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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허정무 발언, 더 이상 히딩크에 집착말자

기사입력 2010.07.21 14:01 / 기사수정 2010.07.21 14:30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의 "히딩크가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라는 발언이 진위 논란과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신동아 8월호에 실린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히딩크 감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짠 게 있나요? 그는 철저하게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했어요. 모든 전략과 전술을 2002년 월드컵에만 맞췄으니까. 2002년 이후를 내다보는 세대교체, 특히 취약한 수비 부문의 세대교체엔 전혀 신경을 안 썼습니다.

"히딩크의 뒤를 이은 코엘류, 본프레레, 베어벡도 다 마찬가지였어요. 코앞의 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했지 밑바닥에서부터 유망주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 사람들이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원문의 내용을 보면 허정무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강도 높게 비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내지도자로서 전인미답의 원정 16강 진출을 이뤄내고 거만해졌다는 오해를 받기 딱 좋은 내용이다.

그러나 허 감독은 '말아먹었다' 발언이 인터넷으로 보도된 직후 곧바로 해명에 나섰다. 허 감독은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02 월드컵에서 4강까지 일군 히딩크 감독에게 어떻게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외국인 감독에 대해선 정확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전제로 히딩크 이후 외국 감독들에 대한 비판을 내놓은 게 와전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의 공도 크지만 세대교체 부분 등에서 히딩크와 후임 외국인 감독들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쪽 부분만 크게 부풀려져 제목으로 사용돼 생긴 오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말아먹었다'라는 표현을 쓴 건 맞지만 히딩크 감독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이후 한국 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진의야 어쨌든 간에 이로 인해 축구팬과 누리꾼은 격한 비난의 화살을 허 감독에게 돌리고 있다. 특히 허 감독에 대해 평소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던 팬들은 허 감독에게 비난의 자격을 묻기까지 하고 있다.

한편으로 다른 이들은 허 감독이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로 인해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고 옹호하기도 했다.

'말아먹었다'는 표현의 강도가 지나치게 강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된 것이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비난과 옹호의 충돌이 반복되기만 한다면 허 감독이 전달하려던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허 감독은 최근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과 관련해서 외국인 지도자가 국내 지도자와 비교할 때 막연한 신뢰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월드컵 4강 신화 이후부터 허 감독 전까지 월드컵, 아시안컵 등 큰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감독직은 늘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맡겨져 왔다. 한국 축구에 정말 많은 것을 남긴 히딩크 감독의 후광이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명 외국인 지도자는 국내 지도자에 비해 세계 축구 흐름에 밝고, 베테랑이든 유망주든 모든 선수들을 편견 없이 제로 베이스에서 객관적으로 바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은 어떤 의미에서 '용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히딩크 감독처럼 한국 축구에 애정을 갖고 유소년 축구 발전 등을 위해 끊임없이 교류를 가질 수도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케이스다.

전쟁에서도 용병은 자신을 고용한 쪽의 승리만이 목적이지, 그 외의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히딩크 감독 이후 대표팀 외국인 감독들도 당장의 성과에 매달려 즉시 전력감인 선수들의 효율적 활용에 치중했을 뿐, 진정한 의미의 젊은 피 발굴이나 육성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허 감독은 이런 단점은 무시된 채 우리 국민이 가진 히딩크 감독에 대한 신뢰감의 그림자로서 외국인 지도자에게 보내는 무조건적인 신뢰가 가질 수 있는 맹점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허 감독의 비판은 물론 국내 지도자에게도 적용되는 기준 잣대이다. 국내 지도자라고 해서 무조건 한국 축구의 미래까지 고려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국내 지도자도 통상적으로 처음에는 2년이란 짧은 계약 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성적에 연연하기 쉽다.

국내파라도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읽는 것을 게을리하고, 단기적 관점에서 성적에 얽매이고 비난을 피하고자 유망주 발탁 등 과감한 선수 기용을 기피하며 세대교체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한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허 감독의 비판 대상에 히딩크 감독에 포함되었든 그렇지 않든, 그에게 '비판의 자격'이 있든 없든 허 감독의 '말아먹었다' 발언 논란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흐르게 될 때 우리는 한국 축구에 던져진 중요한 화두를 놓치는 불행을 겪을지도 모른다. 21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신임 감독에 조광래 감독이 선임되며 새로운 사령탑도 정해졌다. 이제 소모적인 논란과 해명은 빠르게 매듭지어지고,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한 생산적인 토론과 논의만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엑스포츠뉴스 브랜드테마] -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 (C) 엑스포츠뉴스DB]



전성호 기자 spree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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