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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성, 또 다시 방출 그리고 그의 프로야구인생

기사입력 2005.11.26 09:35 / 기사수정 2005.11.26 09:35

고동현 기자

 
'저니맨' 최익성이 자신의 6번째 팀에서도 방출당했다. KBO가 25일 8개 구단으로부터 최종 접수한 보류선수 명단에서 SK가 제출한 명단에 최익성의 이름은 빠져있었다.

최익성의 프로야구 인생에서 무대는 전국 어느 곳을 가리지 않았다.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제외하고 나머지 6개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994년 계명 대학교를 졸업한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한 그는 1994년과 1995년에는 1군에 올라올 기회조차 별로 잡지 못한채 2군을 전전해야 했지만 1996년 시즌에 들어서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갔다. 57경기에 출장해 .252의 타율과 함께 4개의 홈런과 함께 16타점을 기록한 것. 

최익성은 1997시즌에 들어서며 자신의 이름을 만방에 알렸다. 삼성의 주전 좌익수와 함께 1번 타자로 나서며 .296의 고타율은 물론 1번타자의 상징인 도루는 33개나 기록했다. 홈런도 22개나 기록하며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클럽에 가입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 때 최익성이 손목에 착용했던 주황색 형광 보호대는 아직까지 많은 팬들의 기억속에 회자되고 있다. 1998시즌에도 그 전 시즌만큼은 아니었지만 .262의 타율과 함께 13개의 홈런과 20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하지만 최익성의 떠돌이 생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1999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것. 1999시즌에 최익성은 68경기에 밖에 출장하지 않았지만 .288의 타율과 함께 9홈런 11도루를 기록하며 한화의 한국 시리즈 첫 우승에 일조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또 다시 트레이드. 2000시즌을 LG에서 보냈으며, 2001시즌에는 기아로 팀을 옮겨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2002시즌에는 현대로 팀을 옮겨 2003시즌까지 뛰었으며, 2004시즌에는 친정팀 삼성에 다시 한 번 둥지를 틀었다. 그 사이 최익성의 입지는 너무나 좁아져 있었다. 1998년시즌을 기점으로 이후에는 100경기를 출장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2003년과 2004년에는 1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팀에서 방출되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최익성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2004년 12월에 SK와 연봉 5천 만원에 계약을 하며 재기를 노렸다.

2005시즌 시범경기에 들어서 최익성은 연일 팀이 중요한 상황에서 홈런포를 터뜨리며 정규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정규시즌을 앞두고는 MBC 교양프로인 '사과나무'에서 최익성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루며 많은 프로야구 팬들과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의 활약을 최익성은 이어가지 못하며 시즌 중반까지 2군에서만 머무른채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최익성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최익성은 그 기회를 살렸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9월 18일 문학 LG전. 그 당시 SK는 두산과 치열한 2위 다툼을 하고 있었다. 팀이 1-3으로 뒤진 9회말 2아웃 1,3루 상황. 주자가 두 명이 나가있다 하더라도 승부의 추는 이미 한 쪽으로 기운듯 싶었다. 하지만 대타로 나온 최익성은 상대 투수 김민기의 공을 통타해 좌측 담장을 넘기는 3점홈런을 기록하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최익성은 시즌 막판에만 4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결과는 또 다시 방출. 이번에 SK가 최익성을 방출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SK는 채종범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를 하는 등 이렇다할 외야수 자원이 없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이번 방출로 최익성은 또 다시 선수생명의 기로에 서있다. 최익성이 이번 방출을 딛고 새로운 팀을 찾아 다시 한 번 꽃을 피길 기대해 본다.    




고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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