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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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선언' 이상민, 아쉬움이 가득한 이유는?

기사입력 2010.04.22 15:17 / 기사수정 2010.04.22 15:17

임정혁 기자

[엑스포츠뉴스=임정혁 인턴기자] '산소 같은 남자', '컴퓨터 가드', '영원한 오빠',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있는 선수. 9시즌 연속 KBL 올스타 팬투표 1위를 차지한 이상민(38세)의 은퇴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상민은 22일 서울 태평로 빌딩에서 가진 공식 은퇴 기자회견에서 "팬 여러분께 너무나 죄송스럽다. 전주 KCC에서 이적한 뒤 우승을 못하고 은퇴를 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문을 연 이상민은 진한 아쉬움과 함께 은퇴를 공식화했고, 앞으로 지도자 연수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홍대부고 시절 1-3-1 지역방어의 선봉장이던 이상민은 1991~1992시즌 농구대잔치 신인왕을 차지하면서 본격적인 등장을 알렸다. 당시 곱상한 외모와 달리, 강한 승부근성을 바탕으로 정확한 패스와 3점슛, 이따금 덩크슛을 할 정도로 운동능력이 좋았던 이상민은 '컴퓨터 가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1993년 연세대 3학년 재학시절 기아자동차와 현대, 삼성전자를 제치고 대학팀이 농구 대잔치 우승을 차지한 것은 농구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무 입단 후 농구대잔치에 참가한 이상민은 96년 1월 26일에 13점 17리바운드 10어시스트로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면서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국내농구 2호, 남자선수 1호의 트리플-더블 기록을 갖게 됐다.

1997~1998시즌 현대 전자에서 프로무대에 데뷔한 이상민은 1999~2000시즌까지 팀을 3년 연속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특히 1998~1999 시즌과 1999~2000시즌에는 2시즌 연속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을 거두면서 '이상민-맥도웰 콤비'의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이는 후에 한국 농구계에 '맥도웰 스타일 용병' 선발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상민 개인적으로 두 시즌 연속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대가 KCC 이지스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이상민은 2003~2004, 2004~2005 두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었고, 2003~2004 시즌에 프로농구 세 번째 우승을 이뤘다.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다. 199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에 참가해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4강전 필리핀과의 경기에서는 역전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며 결승행을 이끌었고 결국, 한국 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선수 생활의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2007년 6월 전주 KCC가 서장훈과 FA계약을 체결했고 그에 따른 보상선수로 이상민을 삼성으로 보냈다. KCC는 이 같은 결정으로 평소 "이상민과 프로에서 같이 뛰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 서장훈의 실망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많은 팬의 원성을 들었다.

서울 삼성으로 이적 후 이미 고질적인 허리부상으로 운동능력과 체력이 많이 떨어진 이상민은 2007~2008, 2008~2009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지만 두 번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특히 2008~2009 시즌은 자신의 친정팀인 KCC와의 대결에서 준우승에 그친 것은 아쉬운 대목이었다.

올 시즌 역시 6강 플레이오프에서 KCC에 막히며 삼성에 우승컵을 안겨주겠다는 이상민의 목표는 결국 이루지 못했다. 늘 "우승 후 은퇴"를 염원하던 이상민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결국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아쉬움이 남았다.

한편, 삼성 구단 측은 이상민의 은퇴 후 지도자 연수에 지원을 약속했고, 이에 따라 이상민은 지도자로서 준비를 할 예정이다.

[사진=이상민ⓒKBL 제공] 



임정혁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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