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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설(海東傳說)5(1) 자유투(自由投)

기사입력 2006.03.17 13:20 / 기사수정 2006.03.17 13:20

김종수 기자








5년 후…

언제나처럼 활기가 넘치는 전주현의 연무장으로 수련생들의 함성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와아! 저럴 수가?"

"그러게, 대단한데…"

많은 수련생들이 한 소년을 향해 놀라움 가득한 탄성을 보내고 있었다.
조수철?
아니었다.
항상 탄성과 감탄의 중심에 서고는 했던 조수철이었지만 이날만큼은 거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텅텅…
바닥을 퉁기는 농구공소리가 힘차게 들려오는 가운데 한 소년이 계속해서 그물주머니를 향해 손목을 꺾고 있었다.
피리리릭.
소년의 손을 떠난 농구공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여지없이 그물 주머니 안을 통과하고있는 모습이었다. 놀랍게도 백발백중으로 농구공을 던져대는 소년은 다름 아닌 정차룡이었다.

"쟤, 차룡이 맞니?"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가 있지?"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진 정차룡의 모습은 동료소년들에게 많은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새해를 맞이해서 연무관에서는 각각 그 동안 배운 특기를 자랑하는 일종의 장기자랑형식의 시합을 펼치게 되었다.

안정적으로 공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그물주머니를 맞고 튄 공을 잡아내는 능력, 농구공을 던져 그물주머니를 통과하는 정확도 능력 등등…농구의 여러 가지 사항들이 시합의 대결종목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라 다를까 이날도 조수철의 독무대였다.
조수철은 여전히 또래 중에서 최고의 실력을 선보이며 월등한 기량으로 동료들을 압도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의 최고 명승부는 다름 아닌 농구공의 정확도 대결이었다.

처음에 정차룡이 엉거주춤 손을 들고 걸어나올 때만 해도 소년들은 야유조차 우습다는 듯 입가에 조소(嘲笑)를 가득 배어 물고 있었다. 또래 중에서 가장 운동신경이 떨어지고 뭐든지 습득이 느린 정차룡이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황당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차룡은 그렇게 시합에 참여하게 되었다.

승부는 일 백 개의 공을 던져 그물주머니를 통과하는 횟수로 결정 나게 되었다.
대부분의 소년들이 육십 개를 넘지 못하는 가운데 악동(惡童)이창헌이 칠십 삼 개를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후끈 달궈나갔다. 다음차례로 나온 조수철은 팔십 팔 개를 성공시키며 단숨에 일 위 자리를 뒤집었다.

이창헌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가운데 이번 종목도 조수철의 압승(壓勝)으로 끝나는구나 하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마지막으로 걸어나온 정차룡.
아무도 정차룡이 조수철의 기록을 깰 것이라고는 생각 치 않았다. 그저 저 둔한 친구가 몇 개나 집어넣을 수 있을까하는 정도가 관심의 대부분이었다.
'삼십 개 정도는 집어넣겠지?' '너무 과한 기대 아니야, 이십 개만 넣어도 대단할 것 같은데…' 수군거리는 동료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정차룡은 상기된 얼굴로 농구공을 잡고섰다.

촤악!
정차룡이 던진 첫 공이 시원스럽게 그물주머니를 가르자 동료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거푸 몇 개가 계속해서 더 들어갔지만 그런 표정들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적어도 십여 개가 연속으로 들어갔을 때까지만 해도 우연이려니 하는 것이 주위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스물, 서른, 마흔…
정차룡의 손을 떠난 공은 여지없이 그물주머니를 가르고 또 갈랐다.
백 개를 다 던졌을 때 정차룡이 성공시킨 개수는 무려 아흔하고도 다섯 개.
놀라운 성공률이 아닐 수 없었다.

"……"

이창헌은 물론 지켜보고 있던 모든 동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심지어는 연무관에서 농구수련을 담당하는 교관까지도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딱 한사람, 조수철만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짝짝짝…
대견하다는 듯 교관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이어 동료들도 따라서 손뼉을 마주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야! 정차룡, 오늘 약 먹었다."

"멋있었어. 정차룡!"

이날 연무관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정차룡이었다.


"잘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정차룡이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련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요?"

한쪽에서 김치를 자르고있던 중년 여인 한 명이 고개를 돌려 정차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릴 때부터 정차룡을 키워준 유모로 이름은 김성미(金聖美), 죽산현출신이었다.

"아니에요."

히죽 웃는 얼굴로 어깨를 들썩거려본 정차룡은 이내 후다닥 집 뒤의 공터로 달려나갔다. 어서 농구공을 잡아보기 위함이었다.

촤악.
여전히 손끝의 감각은 살아있었다.
연무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던지는 족족 그물주머니가 출렁거렸다.

"히히힛…"

너무나도 기분이 좋음에 정차룡은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웃음을 흘려내고 있었다.
태어난 이래,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일제히 칭찬과 환호를 받았다는 사실에 흥분된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어머! 그게 정말이야? 이야아…대단하구나? 차룡아. 평소에 열심히 노력하더니 그 성과를 보게되나 보다.'

나중에 들린 임희정의 칭찬은 정차룡의 기분은 더욱더 들뜨게 해 주었다. 직접 보여주지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몰래 짝사랑했던 여인인지라, 정차룡의 뿌듯함은 사뭇 컸다.

'이 정도에 만족하면 안돼. 더더욱 갈고 닦아 나중에는 한 개도 안 놓치고 모두 성공시켜야지.'

난생 처음 겪어보는 기분에 무척 들떠있는 정차룡이었지만 현재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지라 농구공을 던져대는 표정에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그때였다.

"쯧쯧쯧…놀고있군."

뒤쪽에서 혀를 차는 음성이 들려져옴에 깜짝 놀란 정차룡이 뒤를 돌아보았다.
육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 한 명이 정차룡을 쳐다보고 있었다. 봉두난발(蓬頭亂髮)한 머리칼에 쭈글쭈글한 얼굴, 이마에는 새끼줄을 한 가닥 질끈 두른 모습이 사뭇 이질감을 풍기는 모습이었다.

"누…누구세요?"

"이 녀석아, 너는 농구를 무슨 자유투(自由投)시합정도로 착각하고 있냐?"

"……"

"농구란 말이야. 살아 움직이는 사람끼리 몸을 부딪히고, 서로간에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를 증폭시켜 승부를 겨루는 시합이야. 가만히 서서 손목만 내둘러대는 소꿉장난이 아니라고."

"할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시기에…?"

"나? 내가 궁금하냐?"

손에 들고 있는 낫과 가위를 앞으로 내밀며 노인이 말을 이었다.

"난 전주현에 새로 들어온 정원사다. 이름은 박현수(朴炫水)라고 하지."

"정원사시면 그냥 일이나 하세요. 왜 남의 일에 간섭하고 그러세요?"



<계속>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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