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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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스트와 멀티플레이어

기사입력 2005.08.16 17:48 / 기사수정 2005.08.16 17:48

이철규 기자
최근 축구계에는 압박과 스피드가 대세를 이루며 멀티플레이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전술변화를 제공할 수 있는 옵션으로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중심을 잡아 줄 스페셜리스트가 없다면 기대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협력수비와 압박의 등장

90년대 말부터 각 국가마다의 고유한 축구스타일에 서로의 장점을 취합하며, 고도로 발달된 축구전술이 등장했다.
90년대를 주름잡던 판타지스타들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협력수비, 예전보다 공격성이 더 요구되는 미드필더와 윙백들이 대표적인 예. 즉, 수비수는 수비만 해서는 안되며, 공격수는 공격만 해서는 안되고, 복잡하고 다양한 전술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가 아닌 곳에서 보다 잘 플레이 할 수 있도록 요구 받고 있는 것이다.
 
 
스페셜리스트의 중요성

이러한 멀티플레이어들의 활약으로 손쉽게 승리하며 각 포지션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상대적 저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팀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멀티플레이어들이 더 자유롭게 공수를 오갈 수 있게끔 해주며 팀의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각 포지션별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스페셜리스트가 자신의 위치에서 팀의 중심을 잡으며 밸런스를 조율하지 않았을 때, 멀티플레이어만으로 이루어진 팀은 손쉽게 허물어지는 경우가 나타났고, 이에 따라 감독들은 그라운드에 이 둘의 조화를 통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 스페셜리스트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
 
문제는 유망주들이 환타지스타나 클래식컬한 플레이어가 전술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보고 멀티플레이어를 지향하며, 한 분야의 전문성에 예전에 비해 부족함을 가지며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각 포지션의 스페셜리스트가 줄어 희소가치가 높아지자, 최근 유럽의 이적시장에서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액수가 붙은 선수들이 줄지어 등장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국의 아쉬움

외국에 비해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은 국가가 한국이나, 일정레벨에 도달한 스페셜리스트가 드물다는 것 또한 사실.
 
단기적 승리에 연연하며 근시안적 사고로 자신의 강점을 버리고 어설픈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스스로의 재능을 계발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멀티 플레이어를 지향하기에 앞서, 분명한 자신의 주력 포지션을 확실히 한 뒤에 멀티 플레이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부분에 걸쳐 고루 잘한다는 것은 장점이나 그런 선수들은 매우 한정적이다. 여러 부분에 걸칠 노력을 한 분야에 쏟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축구선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25세는 되어야 가능하다. 어린 선수들이 순간의 유행에 따라 자신을 발전시켜야 할 중요한 시기에 흔들리지 않게 바른 길로 인도하며, 선수의 잠재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한국의 현역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의 대표적 멀티 플레이어 유상철선수가 꾸준히 윙백으로 뛰었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던 전 히딩크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화려함만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독일은 미드필드에서 공을 뺏어 측면으로 패스,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받은 공격수가 득점한다는 교과서적인 공식으로 세계를 제패한 바 있다. 이들 저력의 비결은 기본기에 충실하며 자신의 포지션에 스페셜리티를 가진 선수들에 있다. 그리고 선수들이 스페셜리티를 가질 때까지 믿고 지켜보며 응원한 국민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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