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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 놈!놈!놈!] 삼프도리아 비운의 레전드, 프란체스코 플라키

기사입력 2008.10.16 13:02 / 기사수정 2008.10.16 13:02

권기훈 기자

[유럽축구 놈!놈!놈!] 3회 - 공백의 선수들편 (세리에A)

삼프도리아의 레전드, 프란체스코 플라키


[엑스포츠뉴스=권기훈 기자] 삼프도리아에서 7시즌. 세리에A, B를 가리지 않고 매 시즌 10골가량을 뽑아주는 득점력, 그리고 이탈리아 국가대표 경력까지.

삼프도리아의 레전드, 로베르토 만치니에 이어 팀의 전설이 될 뻔했지만, 도박과 코카인 양성반응으로 인해 2년 동안 공백 기간을 가지고 있는 비운의 선수 프란체스코 플라키가 이번 편의 주인공이다.

피오렌티나에서의 시작

프란체스코 플라키는 1975년 4월 8일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도 그는 피렌체의 지방 클럽인 피오렌티나 유스팀에 입단하게 된다.

피오렌티나 유스팀에서 경험을 쌓던 플라키는 93/94시즌 피오렌티나가 세리에B로 승격하면서 성인 주전팀에 이름을 내걸기 시작하였다. 데뷔 시즌 플라키는 10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면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연속해서 94/95시즌, 세리에A로 승격한 피오렌티나에서 플라키는 21경기에 출장하면서 주전선수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그는 단 2골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으며 세리에B의 바리로 임대가게 된다.

계속되는 임대

플라키는 바리에서 21경기에 출전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97/98시즌 피오렌티나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피오렌티나에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바티골'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버티고 있었다. 바티스투타의 옆에는 루이스 올리베이라라는 또 다른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버티고 있었기에 도저히 어린 플라키는 경쟁할 수 없었다.

결국, 후반기에 플라키는 또다시 세리에B팀 안코나로 임대가게 된다. 그는 안코나에서 17경기 10골을 터뜨리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Salvatore della Patria

안코나에서 뛴 후, 피오렌티나에서 자신의 자리는 없음을 깨달은 플라키는 세리에B의 삼프도리아로 이적한다. 

삼프도리아에서 뛴 첫 시즌인 99/00시즌, 28경기 5골이라는 좋지 못한 성적을 낸 플라키는 절치부심한 끝에 00/01시즌, 34경기에서 17골을 득점하면서 비상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삼프도리아의 팬들은 플라키를 Salvatore della Patria(고향의 구세주) 라고 부르면서 그를 신뢰하기 시작하였다. 이은 01/02시즌에도 플라키는 16골을 득점하면서 삼프도리아의 핵심인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복귀한 세리에A

02/03시즌 새로운 구단주와 감독을 맞이한 삼프도리아는 세리에B에서 67점의 승점을 쌓으면서 세리에A로 승격에 하는 데 성공했다. 90년대 초반 로베르토 만치니의 시절 이후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것이다. 이 시즌에서 플라키는 9골을 넣으면서 삼프도리아의 승격에 힘을 보탰다.

오랜만에 세리에A로 복귀한 03/04시즌. 그러나 새로 영입된 감독인 월테르 노벨리노 감독은 플라키를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결국, 플라키는 상반기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플라키 대신 뛰던 야나기사와는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노벨리노 감독은 플라키를 내세우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플라키는 얼마 뛰지 못했지만, 11골을 득점하면서 노벨리노 감독에게 무엇이 바른 선택인지 잘 보여주었다.

꿈에 그리던 유럽무대

04/05시즌 세리에A에서 5위를 기록한 삼프도리아는 UEFA컵에 진출하였다.

플라키 본인으로썬 첫 유럽무대 진출이었다. 그렇지만, 삼프도리아는 C조에서 4위를 기록하면서 조별예선을 뚫지 못했다. 삼프도리아를 유럽무대로 진출시킨 플라키는 자신의 커리어 최초로 국가대표에 소집되었으나 아쉽게도 경기에 뛰지는 못하였다.

전설이 되다. 그러나…

플라키는 삼프도리아에서 뛴 7년 동안 250경기에 출장, 자그마치 107골을 넣으면서 경기당 0.43골이라는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프도리아의 팬들은 그를 전설로써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삼프도리아의 전설이였고, 플라키는 삼프도리아에서 평온히 선수생활의 말년을 맞이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2006년 9월 21일,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플라키를 팀 동료 카로지에리와 함께 도박 혐의로 2개월 동안 출장정지시켰다. 그리고 삼프도리아는 3만 유로의 벌금을 받았다. 징계가 끝난 11월. 그는 몇 경기에 출장하였지만, 2007년 1월 28일 인테르와의 경기가 끝난 후 도핑 테스트에서 코카인이 발견되었다. 3월, 플라키는 16개월의 출장정지를 받았지만 이것은 곧 2년의 출장정지로 늘어났다.

팬들은 엄청나게 실망하고 말았고, 그에게 많은 주급을 주고 있던 삼프도리아는 계약을 파기에 이르면서 상황은 점점 더 최악으로 흘러갔다.

재기의 시작

2년간의 정지, 그리고 소속팀까지 없어진 플라키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마추어 리그인 Eccellenza Tuscany에서 훈련하면서 다시 한 번 축구 인생을 불태우기를 원하였다.

결국, 2008년 1월 엠폴리는 플라키를 영입하면서 마지막 축구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현재 2009년 1월이 되어야지 징계가 풀리는 플라키는 엠폴리에서 훈련하면서, 자신의 축구인생을 다시 한번 불태우기를 바라고 있다.

33살의 나이로써 오래 뛸 수 있지는 않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플라키, 이제 약 3개월밖에 남지 않은 2009년 1월에 과연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지켜볼 만하다.

[사진=프란체스코 플라키, ⓒ엠폴리 구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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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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