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1.14 12:49 / 기사수정 2008.11.14 12:49
[엑스포츠뉴스=이천우 기자] 축구에서 미드필더의 기본적인 임무는 수비진과 공격진에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연결고리 역할을 위해선 공격력은 물론 수비력 갖춰야 하며 90분 내내 경기장을 누빌 수 있는 강인한 체력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공격수보다 골 찬스를 잡을 기회는 적겠지만 미드필더도 중요한 순간에 골을 터트릴 수 있는 득점력도 가져야 한다. 특히 영국 첼시 소속의 람파드나 K-리그 수원 삼성 소속의 백지훈은 미드필더임에도 공격수 못지않은 득점력이 있어 종종 '미들라이커'라고 칭한다. 내셔널리그에서도 이 '미들라이커' 유형의 선수가 있다. 바로 천안시청의 김장현.
김장현은 197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청주 대성고를 졸업한 그는 한때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 상비군을 역임했다. 2001년엔 동아시아대회 대표로 이천수, 정성훈, 김정우와 함께 선발돼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대표 이력과는 달리 김장현의 프로 이력은 초라했다. 2000년 숭실대를 거쳐 안양에 입단했지만 2군에만 머물렀다.
2005년 (주)봉신(이하 봉신)이라는 병역특례업체 축구팀에 김장현이 있었다. 안양에서 나와 병역의무를 해결코자 봉신에 입단한 것이다. 봉신에서 김장현은 평일 업무가 끝난 후에 볼을 차며 축구선수의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당시 봉신은 2005 코니 그린 컵 전국아마추어축구대회(김장현이 최우수선수상 수상)를 석권하며 아마추어에선 명실상부한 강팀이었다. 또 2005 FA컵 본선에도 출전했다.
아마추어 축구계에서 명성을 떨친 김장현은 2006년 강릉시청(이하 강릉)에 입단한다. 내셔널리그 입문 첫해 13경기 출장 1골 2도움으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 2007년엔 임호와 봉신 동료이기도 했던 나일균과 함께 삼각편대를 구성해 강릉의 공격축구를 이끌었다. 김장현의 2007년 기록은 전 경기(22경기)에 나서 2골 6도움으로 전년에 비해 한층 더 나아진 기량을 보여줬다. 김장현은 도움 6개로 공동 1위에 올랐지만 출전시간에 밀려 도움 상을 김요환에게 내주고 말았다.
2008년 김장현은 신생팀 천안시청으로 적을 옮긴다. 구현서-김장현-김기중으로 이어지는 천안시청의 척추 라인은 2008시즌 천안을 떠받치는 전력의 70%였다. 특히 김장현은 정교한 오른발로 상대 진영 어디서든 묵직한 중거리슈팅을 날렸다. 또 구현서의 머리로 직접 배달해주는 ‘특급택배’ 크로스와 빈 곳으로 찔러 넣는 예리한 패스도 빼놓을 수 없다.
신생팀 천안에서 첫 시즌을 보낸 김장현의 성적(25경기 출장 5골 7도움)은 최고였다. 특히 작년과 제 작년에 비해 득점력이 크게 급상승했다. 정교한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슈팅은 상대 골키퍼들에게 위협적인 대상이었다. 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원숙한 경기운영으로 천안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다.
'김장현의 전성시대'라고 불러도 될 만큼 2008년은 김장현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향상된 득점력으로 '미들라이커'로 거듭났고 천안으로 건너와 핵심 멤버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물론 김장현에게 아쉬운 면은 있다. 조금씩 늦어지는 패스타이밍과 과도한 슈팅욕심이 흠이면 흠이다.
과거 태극 마크를 달기도 하였고 완전히 잊히기도 했던 김장현. 내셔널리그에 입성 후 내리막길에서 오르막길로 궤도를 바꾸고 쾌속질주하고 있다. 2009년에도 그 질주가 멈추지 않길 바란다.
[사진=천안시청의 김장현 (C) 내셔널리그 김현정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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