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는 홈팀인 FC 서울과 원정팀인 포항 스틸러스 간의 2005 K-리그(전기)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같은 날 열렸던 인천과 부산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우승까지 노릴 수 있었던 포항과, 지난 수요일 무패의 부산을 잡아 올리며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서울의 경기는 전기리그 최종전이란 점과 우승팀이 나올 수도 있는 경기였다는 점과 이동국-박주영이란 양 팀의 특급 스트라이커들이 펼치는 자존심 대결이란 점에서 많은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경기의 중요성과 흥행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경기장에는 무려 4만 8천 명(48,375명)이라는 K-리그 역사상 단일 경기 최다 관중이 운집했고, 경기 내내 뜨거운 응원과 파도타기 등을 연출하며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경기 내용적인 측면과 그 밖에 전체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역시 소속팀인 서울과 포항을 넘어 앞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가야하는 이동국-박주영이라는 두 스트라이커의 대결에 초점이 모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전기리그 득점 선두에 올라선 박주영의 경우, 그야말로 ‘골을 넣는 유전자’가 매우 활발한 선수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경기였다.
박주영, 역시 타고난 골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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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영(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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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leaguei |
오늘 경기에서 김은중과 더불어 최전방에 위치한 박주영의 움직임은 그다지 활발하지도 크지도 않았다. 감기몸살 탓인지 활동적이지도 못했고, 공간을 만들거나 기회를 잡으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은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첫 골이 터졌던 전반 15분. 히칼도의 패스를 받은 박주영은 상대 수비수보다 더 빠르게 공에 접근했고, 정확하게 오른발로 차 넣으면서 포항의 골문을 열었다. 처음 찾아온 득점 기회에서 놀랄 만큼 침착하고 정확하게 득점과 연결하는 장면은 세계 정상급의 골잡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바운드되어 떨어지는 공을 더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트래핑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한 박자 빠르게 골키퍼의 왼쪽으로 정확하게 찔러 넣는 모습은 스트라이커들이 꼭 갖추어야 할 좋은 교본과도 같았다.
만약 그 순간 공을 트래핑 했다면 곧바로 뒤따라 왔던 수비수와의 접전이 기다리고 있었고, 트래핑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면 기회는 날아갈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또, 슈팅을 하는 순간 차는 발목에 힘이 들어가면 공은 의도한 방향과는 다르게 날아가 버려 득점 기회를 무산시키기 쉬운 어려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동작을 생략하고 간결하고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골로 만들어내는 모습은 역시 박주영이란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후반 들어서도 박주영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16분 또 한 번 찾아온 득점 기회를 바로 골로 연결하면서 다른 부분들의 문제점은 가려지게 되었다.
후반 16분 박주영이 오른쪽 사이드에서 공을 잡아 아크 수비수 한 명을 제치며 아크 중앙으로 돌파해 히칼도에게 공을 연결했고, 다시 히칼도의 로빙 패스를 받은 박주영은 수비수를 등진 상태에서 한 번의 페인트 동작으로 수비와 골키퍼를 속이며 각도를 만들어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첫 번째 만들어 냈던 골이 다른 동작 없이 바로 슈팅으로 연결한 감각적인 득점이었다면, 두 번째 골은 수비수를 뒤에 등진 상태와 각이 없는 상황에서 수비수도 제치고 슈팅할 수 있는 각도도 만들어 내는 기술적인 득점이었다.
골을 넣었던 상황을 제외한다면 경기 내내 좋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에서는 무서울 만큼의 집중력을 선보이며 기어이 골로 만들어 냈던 것. 이것이 바로 박주영을 가리켜 그렇게도 좋은 선수라고 칭찬하고, 앞으로 무한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이유를 잘 보여준 것이었다.
이동국, 완패한 것이 아니다반면 이동국은 표면적인 득점을 기록하지 못해 기록상으로는 박주영에게 완패한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 내내 이동국의 움직임은 나무랄 데는 없었다. 전반 4분 아크 오른쪽에서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한 로빙 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곧이어 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싱을 올리는 등, 경기 내내 좋은 장면을 많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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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국(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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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leaguei |
이날 경기에서 이동국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기 내내 위치를 바꾸고 공간과 기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창의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두, 세 차례 잡았던 결정적인 기회에서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이번 경기에서 이동국이 지적당해야 하는 약점이겠지만, 공격수로서의 임무와 전체적인 움직임에서 만큼은 박주영 보다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동국은 전반 초반 다실바보다 조금 처져서 미드필더에서부터 공간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후 전반 중반에는 최전방으로 이동해 기회를 잡으려 했고, 전반 말미에는 좌측면으로 이동하여 중앙의 공간을 동료에게 만들어주는 노련미도 선보였다. 후반에도 여러 차례 위치 변화를 통해 실마리를 풀려고 시도하는 등, 창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전반 4분과 24분 후반 77분과 80분에 이동국은 수비수보다 먼저 공간을 찾아 돌아들어가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움직임이 있었기에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골 운’이 있었다면 충분히 득점으로 연결 될 만한 장면이었다. 물론 경기에서 ‘골 운’이라는 부분도 실력으로 함께 묶어 얘기해야겠지만, 이동국의 움직임 전체가 낙제점을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 박주영과 이동국의 차이를 얘기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동료들의 도움이었다. 박주영의 경우 투 톱으로 나섰던 김은중과 함께 상대 수비진을 흔들어 수비력이 분산되었고, 히칼도란 ‘킬-패스’의 달인으로 인하여 비교적 완벽하고 편안한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동국은 함께 공격을 이끈 다실바나, 황진성 등의 공격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다. 다실바는 아주 실망스런 경기력을 펼치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최전방에는 이동국이 두 명의 서울 수비수에게 쌓인 채 고립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그렇다고 황진성이나 김기동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진에게서 좋은 패스를 받지도 못했고, 기회를 얻지도 못했었다. 결국, 이러한 미드필더라인과 공격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이동국은 외로운 싸움을 펼쳐야 했고, 결과적으로 개인적으로나 팀 전체적으로나 완패하고 만 것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나타난 박주영의 가장 큰 장점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탁월한 득점력과 항상 공을 잡은 상태에서는 동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를 곤란하게 만드는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고, 이동국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경기의 흐름을 돌리기 위한 시도와 변화를 끊임없이 줄줄 아는 공격수라는 것과 공간을 찾아내 만들줄 아는 위치 선정이 좋다는 점이다.
4-1이라는 경기 결과와 해트트릭을 기록한 박주영과 한 골도 넣지 못한 이동국의 차이는 표면상에 나타난 숫자의 차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비록 경기의 승-패는 갈렸지만 두 선수 모두 다른 선수들이 갖지 못한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선수임에는 틀림없었다. 다만, 오늘 경기에서 박주영은 그 장점들이 좋은 결과로 표출되었고 이동국은 그렇지 못했다는 결론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다가오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은 물론이고, 당분간 한국 축구를 가장 선두에서 이끌게 될 이동국과 박주영. 이 훌륭한 두 명의 공격수들이 앞으로 어떻게 경쟁하며 얼마만큼 성장해 나갈지 K-리그와 한국 축구를 보는 흥미로운 ‘꺼리’가 아닐 수 없다.
손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