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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삼국지] 하이원 권태안, '꿈을위한 물음표'를 찾는 낙천적인 모험가의 노래 - ①

기사입력 2008.11.13 17:41 / 기사수정 2008.11.13 17:41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 김경주 기자] 아시아리그가 시작되기 직전인 10월 중순쯤, 한국 아이스하키계에는 작은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4년 전 홀연 한국을 떠난 권태안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대학교 1학년인 아이스하키 선수가 한국을 떠났다. 졸업만 하면 실업 행이 보장된 '연세대'라는 타이틀을 버린 채 '도전'이라는 이름 단 하나만을 위해서였다. 차근차근 도전해 나가는 동안 아이스하키의 본국이라는 캐나다와 미국도, 탑 레벨이라는 스웨덴 리그도 다 겪어봤다. 

4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권태안은 결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경험을 했다. 비록, 그 나이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병역 문제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야 했지만, 다시 스무 살이 되어 똑같은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자신은 꼭 나가고 말겠다고 말하는 권태안은 아시아리그 적응을 위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지금도 달리고 있다.

먼저, 해외에 나갔을 때 얘기를 해보자

권태안 (이하 권) : 4년을 해외에 나가 있었는데 처음 갔던 캐나다 2년은 부모님하고 있었어요. 계속 계신 건 아니고 왔다갔다하셨는데, 그래서 고생을 많이 하셨죠. 캐나다엔 친척도 계시고 그래서 좀 편하긴 했었는데, 미국 넘어가서는 혼자 지냈어요. 스웨덴도 그랬고.

혼자 사는데 힘들지 않았나

권 : 스웨덴에 있는 7개월 동안 시즌을 치르는데, 정신이 없어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시즌 때는 일주일에 3번씩 게임을 하고 이러다 보니까 다른 생각 하고 할 틈이 없죠. 이제 상위팀에서 누군가 떨어져 내려오거나 하면 그 속에 또 경쟁이 생기거든요. 제 포지션이 또 공격수다 보니까 그런 공격수가 내려오면 더 신경을 써야하고, 모든 신경이 링크에 가 있죠. 나태해질 틈이 없어요. 외로울 틈도 없었죠. 시즌 쉴 땐 다음 시즌 생각해야 되니까 몸 만들고 되고 그랬죠.

나름 아이스하키의 본국도 겪었고 탑 랭크에 위치한 나라의 팀도 겪어봤다

권 : 스웨덴이 가장 보람된 시즌을 보냈던 것 같아요. 캐나다랑 미국은 적응하는 동안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막 정신없이 보냈거든요. 그래도 캐나다 있을 때는 워낙 재밌었어요. 딱 나가자마자니까 의욕이 넘쳤으니까 이것도 해보자. 저것도 해보자. 했었죠.

근데 정말 지원 같은 걸 받은 것도 아니고 힘들기도 했어요. 처음 나가자마자 2주는 눈코 뜰 새도 없었죠. 선수가 정말 많아요. 본토이다 보니까, 유럽에서도 막 오고 그러거든요. 타이밍도 중요하고. 사실 그렇게 선수가 많은데 검증도 안된, 게다가 동양인을 누가 쓰겠어요.

이미 검증된 애들이 수두룩한데, 그렇다 보니까 더 급한 거에요. 내가 어떤 선수다라는 걸 보여줘야 되니까. 테스트를 받고 싶다고 하면 그래요. '그래? 테스트비는 니가 내.' 이런 식이에요.

어쩌겠어요. 자비 내고 테스트받아야죠. 그렇게 테스트받아서 이미 싸인이 된 누군가를 밀어내야되요. 그 자체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해외 진출 당시 연세대 소속이었다. 아이스하키에서 연세대라는 이름은,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면 국가대표도 졸업 후 실업 행도 보장되는 이름이었는데

권 : 연세대라는 이름을 버리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었어요.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그런가…. 한번 사는 인생인데 도전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해봐서 안되면 그 다음은 그때 생각해도 되지만, 아예 해보지도 않고 놓아버리면 그건 너무 허무하잖아요. 안 나가면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다만, 아쉬운 건 대학 생활을 너무 못해봐서요.

그건 아쉬워요. 대학 캠퍼스 자체의 추억도 그렇고, 정기전도 딱 한 번밖에 못했고, 코리아리그도 한 번 치러봤는데, 그래도 그나마 코리아리그에서 최연소 득점왕 했던 건 큰 추억이죠. 근데 그것뿐이에요.

NHL에 대한 꿈은 아직도 유효한가

권 : 군 문제가 없다면! (웃음) 지금 제가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군 줄 아세요? 군 문제 해결된 사람요. 아, 진짜 저는 아픈데도 없어요. 아프거나 다치면 안되긴 하는데, 그래도 군대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니까 여러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군 문제가 해결이 되면 다시 나가고 싶어요. 그러면 중간에 한국 들어와야 되고 그런 일도 없으니까 아이스하키에만 전념할 수도 있고, 4년을 뛰면서 그 리그 특성을 조금씩 이나마 파악을 했으니까 처음 나갔을 때보단 덜 힘들 거 같고 그렇죠. 꼭 다시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인생에 있어서도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해요. 언제 내가 스웨덴 나가서 몇 달씩 살아보고 캐나다에서도 미국에서도 살아보겠어요. 전부 다 기회고 내 인생에 의미죠.

제가 외아들이다 보니까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신데 제가 그랬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서 저는 성공한 삶이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된다구요.”



있는 동안 차별은 없었나

권 : 생각보다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 운동은 당연히 힘들죠. 근데 한국보다 훨씬 재미는 있었어요. 한국에서 운동하면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해야 할까? 캐나다에선 한국에서 축구 인기만큼이나 아이스하키가 인기가 있잖아요.

관중석에 관중도 많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많고. 캐나다 있을 때고 시합 끝나고 나가면 알아보고 싸인 받으러 오는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는 제가 그럴 일이 있을까요? (웃음) 스웨덴에 있을 때는 제가 소속된 팀이 있던 동네가 작은 동네였는데 길에 나가면 알아보고 막 그러니까 '아, 나 유명한 사람이구나.' 하면서 그런 게 생기더라고요. 우쭐하다고 해야 되나? 뿌듯하다고 해야 되나?

그곳 팬들은 원정을 다 따라다녀요. 어느 날 원정을 갔는데 절 부르더라고요. 봤더니 태극기를 가져왔어요. 그러고 나서 항상 경기 때마다 태극기가 걸려있더라고요. 원래 외국 나가면 더 애국자가 되잖아요. 뿌듯하고 국위선양하는 거 같고 그렇더라고요. (웃음)

아, 스웨덴에서 마지막 시합을 하는 날이었는데, 그 태극기를 걸어주던 팬들이 '스벤! 스벤!' 부르더라고요. 갔는데 그 팬 중에 캐릭터 같은 걸 그리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캐리커처를 그려서 주시더라고요. 스벤, 태안 #16 이렇게 적혀져 있는데, 무척 감동받았죠.

그런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인지 가끔은 그립고 그렇죠. 

제이슨, 스벤, 그리고 태안.

권태안이 캐나다를 나가고 난 후 아이스하키에 관심 있는 사람조차 그의 행보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디서도 '태안'이라는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인데, 그는 캐나다에서 제이슨이라는 미국 이름으로 활약했다.

그러다 캐나다로 넘어가 다시 자신의 이름인 태안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다시 자신의 이름을 등에 달고 뛰었다.

제이슨 권이라는 이름을 쓰다 '태안'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바꿨다

권 :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어릴 때 유학을 갔었는데 그때 당시 쓰던 영어 이름이 제이슨이었는데, 다시 캐나다에 나갔을 때 처음에 권태안이라는 이름을 그냥 썼는데, 태안이라는 발음이 어렵다고 영어 이름을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 쓰던 제이슨을 썼었죠.

스웨덴 갔을 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애국심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문득 엄청나게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태안이라는 이름을 쓰겠다 했는데 역시 발음이 어렵다고. (웃음) 그래서 스벤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게 우리나라로 치면 무슨 갑돌이 이런 식으로 촌스러운 옛날 이름 있죠? 그런 거라고 하더라고요. 

동료가 그런 걸로 웃고 장난치고 하면서 오히려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그랬지만, 전 항상 태안이었죠.

혼자 있으면 특별한 날 외롭거나 하지 않았나

권 : 아뇨. 시즌 중엔 시즌 때문에 바쁘고, 생일이 시즌 중에 있었거든요. 경기 끝나고 라커룸에서 팀 선수들이랑 생일 파티도 하고, 크리스마스 땐 노르웨이에 놀러가기도 했고, 외로울 틈이 없었는데, 아, 딱 한번 외로울 때가 있었어요.

제가 당시에 살던 곳이 시내에 있는 아파트였거든요. 새해가 되는 날 베란다에 앉아서 달 보면서 엄마랑 통화하고 그랬어요. 이제 새해라고 불꽃놀이 해주는 거 가만히 보면서 '아, 새해구나.' 그러면서도 조금 외롭고 그랬죠. 근데 그때뿐이에요.

해외 진출이 '도전'이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나

권 : 한국에 있으면 진로가 뻔하잖아요. 대학 졸업하면 어차피 실업에 갈 테고, 나갈 수 있을 때 나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았죠. 나갈 때 그랬어요. '에이, 권태안은 안돼. 가서 뭐 하겠어?'이런 얘기 엄청 들었어요. 만약 제가 다른 인기 종목 선수였으면 어린 나이에 해외 진출한다는데 언론에서도 좀 적어줬을지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대우해줬을지도 모르죠.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그래도 서운하지 않았어요. 가서 경기할 생각 하느라, 내가 여기서 열심히 해서 나 나갈 때 안된다고 했던 사람들 보란 듯이 꼭 계약하고, 성공하겠다고 맘 먹고 나갔죠.

뻔한 진로로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

권 : 그러게요. 사실 ECHL 계약이 거의 결정된 상태였는데, 제가 한국 집 주소가 친척 집으로 되어있었거든요. 나가 있는 동안 군 입대 영장이 나온 거에요. 근데 그걸 몰랐어요. 친척 분이 확인을 하시고 딱 봤는데 오늘 10일이라고 하면 입대가 22일인가 막 이렇더라고요. 그걸 연기를 해야 되고 그렇게 되다 보니까 일이 복잡해졌어요.

결국, 그래서 ECHL은 접게 되었고, 아시아리그로 돌아왔죠.

자유 계약으로 하이원에 들어왔다 동기들은 전부 드래프트로 들어왔는데

권 : (김)기성이나 (박)우상이, (김)윤환이가 다 드래프트로 각자 팀을 찾아갔는데, 근데 저는 국제 하키 규정으로 보면 자유계약 선수가 맞아요. 근데 제 동기들이 전부 드래프트로 들어왔으니 너도 그렇게 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시아리그 4경기를 못 뛰었어요.

이제 드래프트로 들어온 게 아니다 보니까 징계 위원회 회부 얘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저 때문에 하이원 프런트 분들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죠. 해외 선례를 찾아야 하고 그러니까요. 이래저래 엄청 고생하셔서 저를 팀의 일원으로 만들어주셨는데 제가 지금 그만큼 못하는 거 같아서 면목이 없어요.

2에 계속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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