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2.06 00:39 / 기사수정 2009.02.06 00:39
[엑스포츠뉴스=변성재 기자] 어린 시절부터 프로레슬링을 즐겨본 기자는 이분의 만화로 큰 영감을 얻어 현재까지 프로레슬링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또 그의 만화를 보기 위해 매주 화요일마다 기다리는 프로레슬링 팬 또한 있었으며, 그의 만화에 빠져 훗날 사각의 링을 점령하는 프로레슬러로 데뷔한 선수도 보았다. 90년대 국민 만화 잡지였던 아이큐점프의 '스카이 레슬러'라는 만화를 기억하는가? '바로 90년대 프로레슬링을 풍미한' 만화 작가 장태산이 그 주인공이다.
90년대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동네가 고요하다. 아니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신의 소개 부탁 드립니다.
먼길 올라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꼭대기라 힘드시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화가 장태산입니다. 어원 문화생 시절까지 합하면 40년 인생 만화가지요 (웃음)
- 어린시절 소년 장태산은 어떠했나요?
글쎄요…만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꼬마라 해야 정답이겠습니다. 이런 말 해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만화는 종교요. 삶의 전부였습니다. 어린 시절 속히 말하면 동네 싸움대장이었지요. 학창시절 때 또한 비슷했습니다. 기자양반 또한 그때 시절에는 친구에 미치고 의리에 살지 않았나요? 나만 그런가? (웃음)
보릿고개가 쓸고 지나간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놀거리 또 볼거리가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민들을 울고 웃음을 줄 수 있었던 스포츠 프로레슬링이 바로 우리들의 추억거리였습니다.흑백TV에서 방영된 프로레슬링 시합, 기억을 못 하겠지만요. 프로레슬링이 시작할 때면 집에 TV있는 친구들에게 서로 잘 보이기 바빴죠. 즉 집에 TV가 있는 집은 바로 동네의 사랑방이었습니다.
물론 동네에 TV가 없다면 다방이라던가 동네 만화방에 한 명당 일정한 입장료를 지불하고 입장해 옹기종기 프로레슬링 즐겼고 항상 만원이었으며, 가끔 그 시대가 그립네요.
- 몇 년도에 만화가로 데뷔하였으며 활약한 만화를 잠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약 41년 전이네요. 벌써 내 나이도 그렇게 들어버렸네요. 1968년생 어원 문화생을 거쳐 1982년 '불꽃'으로 데뷔했습니다. 데뷔 후 '야수라 불린 사나이' '나간다 용호취' '스카이 레슬러' 으로 활약했습니다.
- 어떤 취지로 프로레슬링 만화를 연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아이큐 점프'라는 만화 잡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프로레슬링이 엄청난 인기가 있었으며, 헐크호건, 워리어가 등장해 소년들의 우상이었습니다. 아이큐 점프라는 만화 잡지사에서 어느 한 사람이 찾아와 기획서를 쓱 내밀더라고요. 처음에는 한참 고민에 빠졌습니다. 프로레슬링에 대해 룰도 모르고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프로레슬링 팬으로써 나 자신이 보는 거와 만화가로서의 그림 그리는 게 천지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훗날 고민하다 '끝내 해보자.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만화였습니다.
- 연재한 만화의 제목은 '스카이 레슬러'였습니다. 이 제목으로 지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스카이'라는 말을 즉 하늘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자유스럽다'라는 분위기로 이 제목을 택했습니다.
- 스카이 레슬러에 등장하는 주인공 복면 엑스는 어느 선수를 보고 모티브를 잡게 되었는가요?
스카이 레슬러를 연재 전 고민에 빠져있을 때 한 줄거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나를 찾아 왔습니다. 연재 3회, 4회가 지나자 갑자기 내 귓가에 이상한 말이 들려오더라고요. 일본의 모 만화와 비슷하게 흘러 간다라고요. 그런 소리를 듣고 너무 황당해 그 스토리를 전문으로 하는 학생을 불러 어찌된 거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일본의 모 만화를 잠시만 참조했을 뿐이다.' 라는 말을 듣고 난 뒤 그 학생과 작업을 하기가 싫더라고요. 5회부터 나 홀로 작업을 했습니다. 만화를 그리고 스토리 쓰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웃음)
- 스카이 레슬러 제작 당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좀 부탁 드릴게요.
참 재미난 게 많았지만 그중에 재미있었던 한 가지만 말할게요. 스카이레슬러 그 작품을 미국 프로레슬링과 시대적 배경이나 움직임이 같이 흘러간 작품입니다. 연재 당시 독자와 주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말이 들려왔어요. '장태산이 프로레슬러 출신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웃음바다였습니다.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웃음) 그 당시 제 작품을 담당하는 기자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운이 없게 먼저 세상을 떴지만 말입니다. 그 친구가 나에게 항상 '가정 파괴범 장태산 작가'라고 별명을 지어주더라고요.
원고 마감 할때까지 작업실 구석에 쪼구리 자면서 원고 마감을 기다렸던 친구였습니다. 항상 그 친구가 그랬습니다. '선생님 저 신혼입니다. 저 이혼하시면 책임지시겠습니까?'라고요. 벌써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네요. (웃음)
- 다른 만화와 일단 '다른 걸 느끼게 된다, 자신만의 극화체 스타일을 고집하곤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데뷔작부터 우중충하고 무겁다. 이런 평을 받아왔습니다. 만화를 보는 사람 내 만화를 가볍게 보겠지만 내 손에서는 만화는 절대 가볍지 않은 존재입니다. 무겁다고 해야 할까요? 당시 외국 만화는 컬러 만화였으며 하지만 한국 만화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컬러만화를 내심 부러워 그런 효과를 내기 위해서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주의라 말하면 편할 뜻 합니다.
- 스카이레슬러를 연재할 때 그때 당시는 프로레슬링 인기는 어떠했나요?
굉장했습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나도 역시 토요일 오후 4시 미국방송 AFKN의 WWF를 자주 시청했습니다. 현재는 그 방송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집 주의 골목에서 노는 애들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 작가 장태산이 본 프로레슬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기보다는 사실은 지금과 개념은 다릅니다. 물론 프로레슬링 안 좋아했다고 말하기는 싫습니다. 좋아해서 만화를 연재하고 사랑을 받았으니깐요.
당시 태권도, 유도 운동들은 그때만 해도 나쁘게 말하면 경직이며, 도의 길로 두 가지 보는 시점이었습니다. 그 운동에서 빛을 보지 못한 사람은 쇼맨십화를 살려 밤 무대를 전전해야만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을 많이 스카이 레슬러에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년들의 만화라 그렇게 묘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2부에서 계속]
만화가 장태산의 약력
1953년 서울 출생
1982년 '불꽃'으로 데뷔
1991년 프로레슬링 만화 '스카이레슬러' 연재
1992년 '김춘삼, 풍운영웅' 연재
1997년 '지킬박사와 하이드' 연재
2009년 現 부산 예술문화 대학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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