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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 놀러가다] 응원가 소리가 끊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사입력 2009.05.03 10:50 / 기사수정 2009.05.03 10:50

박진현 기자

[축구장에 놀러가다] K-리그 8R, FC 서울 대 성남 일화

서울월드컵경기장 가는 길

지난주 잠실종합운동장에 이어서 이번 주는 K-리그가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두 개의 축구팀이 존재하는 것도 이제 생소한 것이 아니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는 월드컵경기장역에 도착하자 그치기 시작했다. 사실 비가 올 때 축구경기를 관람하거나 취재하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을 했다. 다행히 비가 잦아들어 즐거운 마음으로 월드컵경기장역의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주변에는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축구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과 경기장 내 극장가와 상가를 찾은 사람들이 어울려 기분 좋은 소란함이 들린다. 그리고 북쪽 출입구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바로 '비바! K-리그'의 진행자인 이재후 아나운서. 얼마 전 모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한 안희욱 PD의 모습도 보인다. 지난주 방송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찾아뵙겠다더니 정말 필자 앞에 나타났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길을 따라 기자석에 자리를 잡았는데, FC 서울의 구단직원이 다가와 이름과 소속을 재차 확인하는 것이다. 기자증을 당당하게 목에 '달랑달랑' 매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낯이 구단직원의 눈에는 뭔가 의심스러웠나 보다. 노트북도 챙겨가지 않았고, 기자답지 않은 외모(?)를 소유한 본인의 불찰이리라. 어쨌든 언짢은 기분을 안고 취재준비를 하고 있으니 킥오프 시간이 다가왔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서울월드컵경기장

경기는 의외로 서울의 공세 속에서 진행된다. 성남은 라돈치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모조리 수비가담을 하며 보다 수비에 치중한 전술로 경기에 나섰다. 예년과 비교해 볼 때 불안정한 전력을 감안해 신태용 감독이 가져나온 전술이다. 경기를 무심히 지켜보던 필자에의 귀가 심심했다. 왜 그런가 하고 서울의 서포터스 쪽을 봤더니 뭔가 이상하다. 경기진행에 따른 약간의 환호와 야유만 있을 뿐 신나는 응원가 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던 중 서포터스 앞에 걸려있는 두 개의 걸개가 눈에 띈다. 'K리그는 없고 MU만 있다, 서울은 없고 GS만 있다', 'K리그 무시하는 구단과 연맹은 각성하라'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방한과 서울과의 친선경기가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과 맨유의 친선경기 일정이 7월 24일로 확정됨에 따라 7월 26일로 예정되었던 서울과 광주전이 5월 30일로 앞당겨졌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앞으로 서울의 리그 일정에 차질 생길 것을 감지한 서포터스가 응원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잠시 제쳐놓고, 지금 당장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의 입장에서는 뭔가 아쉽다. 사실 축구관람을 할 때 때로는 지루할 때도 있다. 농구와 같이 1분에 몇 골씩 계속해서 득점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야구와 같이 아리따운 치어리더와 같이 호흡하며 응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캐스터와 해설자의 샤우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허전한 축구관람에 있어서 하나의 비타민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서포터스의 응원소리이다. 그러니 홈팀인 서울 서포터스의 보이콧으로 이날 경기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하지만, 서울 서포터스의 이런 투정도 골 앞에는 장사가 없다. 전반 19분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김치우의 크로스를 김승용이 달려들어 헤딩슈팅으로 성남의 골문을 열었다. 당연히 관중은 환호를 하고, 서울 서포터스 쪽에서도 작은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평소와 비교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서울의 응원가가 작게나마 울려 퍼진다. 역시 축구는 골로 말한다. 아무리 구단이 ‘미운 짓’을 해도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에게까지 그 화살은 돌아가지 않는다. 경기 중에 서울의 아디가 몇 차례 쓰러졌을 때 아디를 향한 일반관중과 서포터스의 외침은 필자의 몸을 떨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모두 신중할 때이다



이날 경기는 다소 조용한 경기장 분위기 때문인지 경기내용 역시 그리 활기를 띠지 못했다. 특히 전반에는 성남이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서 서울의 주도권 아래 경기가 진행되었다. 전반 16분 김치우와 김승용을 좌우에 배치해 측면을 공략한 귀네슈 감독의 전술이 효과를 봤다. 김치우가 올려준 크로스를 김승용이 헤딩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이날 경기의 유일한 골을 뽑아냈다.

성남은 후반시작과 동시에 조동건과 어경준을 라돈치치와 김진용 대신에 투입하며 공격적으로 나섰다. 김정우의 공수조율과 모따를 활용해 공격전술을 펼쳤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서울은 후반 17분 부상에서 회복한 이청용을 투입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기대했지만 헤딩슈팅이 골포스트를 맞는 등 불운으로 쐐기골 사냥에 실패했다. 결국, 경기는 '쏘리쏘리(Sorry, Sorry)' 세리머니를 선사한 김승용의 골에 힘입어 서울이 성남을 1대0으로 눌렀다.

경기종료 후 홈팀이자 승리팀인 서울의 선수들은 관중석에 다가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이어서 서포터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냈다. 서울의 서포터스도 역시 보이콧과 상관없이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렇듯 팬들과 선수들의 관계는 감성적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이런 관계에서 구단과 연맹에서 불필요한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한다면 축구팬의 입장에서는 응원 보이콧과 같은 최소한의 단체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맨유의 방한이 무조건 피해만 주는 것이 아니다. K-리그를 자극할 수도 있고, 축구유망주들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경기 하나하나가 연례행사인 K-리그 일정을 바꿔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존하는 기업들은 '고객만족'을 우선으로 하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프로구단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K-리그 고객인 팬들의 축구에 대한 지식과 기대가 전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각 구단들과 연맹은 하나의 사안을 결정하는 데 예전에 비해 더욱 신중하게 고민하고 합의점에 도달해야 한다. 연초에 결정되는 리그 일정은 팬들과의 약속이다. 최근 흥행부진을 앓고 있는 K-리그로서는 '일등고객'인 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박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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