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0.11 02:17 / 기사수정 2008.10.11 02:17
팬(Fan)은 야구선수들의 플레이로 먹고살고, 야구선수들은 팬들의 사랑으로 먹고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태여 야구가 아니더라도 모든 스포츠는 팬(Fan)과 선수(Player)들에 따라 흥행이 결정된다. 경기력이 향상된다고 해도 마니아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으면 그 스포츠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함을 우리는 '핸드볼' 등 비인기 구기 종목의 사례에서 파악할 수 있고, 팬들이 제아무리 해당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하여 경기장을 찾는다 해도 경기력이 떨어지면 그러모은 사람들을 내쫓는 것은 한순간임을 'K리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스포츠가 점차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로 발전되면서 이러한 인기/비인기, 경기력 향상/퇴보 여부는 이제 '역동성'을 지니게 된다. 지난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치며 스스로 인기에 찬물을 끼얹었던 KBO가 이를 수습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2년(베이징 올림픽)이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상호 보완관계
그래서 Fan과 Player는 서로 상호 보완관계가 되어야 둘의 시너지 효과가 플러스 기호를 나타낼 수 있다. 즉, 선수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줄 경우, 그것을 지켜보는 팬들의 의식과 경기를 보는 눈 역시 '수준 높게' 키워야 한다. K-리그 관계자들과 축구팬들이 '한국축구 위기'를 주장한 것도 2002년 월드컵 이후 높아진 팬들의 '수준 높아진 안목'을 국내리그에서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 팬들의 '구단사랑/열정적인 응원문화'는 타지역 야구팬들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롯데구단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등 스스로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노력하자 부산팬들도 이에 화답하여 즉각 야구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야구장을 찾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야구장으로 출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특히 가을에도 야구 경기를 하자는 팬들의 열망이 적어도 구단 수뇌부들보다 컸기에 2008년도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팬의 존재는 분명 소속구단에 대한 큰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수준 높은 팬들의 '의식'은 아직 덜 성장한 듯싶다. 필자는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모두 관전하며 부산 야구팬들의 응원문화와 경기 모두를 즐기고 있었는데, 한순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무적이었던 한국 여자양궁의 '랭킹 1위'는 단연 박성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중국 관중들의 호각소리 등 매너 없는 응원문화에 힘입어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그리고 그 경기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중국인들의 국민성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성숙한 응원문화를 보여 준 우리나라 관중에 대해서는 스스로 감탄을 했다. 무엇인가 느껴지지 않는가.
물론 98%의 성숙한 부산 야구팬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속팀 승패에 상관없이 수준 높은 관람문화를 보여주며, 자신의 팀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열정적인 응원문화를 보여준다. 정말로 멋있는 장면임엔 틀림없다.
더구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상대팀 응원단상에 올라 추태를 부렸던 부산팬도, 2차전에서 상대팀 투수를 향하여 레이저빔을 쏜 부산 팬도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다.
자, 그렇다고 해서 '혹자'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모든 부산팬들이 면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러한 일부 극성팬들의 모습이 구도 부산의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에 먹칠할 수밖에 없음을 말해두고 싶다.
그래서 혹자는 '내가 오늘 부산에 사는 야구팬이라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수 없다'는 자책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부산 팬들의 부족한 2%가 너무도 아쉬웠다.
상대팀 삼성 프런트는 지난 페넌트레이스 對 롯데전에서 상상 이상으로 원정응원을 많이 온 부산 팬들에 대해 감사인사를 건넨 바 있다. 열정적인 부산 팬들로 인하여 대구구장 매출액은 평균 이상을 기록했으며, 잠실구장 외에는 웬만해서는 들을 수 없다던 '부산 갈매기'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준PO 1차전에서 부산 팬들은 적어도 삼성 팬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상대팀 응원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방해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별 탈 없이 대구 원정응원을 마치고 돌아온 부산 팬들은 최소한 대구에서 온 손님들을 배려했어야 했다. 삼성 구단이 단체응원도구를 모두 챙겨들고 대구로 철수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준PO 2차전은 부산 팬들의 일방적인 롯데 응원에 의한 경기가 진행되었고, 원정응원을 포기한 삼성 구단은 서포터즈 응원을 지원해 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준 PO 3-4차전은 대구에서 열린다. 만약에 대구 야구팬들이 '때는 이때다'라고 작심하여 원정팀(롯데)의 응원을 방해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애써 되찾아 온 야구팬들, 다시 야구장 밖으로 쫓아내기에 좋은 먹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결국, 롯데가 안방에서 준PO 두 경기 모두를 내 준 것은 너무 열정적이다 못해 도를 넘는 부산 야구팬들의 광적(crazy)인 태도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전술이야기는 그 다음 문제다. 솔직히 야구 선진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바로 퇴장이었다.
▲ 대구구장에서는 서로 웃으며 야구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원한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두려워할진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세계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지난 2년간 한국프로야구가 세운 자랑스러운 기록들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자면, 세계 정상권 궤도에 올라와 있는 한국야구를 이제는 세계가 지켜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디팬딩 챔피언'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단어인 이유는 바로 '주목'과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챔피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어야 할 한국 프로야구의 관중문화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양궁 경기에서 호각소리로 선수들의 집중력을 낮추어 버린 중국인들의 후진성 응원문화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중국은 최근 들어 국제사회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망신을 당한 나라다.
필자는 이번 준PO에 나타난 일부 부산팬들만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휴가 내어 야구장을 가는 날이면 경기 종료 후 기어코 쓰레기통을 그라운드에 집어던지는 팬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나는 부산사람이 아니니까 면죄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는 깨어 있는 98%의 야구팬들도 통탄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는가? 준PO에서 경찰들은 왜 관중들의 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는가? 같은 고향팀이라고 해서 그냥 놔두지는 않았는가? 각성해야 할 일이다.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대구 삼성 팬들이 부산에서 원정 온 상대팀 팬들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부탁이건대, 대구에서만큼은 부산에서와 같은 관중문화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의 걱정이 제발 기우이기를 바란다. 양 팀 모두 건전한 응원문화로 소속구단과 상대구단, 모두를 배려하기를 다시 한 번 바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2008 올림픽 기준으로 세계랭킹 1위다. 야구만 1등하는 나라가 아니기를 기원한다.
[사진 = 부산 사직구장, 대구 시민구장 (C) 롯데자이언츠, 삼성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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