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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지금은 허정무 감독을 믿어야 할 때다

기사입력 2009.06.08 14:38 / 기사수정 2009.06.08 14:38

전성호 기자


-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선 꼭 외국인 감독이 필요한가?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지난 주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UAE전 승리를 통해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란 대업을 일궈냈다.

그리고 역시나 월요일 아침, 평소엔 K-리그 경기 결과는 토막 기사로도 내지 않던 조간신문들까지 이에 대한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하나씩 기사를 탐독하던 중 깜짝 놀랄만한 제언을 발견했다. 과연 2010 남아공 월드컵을 허정무 감독 체제로 치를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나타내는 글이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고 해도 아직 최종예선이 2경기나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것은 언론과 축구팬의 머릿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국내파 감독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불신이 거의 반사적으로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과연 허정무호는 그 정도의 비난을 받을 만큼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걸까.

허정무 감독과 마찬가지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고도 끝내 경질당했던 조 본프레레 감독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본프레레 감독은 여러 경기를 거듭하면서도 전혀 전술적이나 선수 발탁 면에서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현 허정무 감독의 행보는 이와 다르다.

허정무 감독이 7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이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커 나가는 것이 보인다. 한국 축구의 미래가 희망적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그가 대표팀을 맡고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성공적인 세대교체다. 허정무 감독은 2000년 올림픽 대표팀 감독 당시에도 철저한 무명이었던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송종국, 김남일 등을 중용하였고, 이들은 이후 한국 축구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허정무 감독은 현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에도 기성용, 이청용, 이근호, 곽태휘, 정성훈, 조용형 등 끊임없이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며 대표팀의 색깔을 바꿔놓았다. 그의 세대교체는 한국축구의 장기적인 발전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2010년 6월이 지나면 더 이상 축구를 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초반에는 해외파를 ‘편애’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사실 최근 몇 년간 허정무 감독만큼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던 선수를 중요하던 감독도 없었다. 허 감독은 최근 컨디션이 좋은 유병수, 최태욱, 양동현 등도 대표팀에 발탁했다. 모두 최근 K-리그에서 물이 오른 선수들이다. 한국 지도자들이 ‘명성 있는 대형 선수에 목을 맨다.’라는 편견과는 정반대되는 행보이다.

최근 대표팀 재발탁에 대한 팬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천수, 최성국, 이동국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일 경우 허정무호에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축구의 근간이 되는 K-리그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면 대표팀에 갈 수 있다!’라는 생각을 주는 것은 대표팀 감독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세다.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허 감독은 부임 초기 구사하던 4-2-3-1이 원하는 만큼의 효율을 보이지 못하자 기존의 선수 자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4-4-2전형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격진에 이근호-정성훈의 '빅 앤드 스몰' 조합을 활용하거나, 박주영-이근호의 투톱을 내세워 대표팀 공격력의 증강을 꾀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또한, 박지성에게 주장 완장을 채우며 팀 분위기 쇄신과 함께 안정감을 더했다. 기존의 강성 이미지를 벗고 부드럽고 열린 자세로 선수들을 대하고 팀을 이끄는 '자율 리더십'에서도 대표팀 감독직 수락 당시 "축구 인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걸었다"던 허정무 감독의 변화와 성공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허정무 감독을 믿어야 할 때

현 대표팀의 이근호처럼 2군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던 선수라도 단점을 고치고 발전을 이룩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1군 경기에 나서게 되고, 해외 진출도 하고, 더 나아가 대표팀에도 발탁될 수 있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국가를 주로 상대해 거둔 22경기 연속 무패의 기록은 차치하고라도, 허정무 감독은 지금껏 당면한 과제를 모두 잘 풀어왔다.

한 때 프로리그에서는 너무 많은 무승부를 양산했고 과거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았으며, 심지어 지난해 3차 예선에서도 불안한 경기력을 보였어도 어찌됐든 허정무 감독은 최종 예선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북한이 속한 어려운 조편성 가운데에서도 2경기를 남겨놓고 본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짓는 결과를 냈다. ‘죽음의 중동 원정’에선 2승 1무를 거두었고, 사우디 아라비아에겐 19년 만의 원정 승리도 얻어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고, 2006년에는 월드컵 본선에서 첫 원정 승리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성취는 외국인 지도자 밑에서 얻은 것이었다. 10여 년 전과는 달리 이제 한국 선수들은 개인 기량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세계 축구의 중심이라는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도 많은 이들이 뛰고 있다. 이제 지도자의 측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

만약, 만약에 월드컵을 앞두고 명망 높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다 하더라도 이는 ‘월드컵 진출권’이란 이점 덕분일 뿐, 딕 아드보카트 감독 때처럼 월드컵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감독을 찾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결국, 장기적인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국내지도자의 성공을 위한 지지를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파 지도자를 통해서도 한국 축구가 얼마든지 성공적인 모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우리 내적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됨은 물론, 더 나아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허정무 감독을 믿고 2010년을 향해 꾸준한 자세로 준비해야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박지성이 중요한 경기를 결장할 때처럼 온갖 비관론을 펼치며 일희일비하는 언론과 팬들의 자세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본선을 위한 ‘의미 있는’(다시 말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에 몰두할 때다. 대표팀은 K-리그 선수들을 주축으로 짜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내년도 일정을 수립함에 있어 K-리그와 대표팀이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심도있게 모색해야만 한다.

또한, 11월 이후 있을 A매치에서 월드컵을 대비해 유럽, 남미 등 강팀과의 경기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설사 이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해도 지나친 비관론에 빠지는 것 역시 곤란하다. '0-5' 패배’를 당하더라도 패배를 통해 배우고 한 단계 도약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강팀과의 경기를 갖는 궁극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지지는 허정무 감독이 긍정적인 행보를 이어나갈 때까지의 얘기다. 그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지지가 아닌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다만, 지금은 허정무 감독의 두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같이 들 때이지, 누르고 있을 때가 아닐 뿐이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글은 위클리엑츠 7호에 실린 글입니다.

[사진ⓒ엑스포츠뉴스DB]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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