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3.01 02:28 / 기사수정 2009.03.01 02:28
박찬호. 유일무이한 한국 최고의 투수이다. 올드팬들은 선동렬, 최동원이 현역시절 MLB에 갔다면?? 이라고 물음표를 붙여도 뭐라 할말은 없지만 내겐 누가 뭐라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는 박찬호다. 찬호는 당시만 해도 금아(禁亞)의 영역이었던 MLB에, 그것도 인기구단인 LA다저스에 입단하며 한국야구계에 새로운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찬호를 MLB의 세계로 보내 준 것은 단연 직구,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박찬호가 빅리그의 스카우터들에게 관심을 받은 것은 94년 대학생으로 참가했던 국제대회에서 였는데, 국내에서는 당시엔 박찬호가 아니라 다른 이들이 더 관심을 받고 있었다. 임선동, 조성민, 손경수 3인방이 당시 가장 주목받고 역사상 손꼽히게 주목받는 세대들이었다. 이 3명 중 조성민이 그나마 요미우리에서 활약해주었을 뿐, 나머지 2명은 깜짝활약과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그저그런 선수로 남아있다. 이것을 생각해보면 역시 빅리그 스카우터들이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94년 박찬호를 영입한 다저스는 곧바로 그를 경기에 투입시킨다. 스타트는 상큼했으나 긴장했던 탓인지 볼넷을 남발하며 강판당한 후, 모든 신인이 그렇듯 마이너리그로 간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혔듯, 마이너리그 시절은 훗날 박찬호에게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더블 A 샌안토니오에서 20게임 선발로 나와 5승7패 3.55 에 101.1이닝 100탈삼진을 기록했고, 95년에는 트리플A에서 22게임동안 6승7패 4.91과 110이닝 101 탈삼진을 기록했다. 기록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박찬호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투수였지만 탈삼진을 잡아내는 능력 하나만으로도 잠재력이 무한했던 강속구 투수였다.
결국 마이너리그에서의 활약과 성장, 그리고 그를 지지해준 토미 라소다 감독의 끈질긴 추천 끝에 96년 드디어 메이저리거가 된다. 사실 당시에 구단주였던 피터 오말리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박찬호 영입에서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왕따(?)로 만든 박찬호에 대해 썩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명장 토미 라소다 감독이 앞장서서 박찬호의 이름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그의 MLB는 시작된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도 광속구였던 160KM의 포심패스트볼을 앞세워서.. 그의 포심패스트볼은 중력의 버칙을 위반하는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너무나 볼끝이 좋고 빨라서 공이 타자 앞에서 솟구쳐 오르는 직구다. 그냥 95마일의 직구도 치기 힘들텐데 떠오르는 95마일의 직구는 어떻겠나. 아마 당시 타자들은 쳐내겠다는 생각보다는 맞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더 컸지 않았을까..후후
이렇게 초일류급 포심을 앞세워 박찬호는 96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5승 5패 3.84를 기록했으며 108.2이닝동안 무려 119개의 삼진을 잡는 삼진쇼를 벌였다. 다음해부터 완벽한 선발로스터에 포함되면서 드디어 박찬호의 승승장구가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