시안게임을 준비했다.

하지만 소집부터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대표팀은 심판의 편파판정이라는 불운까지 겹치며 16년 만의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치게 됐다.

비록 은메달에 그쳤지만 여자농구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통해 세대교체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대표팀 차출에 대한 본격적인 '기준선' 마련에 돌입하게 됐다.

끝없는 '대표팀 차출' 논란

대표팀의 기둥이자 존재만으로도 상대팀에 압박감을 주는 정선민이 부상으로 아시안게임에서 멀어지자 논란은 시작됐다.

시즌 준비에 이은 세계선수권참가, 그리고 시즌 합류라는 무리한 일정 속에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한 정선민이 홈 개막전에서 골반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하자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나왔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대부분의 선수가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하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다고 해도 바로 시즌 경기에 참가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시즌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높아지고, 제 기량을 선보이기 힘들어진다.

여기에 리그 하위권으로 처지며 위기감이 커진 kdb생명 측이 "우승후보인 신한과 삼성생명도 대표 차출이 2명인데 왜 우리만 3명이냐"며 선수 차출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구단과 협회의 조율로 선수들이 합류하게 됐다.

대표팀의 포인트가드 김지윤마저 부상으로 인한 신세계 측과 대표팀의 차출 갈등을 빚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지윤은 대표팀 출국 다음날 홀로 광저우로 향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언제까지 '애국심'에 호소할 텐가

1970년대 여자농구 대표팀의 주장이자 세계적인 가드로 활약한 대한농구협회 강현숙 기술이사는 아시안게임을 앞둔 지난 15일 엑스포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선수로 활약하던 1970~80년대에는 여자농구의 인기가 대단했다"며 "선수들은 태극마크를 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으며, 국제대회에서의 뛰어난 성적이 계기가 돼 국내에서의 여자농구도 자연스레 인기 종목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국내 리그가 활성화됐듯이 여자농구도 꾸준한 국제대회 참가와 실적이 있어야 국내 리그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현숙 기술이사는 예전처럼 선수들에게 무작정 대표팀 소집에 응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자농구가 프로화되면서 선수들에게는 연봉이 중요시되었고, 구단과 감독입장에서는 팀의 성적을 신경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자선수들처럼 '군면제 혜택'이나 우승시 엄청난 보너스 같은 '당근'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가 없게 됐다는 것.

선수와 구단, 대표팀 모두에게 득이 되는 합리적인 보상책이 강구되지 않는한 대표팀 차출 잡음은 계속될 전망이다.

눈앞의 성적 때문에 놓친 세대교체 타이밍

여자농구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의 실패를 겪고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하지만 당장의 성적이 나오지 않자 결국 다시 '노장'들을 불러들였다. 이후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의 주축은 여전히 30대 선수들이 맡고 있었다.

1975년, 한국 농구는 큰 모험을 시도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박찬숙을 대표팀에 소집시켜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른 것. 한국은 이 대회에서 5위에 그쳤지만 주장 강현숙과 박찬숙을 앞세운 1979년 서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강호 미국을 꺾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고등학생 때 대표팀에 소집됐던 박찬숙은 10년이 지난 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농구를 은메달로 이끌게 됐다.

지난 도하 아시안게임 이후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면 지금처럼 정선민의 부재와 30대 선수들의 부상으로 대표팀이 휘청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값진 은메달속 남은 과제는?

한국 여자농구는 악조건 속에서 값진 성과를 이룩했다. 하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을 바라본다면 이대로는 안된다.

선수들이 자원해서 대표에 소집되고 싶어 할만한 보상책, 구단 측에서 소집에 흔쾌히 동의할만한 시즌 일정 조정, 협회의 과감한 세대교체 등 모두가 납득 할만한 해결책이 제시되어야만 한국 여자농구의 미래는 강현숙-박찬숙 시대의 전성기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변연하 (C) Gettyimages / 멀티비츠, 강현숙 (c) 이철원 기자 ]



이철원 기자 b3031@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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