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3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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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와 페어(fair) (1) - KBL 클린팀 어워드

기사입력 2005.03.09 01:53 / 기사수정 2005.03.09 01:53

이은정 기자

04-05시즌을 시작하며 KBL은 페어플레이를 강조하자며 ‘클린팀 어워드’를 신설하고 상금으로 5,000만원을 책정했다. 정규시즌 우승상금이 5,000만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KBL이 얼마나 페어플레이 정착에 목마른지 엿볼 수 있다.

뜻은 높이 사줄만하지만 방법 면에서 보자면 '프로스포츠의 본질마저 망각한 넌센스'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KBL은 시상 기준을 두고 '페어플레이 정착과 스포츠맨십 발휘에 앞장선 팀에게 주겠다'는 두리뭉실한 말로 얼버무렸다. 프로스포츠에서 우승과 똑같은 비중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다.

우선은 "클린팀"시상이 나오게 된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부터 궁금하다. 03-04시즌 KBL집행부를 집단 사퇴까지 몰고 간 "몰수경기", KBL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든 "임대 트레이드", 그리고 KBL 공식기록을 한낱 우스갯거리로 만든 "밀어주기 추태"까지 지난 시즌 배경이 될 만한 사건이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고 만든 상인지 아리송하다.

만약 심판 판정에 항의하지 않는 팀을 두고 클린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프로스포츠의 근본을 망각한 넌센스이다. 도대체 세계 어느 프로 리그가 '어필하지 않는 것'을 두고 미덕이라고 보는가? 잘못된 판정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고 경각심을 깨우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은 프로로서의 직무유기다.

물론 경기 진행상 문제 뿐 아니라 관중들을 위해서도 지나친 어필은 자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판들의 권위를 높이고 판정의 중립성과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 선결과제다. KBL의 역량과 운용의 묘가 중요한 것이지, 상을 줘서 판정에 대한 항의를 막으려는 것은 일의 앞뒤가 뒤바뀐 행정 편의적 발상이다.

더구나 '임대트레이드'와 관련해서 프로구단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 KBL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뱉기 밖에 안되는 것이다. 

KCC는 모비스에서 바셋을 임대하기 전, 미리 KBL 고위직에 절차상 하자가 없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절차상으로는 문제없다는 확답을 들은 뒤 임대트레이드를 추진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KBL은 규정 5장 제111조를 근거로 들어 두 선수가 트레이드 마감 시한까지 바뀐 소속팀 명의로 취업비자를 변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 입장을 보였다.

그것으로 해프닝은 마감하는가 싶었지만 KCC측에서 강력 반발하여 리그를 빠지겠다는 자세로 나왔다. 그러자 2일에 걸친 마라톤 회의가 있고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이 과정은 한편의 촌극이나 다를 바 없다. 기업명이 달라졌을 뿐, 현대에서부터 이어지는 20년 명문구단이며 짧은 KBL역사상 유일한 2회 우승팀이 외국인 선수 하나로 구단을 포기한다는 것은 단지 엄포일 뿐 사실이기 어렵다.

KBL이나 KCC측 그리고 농구팬들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없다. 차라리 매년 엄청난 적자와 낮은 성적속에서 이사회에서 구단존립을 추궁당하던 SBS 쪽이라면 모를까 KCC 농구단 폐쇄는 사실이 될 가능성이 낮았다.

그러나 KBL은 힘의 논리에 밀려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KBL이 소신있게 밀고 나가 트레이드를 금지시키고 KCC측의 판단에 맡겼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KCC 손을 들어줄 생각이었다면 그리고 5장 제111조 규정 같은 것은 잊어버렸다면 차라리 모양새만이라도 조금 더 좋게 끝났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왕좌왕 여론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KBL이 임대트레이드에 대한 비난을 독차지하게 됐다. 문제는 규정상 헛점이 아니라 KBL의 자립 여부였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구단들에게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것인데 보는 팬들이 오히려 낯뜨거울 뿐이다. 

다섯 개 구단이 얽히며 문경은, 우지원, 김주성 같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이 관련된 '밀어주기 파문'에 대해서는 더더욱 할말이 없다. 스타플레이어로서 긍지와 프로선수로서 도덕성과 소양은 과연 어디있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점에 있어서 KBL은 책임 있는 자세로 확실한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정규리그 시상식에 수상을 보류하고 슬그머니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후 올림픽 기간 중 슬쩍 밀어주기 기록을 인정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밀어주기 기록을 인정하는가, 인정하지 않는가는 나름대로 주장이 갈릴 수 있다. 기록자체를 중요시한다면 잘못된 기록이라도 역사의 일부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고 기록의 진위여부를 중시한다면 게임자체를 몰수하고 기록을 폐지해야 마땅했다. 어느 쪽으로 결론 내리든 소신있게 판단해서 나름대로 비난 여론을 감수하는 대신 KBL은 물타기로 여론의 바람만 슬쩍 넘어갔다.

클린팀 역시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팬투표(30%)와 KBL 출입기자단 투표(30%), 각 구단 평가(10%), 경기 기술 위원의 평가(30%)를 반영해서 수상한다고 한다.

때문에 각 구단 홈페이지에는 팀 팬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팝업창을 띄우고 있다. 인기투표라면 모를까 도대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팬들의 투표에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기준도 모호하고 평가의 공정성이나 엄정한 중립성 같은 것은 더욱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KBL의 권위를 웃음거리로 만들뿐인 수상에 거액을 쏟아 붓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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