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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의 꾸준했던 30년 "일에 대한 적당한 거리두기…운 좋았죠" [엑's 인터뷰]

기사입력 2020.09.17 06:50 / 기사수정 2020.09.16 23:28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권해효가 영화 '후쿠오카'(감독 장률)와 '도망친 여자'(감독 홍상수) 등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다. 30년 간 이어진 꾸준한 활동의 바탕에는 눈앞의 현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마주해 온 권해효의 뚝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4월 종영한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7월에는 영화 '반도'에 함께 했다. 이어 8월 27일 개봉한 '후쿠오카'에서는 28년째 제문(윤제문 분)이 미운 남자 해효 역으로, 17일 개봉한 '도망친 여자'에서는 정선생 역으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먼저 소개된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와, 공개를 앞둔 애니메이션 '태일이'에서는 목소리 연기에 나섰다. 여기에 2021년 방송 예정인 JTBC 새 드라마 '언더커버' 출연까지 권해효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1990년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데뷔한 후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30년이라는 숫자가 본인에게 갖는 의미가 있냐'는 물음에 권해효는 "의미 있다. 30년이 됐는데도 연기를 이렇게 못하나?"라는 너스레와 함께 너털웃음을 지었다.

"제 나름대로는 30년의 기준을, 관객의 돈을 받고 연기했던 순간들로 짚어봤거든요. 대학로에서부터 그 시간들을 기준으로 하니 만 30년이 넘었더라고요. 방송에 나온 것은 만 28년이 넘었고요. 연기는 참, 할수록 어려워요. 보통 나이가 들어가면, 훨씬 더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보편적이면서도, 또 적당히 그럴듯한 것들을 많이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후쿠오카'같은, 작은 영화들은 또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고요. 기분 좋게,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겼던 시간들이 있는 것 같아서요."


권해효는 '후쿠오카'와 '도망친 여자'까지 장률 감독,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배우들은 본능적으로, 또 관성적으로 역할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하잖아요. 머릿속에 떠올리고, 수행하려고 하는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인물과 비슷할까라고 생각하면 또 잘 모르겠는 것이죠. 저는 대본을 받은 시점과 촬영하는 시점의 텀이 짧을수록 훨씬 더 대사 자체에 집중하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극단점에 가 있는 것이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제작방식이죠.(웃음) 촬영 한 시간 전에서야 대본이 나오고, A4 용지 네 장 분량의 10분짜리 테이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끝내야 해요. 일단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고, 완벽하게 몰입할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극단에 가있는 것이 홍상수 감독님이라면, 장률 감독님은 대본 자체보다 대본의 톤과 분위기를 알게 해주려고 하셨던 부분이 큰 것 같고요. 현장에서는 좀 더 자유롭게, 그 안에서 놀기를 바라시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았어요."

'대사를 외우는 것은 힘들지 않냐'는 말에 권해효는 "제가 예전부터 30년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한민국 대학로에서 대사를 가장 빨리 외우는 배우였다"고 소리 내 웃으며 "대사만 잘 외워요. 제가 또 사람 이름은 잘 못 외우거든요. 30년을 봐온 사람도 가끔은 성이 헷갈릴 때가 있어요"라고 얘기했다.

"지난 30년의 시간을 특별히 별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별 것 아니라고 쉽게 얘기할 수도 없을 것 같다"고 말을 이은 권해효는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 일이, 배우 한 사람의 노력이나 누군가의 서포트로만 가능한 일은 아니잖아요. 운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기도 하고요. 1년에 소위 말해 수 백 명이 뜨고 지는 이 공간에서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전업배우로,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고 살아왔죠. 저는 배우가 경쟁하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누군가의 무엇을 빼앗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이어 권해효는 "예를 들면 IMF 때는 대학로의 배우들이 큰 타격을 받지 않았어요. 원래 가진 것이 없었으니까"라고 떠올리며 "그런데 요즘은 30대 후반 정도만 돼도 이직이나, 실직 같은 것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됐잖아요. 저희 역시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잠재적인 실업자가 되는 게 맞아요. 일에 대한 불확실성을 항상 안고 살죠. 그런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누구나 있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죠"라고 설명했다.

"한 번도 배우가 천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권해효는 "저는 30대 때, 언제든 배우 일을 그만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었어요. 그만큼 천직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죠. 직업으로 배우를 바라봤다고 해야 할까요? '꿈'과 '직업'이라는 말이, 가끔은 너무 헷갈린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꿈을 직업으로 얘기하는 순간이 있기도 하잖아요. 제 기준에서는, 꿈이라는 것은 최소한 '지구 평화'같은,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나 싶고,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놀고 먹고 싶죠"라며 미소 지었다.

"직업은 나의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으면서도 정서에 맞고, 그 일을 즐겁게 하면서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것이라 생각해요. 감사하게도 제 직업군 자체가 이 쪽 영역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의미를 부여해주시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천직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생각은 계속 하게 되는 것이죠."


'거리를 두는 것'이 권해효만의 방식이었다. 권해효는 "아주 어릴 때, 방송국에 처음 갔을 때의 경험인데, 20대의 눈으로 봤을 때 그 조직이 정말 거대해보이더라고요. '아, 여기에서 무언가를 하겠다고 쫓아가는 일은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같아요"라고 떠올렸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방송 3사에 탤런트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촬영 외에는 방송국 언저리에도 가지 않았거든요. 그냥 그것이, 저의 태도였던 것 같아요. 30대 때 배우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그 마음과도 비슷한 부분인데, 살면서 무언가 절박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20대 때의 제가 느꼈던 것은 '무조건 절박하다고 해서 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말고' 이 정도의 마음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 다가와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저 나름대로는 스스로 저를 다스렸던 그런 처세술 같은 생각이지 않았나 싶어요."

또 "일부러 거리두기를 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세상과 약간의 거리를 두며 바라봐왔던 시간들이 꽤 있었어요. 시간이 이만큼 지나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배우로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겐 힘이 되지 않았나 싶고요. 거듭 말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이고, 또 좋은 색시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고요"라며 미소를 보였다.

여전히 혼자,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권해효는 "저 사람 굉장히 좋아해요"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 일에서만큼은 대부분 평생, 혼자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거든요. 익숙해지려고 노력 중이죠"라고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 걸어 나갈 생각을 전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인디스토리, 률필름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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