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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회 농심배] 전설의 끝 1편

기사입력 2005.03.10 00:35 / 기사수정 2005.03.10 00:35

주진효 기자

그가 다시 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전설이란 무엇일까요? 그보다는 바둑계에서 전설은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한국 바둑에서도 전설이 만들어진다면 아마도 첫번째 전설은 조훈현 구단이 혼자 나가서 끝내 다른 나라 기사들 모두를 물리치고 우승한 잉창치배 1회 우승의 전설일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이창호 구단이 10년 넘게 무수히 증명해온 실적이 전설로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번 2004년 농심신라면배 제 6회 대회가 그의 전설중 하나가 될 거라 봅니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나면서 더욱 확고한 전설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 대항전인 농심배에서 먼저 네 명의 기사가 1승만을 올리고 모두 탈락한 상황에서 당대의 세계 일인자가 등장합니다. 그의 앞에서 차례로 기다리는 다섯명의 중국, 일본의 기사들. 당대의 일인자라 해도 일류기사 다섯 명을 한차례의 실족도 없이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을까요?


6회째인 2004년 농심배. 5회까지 대회 5연패를 달성한 한국이 물론 그동안도 평탄하게 이겨온 것은 아니지요. 특히 후야오위가 5연승을 달성한 2002년 농심배는 파란 많은 대회였죠. 일본은 자국내 대 삼관 우승자들을 비롯해서 역대 최강의 멤버들을 내보낸다고 광고했다가 실제 나와서 한국의 박영훈에게 4연승 제물이 되고 그 다음에는 후야오위의 5연승 제물이 되어서 조기 탈락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실은 바로 전해인 2003년 제 5회 농심배에서도 한국은 초반 앞의 3명의 기사가 단 1승도 못올리고 탈락함으로써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구원투수 원성진이 등장해 3연승으로 흐름을 완전히 돌려놓았었죠. 이창호 구단은 앞의 한명의 기사만 연승으로 제 몫을 해주면 누가 보기에도 깨끗하게 끝내는 마무리를 해 왔으니까요. 위기를 그동안 맞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2004년 농심배처럼 앞의 네 명의 기사가 최철한 구단의 단 1승만 거두고 모두 물러난 상황은 그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열악한 상황이었죠. 네 명의 기사가 단 1승이고 모두 탈락이라. 이것이 한국의 얘기가 아니라 다른 나라였다면 그리고 그 남은 한명이 바로 이창호가 아니고 다른 어느 기사였다면 누구나 90%는 우승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 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로 그 한 명이 이창호이기에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죠. 바둑팬들의 염원과 응원을 등 뒤에 받으며 이창호 구단은 묵묵히 훗날 전설이 될 그 길을 걸어갑니다.



여기까지가 작년 12월 2일 타이젬 바둑 논단에 올렸던 '전설의 시작'에서 처음에 썼던 구절을 그 대로 다시 쓴 것입니다. (기사 보기) 그 때 말씀드린 바 전설의 시작을 바둑팬들과 함께 축하하는 의미에서 첫번째로 올린 글이었고 지난 12국이 끝나고 13국 왕밍완 구단과의 대결 직전에 전설의 중간 과정에서 바로보는 글로 '전설의 여정'을 올렸었고(기사 보기) 오늘이 그 마지막인 '전설의 끝'입니다.

최종국을 시작하면서 제가 약간 쓴웃음을 짓게 만든 기사가 있었는데요. 중국 기원 원장 왕루난 이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사이버오로 속보 기사중 나온 말입니다.(기사 보기)

"중국기원의 왕루난 원장이 '왕시 5단이 잘 둬서는 이길 수 없다. 이창호 9단이 대형사고를 쳐야지만 이길 수 있다.'라고 밝혔듯이 무게감으로 볼 때는 이창호 9단에게 비중이 쏠린다."

다른 나라 바둑 협회장에게 이러한 믿음을 주는 이창호 구단. '그 누가 상대를 그렇게 두렵게 하는가? 이창호 외에는..'이라고 몇 년전 어느 나라의 프로기사가 말했었죠.

2/25 제 13국에서 왕밍완 구단을 이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바로 다음날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이창호 구단은 인터뷰중 이런 말을 합니다. (전체 인터뷰 기사 보기)

- 이제 마지막 최종 결전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
▲ 매판 그래 왔듯이 최선을 다하겠다.


이번 제 6회 농심배 3차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했던 이창호 9단이 언제나 하는 말인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냥 입에 발린 말이라고 보는 바둑팬은 없을 겁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바둑팬이라면 이 말을 상투적인 기자회견용 준비된 말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이창호 구단은 바로 이 말을 10년 넘게 실천중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봐온 사람들이 바둑팬들이니까요.

타이젬에 올라온 인터뷰(2월 26일. 이영호씨가 인터뷰했다고 나오는데 매니저가 기자가 되어 인터뷰를 해도 되는가요? ㅎㅎ)가 좀 자세한 얘기였는데요.(전체 인터뷰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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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 중국 특파원 이영호 씨가 2월 25일 일본 왕밍완 9단에게 승리한 이창호 9단을 인터뷰 했다.


- 왕밍완(王銘琬) 9단과의 오늘 대국을 총평한다면?


▲ 상변에서 흑이 잘 두었다면 우위를 점할 수 있었는데 실수가 나왔다. 운이 따라준 것 같다.


- 매일 중요한 대국을 두어야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 농심배는 오후에 펼쳐진다. 오전에 쉴 수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 오늘 승리로 4연승을 기록했다. 소감을 말한다면?

▲ 아직 대회 자체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은 대답하기 어렵다. 일단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 최종 결승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각오를 말해달라.

▲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왕시 5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있나?

▲ 지난 삼성화재배(대 이세돌) 때 보고 처음 알았다. 아직 직접 만나보지 못해 확실하게는 모르겠다.


- 처음 만나보는 기사에게는 성적이 좋지 않은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그랬었나? 간접적으로(언론을 통해서) 접한 사실이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


- 기존의 연승식 단체전 기록인 녜웨이핑 9단의 11연승을 넘어 13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소감이 있다면?

▲ 인연이 닿는 기전이 있고 그렇지 않은 기전이 있다. 농심배에서는 행운이 따라주는 것 같다.


- 특별히 어떤 기전과 인연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 후지쯔배가 그렇다.


- 최근 이창호 9단의 바둑을 보면 많이 바뀐 것 같다. 유리해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강수로 일관하는 것 같은데 어떤 이유가 있는가?

▲ 예전과는 달리 조금 유리해도 최종적으로 이기리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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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이창호 구단이 처음 만나는 기사에게 약한 모습이라는 것은 과장이라고 봅니다. 누구나 처음 만나는 상대는 미지의 대상이라 승률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그중 몇몇 기사들(저우허양에게 과거 그랬고 후야오위에게도 그랬죠)에게 처음 만난 이후 2연패나 혹은 3연패를 하면 차이나인들이 너무나 이구단을 꺾기를 바라는 염원에 이창호 천적이라고 떠들어대니 '그렇구나'라는 선입관을 심어준 것이라 봅니다. 실제로 과거 이구단이 여러 세계대회에서 처음 만난 기사들에게도 전반적으로는 우세했던 것으로 아는데요(남미의 어느 아마추어 기사와 붙어서 진 적이 있나요? 일본의 어느 노기사와 대국해 한번 졌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충격]이라는 뉴스로 나왔었지 매번 그렇다면 그게 충격이 될리가 없죠.) 단지 몇몇 그런 사례가 있었고 그걸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이창호는 항상 이기는게 정상이다'는 기준으로 봐서 그렇게 만들어낸 말이라고 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아르마다님이 처음 만난 기사들에게 이구단이 어떤 승률을 기록했는지 과거부터 정리를 해주시길 부탁드려요. 절대로 60% 승률 아래가 아니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번 두번째 글에서 쓴 바대로 이창호 구단은 지난 10여년간 국가의 명예를 짊어진 뒤가 없는 싸움을 여태 해 왔고 온몸을 던져 전력투구를 하는 모습으로 언제나 감동을 줘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으로 인해서라고 봅니다만, 연초의 그러한 부진한 성적(2005년 들어 1승 5패의 상황속에 농심배 출전)을 보면서도 여전히 한국의 다수 바둑팬들은 그가 이창호이기에 한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남은 차이나, 일본의 기사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상하이에 도착해서 3일간의 격전후 2차전 마지막 대국인 제 10국부터 포함해서 제 13국까지 이번 대회에서 총 4연승을 기록한 이창호 구단은 마지막 결전으로 왕시와의 대국을 합니다.

왕시 5단이 누구인가는 바둑팬들이라면 작년 12월 초 삼성화재배 결승을 통해 아시리라 봅니다. 예선 1차전부터 참가해 결승까지 올라온 기록을 세웠는데 - 실은 구리도 그렇게 해서 4강전까지 올라왔다 이세돌 구단에게 졌었지요 - 2004년 CSK배 3연승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세계대회 결승까지 올라갔었는데 차이나 팬들의 평가대로 실력에서 밀려서 우승은 못했지요. 그러나 진짜로는 어떻든 평온한 마음과 표정으로 봐서는 평정심에서는 점수를 많이 줄만하다고 봅니다. 다음날 대국이 있으니 왕시와의 인터뷰는 없었던듯 합니다. 대신에 사이버오로에 단신이 실리긴 했지요. (기사 보기)


"● 왕시는 이세돌과!

검토실에서 왕시 5단과 함께 검토를 하고 있는 김성룡 9단은 "왕시 5단의 감각이 아주 좋다. 그리고 배짱도 좋고 자심감도 꽉 차 있다. 거의 이세돌과다. 이창호 9단이 껄끄러워 할 수를 잘 둔다. 오늘 이창호 9단이 승리한다면 내일 왕시 5단과의 대국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라고 평가."



이 마지막 대국을 지고나서 왕시의 인터뷰를 봐도 솔직한 성품이란 점에서는 높이 평가합니다. 큰 승부에서 진다는 것은 분명 큰 상처일텐데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도. 20살 나이에 그런 자제력을 갖춘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이 점에서는 오히려 이세돌 구단이 제 5회 LG배 결승에서 이창호 구단에게 2대 3으로 결국 역전패를 하고나서 그 충격으로 '삶의 의욕이 없어졌다'는 말이 나중에 나온 - 인터뷰 기사에서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그렇게 말한 것도 들은 바 없으니 그냥 주변에서 나온 얘기겠지만 - 상황이 속마음에 충실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하여튼 저는 장래의 가능성이라는 면에서는 왕시에게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긴 합니다.


마지막 대국인 제 14국이 벌어지기 직전까지의 제 6회 농심배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미무라 : 한종진 - 미무라 불계승


2> 미무라 : 저우허양 - 저우허양 불계승


3> 안달훈 : 저우허양 - 저우허양 불계승 (저우허양 2연승)


4> 저우허양 : 다카오 - 다카오 불계승


5> 다카오 : 유창혁 - 다카오 4.5집승 (다카오 신지 2연승)


6> 펑첸 : 다카오 - 펑첸 불계승


7> 펑첸 : 최철한 - 최철한 불계승


8> 최철한 : 조치훈 - 조치훈 불계승


9> 조치훈 : 뤄시허 - 뤄시허 불계승


10> 이창호 : 뤄시허 - 이창호 불계승


11> 이창호 : 장쉬 - 이창호 불계승


12> 이창호 : 왕레이 - 이창호 불계승


13> 이창호 : 왕밍완 - 이창호 불계승 (이창호 4연승째)



* 제 13국까지 끝난 시점에서 차이나 1명 (왕시), 한국 1명(이창호)이 남게 되고 일본은 탈락입니다.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았었던 한국은 이창호 구단이 4연승을 거두자 상대는 차이나의 왕시 5단 한 명만 남았습니다.



이번 3차전에서 첫 상대이자 가장 강력한 상대인 장쉬를 만났을 때 저는 이창호 구단이 장쉬를 꺾는다면 5연승이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예상했었습니다. 장쉬는 일본의 1인자이고 20대 중반의 최절정기의 기사입니다. 그리고 지난번 제 글에서 썼던 바대로 제가 세계에서 이창호 구단과 6:4 정도로 그다지 밀리지 않는 승부를 할 수 있다고 보는 7명의 기사중 한명이기도 하죠. 다만, 매판의 승부는 무척이나 힘겹고도 힘겨운 싸움이고 '승부에서 거저먹기란 없다'고 서봉수 구단이 말한 것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위에서 이창호 구단이 겨룬 대국중 장쉬와의 대국도 어려운 판이었고 왕밍완 구단과의 대국도 어려웠죠. 그런 대국들을 매일 벌이며 이창호 구단은 마지막 대국이 열린 26일을 맞았습니다.



** 원래 예정은 '전설의 끝'(제 3편)을 하나로 올리려 했는데 전설에 맞게 조금 호흡을 길게 잡고 싶은 생각도 나고 한편으로는 한번에 마무리하기가 어렵기도 하네요. 요새 제가 글을 길게 쓸 여력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래서 우선 3-1편을 올리고 이 마지막 대국에 대해 기보를 보면서 얘기하는 부분은 3-2편을 별도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사진 출처: 사이버 오로>



주진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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