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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Letter] 설기현의 '멈추지 않는 도전'

기사입력 2009.07.02 01:20 / 기사수정 2009.07.02 01:20

정재훈 기자



[엑스포츠뉴스=정재훈 기자] "풀럼과 남은 계약 기간이 유럽에서 뛰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도전하겠다". -설기현-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오묘한 단어다. '시간상이나 순서상의 맨 끝'이라는 이 뜻은 주로 모든 것을 포기할 때 혹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즉,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기회'라는 단어가 첨언이 된다면 뜻은 180도 바뀐다. 벼랑 끝의 위기감이 아닌 굳은 의지,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다.

'스나이퍼' 설기현이 축구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을 펼친다. 사우디에서의 성공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척박한 땅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을 내친 프리미어리그에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대한 축구협회의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0년 벨기에 앤트워프에 입단하며 벨기에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설기현은 일 년 만에 벨기에 최고의 명문팀 안더레흐트로 이적하며 성공시대를 열었고 잉글랜드 챔피언십을 거쳐 프리미어리그까지 진출하며 드라마를 써나갔다.

레딩을 거쳐 풀럼으로 이적한 설기현은 힘겨운 2007/08시즌을 보냈지만 2008/09시즌 개막전에서 호쾌한 헤딩골로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호치슨의 신임을 받는 데 실패하며 곧 벤치 멤버로 전락하며 1월 겨울 이적 시장으로 통해 사우디의 알 히랄로 반 강제적 임대를 떠났다.

설기현이 사우디로 떠나 좋은 활약을 보이자 언론은 설기현이 풀럼을 완전히 떠나 사우디에 정착하거나 혹은 한국으로 돌아올 것으로 예측했다. 벨기에와 잉글랜드에서 숱한 도전을 하며 어려운 유럽생활을 한 설기현이었기에 선수 생활 막바지에는 안정을 택할 것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약 10년간 유럽에서 활약하며 도전을 거듭했던 설기현이라도 적지 않은 나이는 돈과 명예가 보장되는 사우디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고 K-리그의 발전과 가정을 위해서 한국행 역시 충분히 고려해 볼만 했다. 또한, 남아공 월드컵이 체 일 년도 남지 않은 현재 주전이 보장되지 않은 풀럼으로 가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그러나 설기현은 안정을 택하지 않았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31살인 설기현은 축구를 시작했을 때 소년의 마음을 져버리지 않았고 어렵고 험난한 길을 택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귀양살이(?)에 가깝던 사우디에서의 6개월 동안의 생활에서 얻은 것은 패배자의 모습이 아니라 다시금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임대를 떠났던 올해 초에 비해 딱히 사정이 나아진 것은 없다. 설기현을 중용하지 않던 로이 호치슨 감독이 여전히 풀럼의 지휘봉을 잡고 있기 때문에 주전 확보가 쉽지만은 않다. 공격수에게도 수비적인 면을 많이 요구하는 호치슨의 특성상 비교적 수비가담이 부족한 설기현이 중용 받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시즌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2008/09시즌 예상외의 선전으로 7위를 차지한 풀럼은 유로파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리그와 FA컵, 리그컵에 유로파 리그까지 출전하게 되어 예년보다 훨씬 더 빡빡한 스케줄이 되었고 선수층이 얇은 풀럼으로서 설기현의 가세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다.

더군다나 풀럼은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등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설기현을 호치슨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전보다는 더 많은 출전기회를 줄 것으로 예상한다. 게다가 측면과 중앙 공격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전술 운신의 폭도 넓다는 장점도 여전하다. 프리 시즌에 인상적인 경기력만 보여준다면 예상보다 빨리 팀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황선홍, 박지성과 함께 한국 공격을 이끌던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설기현은 수많은 골 찬스를 놓치며 적지 않은 비난에 시달렸으나 이탈리아전에서 기적과도 같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영웅으로 거듭났다. 유럽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부족한 결정력으로 설기현에게 갖은 비난을 하던 사람들을 단숨에 침묵시키는 중요한 골이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벅찬 골이었지만 설기현은 묵묵히 자신의 맡은바 일을 할 뿐 그전과 다르지 않았다.

벨기에 최고의 명문 안더레흐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히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팀에서 챔피언십의 울버햄튼으로 이적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설기현의 선택에 의아해했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레딩으로 이적하며 꿈에 그리던 EPL로 진출하며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증명했고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사우디에서의 생활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쳤다.

잠시 중심에서 떨어졌지만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설기현은 이번에도 또 다른 도전을 즐기고 있다. 설기현은 스스로 '마지막' '기회'라고 표현했다.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지 못한다면 월드컵에 출전하기 어렵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음에도 그는 도전을 선택했다.

다소 힘겨운 주전 경쟁을 앞두고 이런 선택은 일종의 자신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안락한 삶을 팽개치고 자청해서 치열한 경쟁이 있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다시 뛰쳐들어갔다. 여태껏 설기현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몸소 증명했다. 이제는 이 '마지막 기회'를 증명할 차례다.

자, 이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설기현의 화려한 비상을 지켜보자.

[사진= 마지막 기회에 놓인 설기현 (C) 엑스포츠뉴스 DB, 김금석 기자]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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