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0:52

온다 리쿠, 판타스틱 미스터리 '여름의 마지막 장미' 발간

기사입력 2010.10.15 13:38 / 기사수정 2010.10.15 13:38

온라인뉴스팀 기자

[엑스포츠뉴스=온라인뉴스팀] "이곳은 악의로 가득 차 있어." 국립공원의 산 정상에 있는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호텔.

매년 늦가을 이곳에서는 재벌가 사와타리 그룹의 세 자매가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 올해도 수십 명의 손님이 초대받아 모여든 가운데, 어두운 비밀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 자매의 친척과 관계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만찬 석상에서 주빈인 세 자매는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어떤 사건에 관해 청중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그 이야기의 끔찍함과 잔인함에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호텔을 뒤덮은 가운데, 어느 날 아침 중앙 계단의 층계참에 놓인 거대한 괘종시계가 넘어져 세 자매 중 둘째인 니카코가 깔려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온다 리쿠 식 본격 미스터리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별책 문예춘추'에 지난 2003년 5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총 6회에 걸쳐 연재된 장편소설로, 온다 리쿠에게는 스물여섯 번째 작품이다. 지난 1992년 데뷔한 이래 판타지와 호러,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걸작을 남겨 온 온다 리쿠는 이번 작품에서 그간의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었던 매우 드라마틱하며 광기 어린, 그러면서도 고딕풍의 섬찟한 아름다움이 가득한 문체로 우리를 본격 미스터리의 세계로 안내한다.

기억, 그 모호함에 대하여

온다 리쿠가 책 뒷부분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녀는 이 소설의 제목을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가 작곡한 동명의 연주곡에서 빌려 왔다. 이 곡은 하나의 테마가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는 음악으로, 이 곡과 마찬가지로 소설도 하나의 스토리가 각기 다른 화자(話者)에 의해 제1변주에서 제6변주까지 되풀이되면서 그 내용이 조금씩 변질되어 간다. 즉, 첫 장인 제1변주에서 일어난 사건이 뒤의 제2변주에 가서 다른 화자가 말할 때는 이미 지워지고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독자들은 과연 이 소설에서 일어난 일은 무엇이고 일어나지 않는 일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며 소설 속의 인물들과 자기 자신의 기억에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소설에는 지난 196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의 각본이라 할 수 있는 알랭 로브그리예의 동명의 소설이 간간이 인용된다. 알랭 로브그리예는 그의 작품에서 시간의 정연한 흐름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화자의 인상에 강하게 남은 사건들을 재현하면서 반복되는 시각 이미지 속에서 기억의 모호함에 대해 말한다. 온다 리쿠는 이 작품 후기에서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가 '기억의 변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과 그 이미지가 정확하게 겹쳐 일부를 인용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닫힌 공간, 그러나 닫히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이렇게 기억에 계속 변질되어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본격 미스터리 소설로써는 치명적인 결함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모름지기 본격 미스터리라는 것은 곧 모호한 기억을 해명하는 과정이며, 기억의 해명이 대단원으로 연결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것이 그 전형적인 작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이러한 닫힌 형식을 거부하고 끝까지 이야기를 완결되지 않는 구조로 열어 놓는다.

이 소설은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기 때문에 등장인물 모두가 한 번씩은 제3자의 묘사를 거치게 되고,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숨김없이 전달한다. 이것은 바꿔 말해 등장인물 중에서 특례로 인정되는 숨겨진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온 미스터리 소설 대부분이 등장인물의 특례를 이용한 속임수를 까발림으로써 충격과 반전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온 것과는 달리 온다 리쿠는 미스터리의 그러한 상투적인 작법을 거부한다.

사실 온다 리쿠는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작품이 문예춘추사 80주년 기념 출판 사업의 하나로 2002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본격 미스터리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수록될 것을 의식하고 썼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온다 리쿠가 '본격 미스터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소설의 무대는 국립공원인 산의 정상에 있는 정통 영국식의 호화로운 호텔. 층계참에 우뚝 선 거대한 괘종시계가 손님들을 내려다보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다. 이곳에 주인공 자매가 초대한 손님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겨울을 재촉하며 내리던 비는 눈보라가 되어 휘몰아친다. 그 광경을 본 등장인물 한 명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 폭풍의 산장이 되었잖아, 피의 비가 내릴 거야."

폭풍의 산장. 본격 미스터리 팬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것은 이른바 '클로즈드 서클' 즉,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황의 전형적인 예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는 시·공간적인 클로즈드 서클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온다 리쿠는 '클로즈드 서클'을 자신의 본격 미스터리 서술 방식으로 채용한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애거사 크리스티의 영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그것은 클로즈드 서클 타입의 대표적인 소설이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점 외에도 온다 리쿠가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가로 애거사 크리스티를 꼽은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름의 마지막 장미' 제1변주에 "크리스티 소설에 나오는 벨기에 사람 같아. 왜, 그 탐정 있잖아."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오는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남음이 있다.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닫히지 않는 이야기, 이것이야말로 온다 리쿠식 본격 미스터리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비일상적인 공간과 비일상적인 시간이 교차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 속으로 독자들을 숨 가쁘게 몰고 가는 판타스틱 미스터리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본격 미스터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상투성과 전형성을 거부하며 온다 리쿠 특유의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노스탤지어까지 담아낸 작품으로, 미스터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보석과도 같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 ⓒ 도서출판 재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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