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채정연 기자] "나를 흔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지난 7일, 손승락은 LG를 상대로 250세이브를 달성했다. 오승환, 임창용에 이어 KBO리그 통산 3번째다. LG에게 2번의 블론세이브를 당하며 주춤했던 것도 잠시, 손승락은 이내 스스로 털고 일어났다. 올 시즌 39경기에서 1승 4패 17세이브 평균자책점 4.35. 넥센 소속이던 2010년부터 9년 연속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두 자릿수 세이브가 어느덧 250이라는 숫자까지 도달했다.
250개의 세이브 중 가장 인상깊었던 세이브는 어떤 것일까. 손승락은 그 중에서도 첫 세이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마운드에 멋모르고 올랐다"는 표현으로 정신없던 그 날을 떠올린 손승락은 "구속은 나왔는데 100%로 던지지는 못했다. 그런데 세이브를 따냈다"고 돌아봤다. 초보 마무리에게는 쉽지 않았던 터프 세이브 상황이었지만, 손승락은 "그 상황이 두렵기보단 너무 재밌고 스릴있었다"고 말했다. 손승락에게 마무리는 시작부터 '천직'이었던 셈이다.
9년간 큰 부상과 부진 없이 마무리 보직만 소화해 온 손승락에게도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2경기 연속 블론세이브를 범했던 손승락은 2군행을 자처했다. 멘탈이 무너졌다거나, 블론의 충격 때문은 아니었다.
"쉬지 않고 9년간 마무리 보직을 소화하다보니 반복적인 패턴에 다소 지쳤던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마운드에 계속 서는 것이 팀을 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갔는데도 편치 않았는데, 상동 주변의 자연을 보며 많이 치유했다."
주위 환기에 성공한 손승락은 조금씩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다. 포크볼, 커브 등 잘 쓰지 않던 변화구들을 다시 꺼냈고, 이는 타자들에게 있어 승부를 어렵게 만드는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손승락은 "마무리 인생의 첫 변화다. 변화구를 던져보니 재밌더라. 선발로서 던지는 느낌"이라며 "변화구를 던지면 타자들이 '이건 뭐지'라는 표정으로 본다. 예전에는 무엇을 던질지 알고 잡는다면 이제는 모르니까 당황하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발전하는 타격 속에서 KBO리그의 불펜 전반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묻자 손승락은 "대비책을 준비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불안해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는 마무리 보직을 맡아선 안된다"는 답을 내놨다.
그런 그도 한번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손승락은 전면 개조가 아닌 '무기 추가'를 택했다. 그는 "본래 내 스타일은 버리지 않았고, 다만 여기에 새로운 무기(변화구)를 추가했다. 야구가 늘고, 시야가 넓어지고 기술이 좋아지고 있다"라며 "굳은 땅에 손승락이라는 꽃이 있다면, 그 꽃을 보는 게 재미 없어졌을 때 더욱 예뻐보일 수 있는 것들을 붙였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9년 차 마무리가 보는 '마무리의 조건'은 무엇일까. 손승락은 "80%가 멘탈'이라는 말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마무리를 진짜 오래 하는 사람들은 뭔가가 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는 밑바닥을 치면 다시 오를 수 있다. 나를 흔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했다. 또한 기술과 더불어 실력이 중요한데, 아프지 않은 것도 실력이라고 꼽았다. 손승락은 "매년 그 자리에서 뛰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구위를 지키려는 노력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승락은 인터뷰 동안 '선발로 던지는 기분',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에게 다시 선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묻자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마무리로서) 쌓아 온 기록들을 더 늘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두터워진 커리어지만, 그 이상을 욕심내는 승부사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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