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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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호랑이 신인지명(1) 96∼98년

기사입력 2005.02.18 06:25 / 기사수정 2005.02.18 06:25

김종수 기자




● 1996년

◇1차지명  김종국(고려대)

◇고졸우선 서재응(광주일고), 김상훈(광주일고), 김상진(진흥고)

◇2차지명  장성호(충암고), 황성기(휘문고), 조홍준(동성고), 곽현희(영남대), 한명식(경동고), 권오성(고려대-상무), 최길성(배재고), 윤형진(인천고), 양현석(청원고), 이우종(신일고), 홍세완(장충고), 지승준(부천고), 유종열(진흥고), 이동욱(진흥고), 강상진(광주일고), 김우신(장충고), 박현철(광주일고), 김정대(계명대). 백대산(인천전문대), 오주헌(진흥고), 이현석(중앙고), 조상현(부산상고), 김종남(광주일고)


1996년은 개인적으로는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지명 중 하나로 꼽고 싶다. 1차지명과 고졸 우선은 어느 한 명 버릴 선수가 없을 정도이고, 2차지명 또한 같은 해 한화와 더불어서 최상질의 지명을 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2차지명에서 장성호, 홍세완의 대박 뿐 아니라, 해태 암흑기의 에이스였던 곽현희나 좌타 대타로 쏠쏠한 양현석까지도 눈에 띈다. 

황성기는 수비만 되었어도 좋았을 텐데 약간은 아쉽게 느껴진다. 이재주처럼 대타 전문으로 키워도 좋았을 법 한 선수이다. 장타력이 이재주만큼 위력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고교 때는 포수포지션을 소화하면서도 타격은 최상위권이었는데…

권오성은 2군 포수였고, 최길성은 연세대에 진학했다가 정작 타이거즈에는 입단을 못하고 연습생으로 LG로 가고 만다. 청소년 대표 출신인 지승준이 12순위였고, 모대회 타격왕 출신인 강상진은 15순위이니 홍세완의 11순위가 결코 크게 늦은 순위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지승준은 프로에서도 제법 가능성을 보여줬는데, 워낙에 톡톡 가져다 맞추는 선수라 크게 키울 생각을 못했었던 것 같다. 발이라도 빨랐으면 모르지만, 수비도 썩 뛰어나지 않은 단타형 외야수가 1군에 발붙이기는 정말 힘들었던 듯 보여진다.

1차와 고졸우선만 모두 쓸어왔어도 대박인 해로 볼 수 있었는데 뜻밖의 성과가 많았던 최고의 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 1997년

◇1차지명 오철민(영흥고)

◇고졸우선 김병현(광주일고), 김준희(동성고), 김원(진흥고)

◇2차지명 김창희(한양대), 장석희(한양대), 한훈식(경동고), 조남기(중앙대), 노정근(원광대), 김재구(휘문고), 류기중(진흥고), 오우진(휘문고), 안승훈(경남고), 이정훈(경북고), 박혁(제주전문대), 배수형(제주전문대)

96년이 최고의 지명도를 자랑한다면 97년은 그 반대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 해묵은 왼손투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오철민이야 현재 보이는 그대로이고, 유일한 대박픽 김병현은 저 멀리 타국에서 뛰고 있다.

그나마 프로에서 제대로 활약을 해 준 선수는 김창희가 유일하다. 김창희는 복덩이였다. 김일권-이순철을 보유하던 타이거즈 팬으로서, 중견수가 발이 빠르지 않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시기에, 김창희는 그다지 빠르지 않은 발로도 외야수비가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수였다. 이젠 타 팀의 선수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한양대 3-4번을 나눠 치던 선수가 김창희와 장석희였는데, 장석희는 프로에 부적응, 투수 수업까지 받다가 방출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해 지명에 대해 말이 많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선수들 중 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하던 00년도에 대거 지명권 포기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해태는 상당히 많은 욕을 먹었다.

그때 지명권 포기한 선수가, 김원, 김준희 두 고졸우선을 포함해서, 한훈식, 김재구, 안승훈 등 총 5명이었는데 유일하게 오우진 선수만 입단을 했고, 연습경기에서 반짝 기대를 모으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개인적으로 중앙대 김재구 포기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체구가 작고 수비가 부족한 외야수라 해도 결론은 SK에 갔고, 상무에서 펄펄 날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96년 양현석, 97년 김재구 이 두 선수는 미래의 타이거즈 왼손 라인업의 주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제는 둘다 볼 수 없는 선수들이다.


● 1998년

◇1차지명  최희섭(광주일고)

◇고졸우선 김정진(진흥고), 이현곤(광주일고), 강철민(효천고)

◇2차지명 소소경(대구고), 방수환(동국대), 엄병열(중앙대), 이우석(인하대), 윤호석(성남고), 김민주(경북고), 유광일(효천고), 홍석용(배재고), 김대남(대전고), 서재환(인하대), 임동진(대전고), 임근수(청주기공)

조용준 때문에 말이 많은 해다. 하지만 시계를 돌려 당시로 돌아간다 해도, 저 지명으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야 어떻든 지간에 터무니없는 지명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희섭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고교 최고 좌완인 김정진이나, 유격수 탑 순위에 올라있는 이현곤, 그리고 강철민>조용준이었던 당시를 고려하면 저 지명은 명확했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2차지명까지 끝난 이후에 송원국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광주일고 내야 4인방(최희섭-송원국-이현곤-정성훈)을 모두 끌어왔으면 하는게 당시의 분위기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뭐 두산이 1순위로 픽을 했었고 타이거즈까지 순위가 돌아왔다고 해도 송원국을 픽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두산이 송원국을 픽할 때도 빠르다는 말이 있었다. 2순위로 넘어가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정작 타이거즈는 2차지명으로 건진 선수가 거의 없었던 것이 아쉽다고 볼 수 있겠다. 김진웅과 더불어 대구고 쌍두마차였던 소소경도 프로에서는 가능성만 보여주고 LG로 트레이드 되었으니 오히려 이용규를 얻어왔다고 좋아해야 할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해가 끔찍했던 것은, 해태 몰락기와 궤를 같이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지막 우승한 97년에 있었던 지명이었고, 잘 보면 즉시 전력감을 위해 대학 선수들을 많이 뽑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희섭을 잡을 자신이 있었으면 방수환의 지명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우석은 이종범 공백을 메운다는 이야기가 잠시 돌았던 내야수였다. 물론 아주 잠시였지만 말이다.

7순위에 있는 유광일은 효천3인방 중 한명이었고, 대학 졸업 후 LG로 갔다. 당시 효천3인방이 강철민-조용준-유광일이었고, 실제 평가되는 순서도 같았던 데다가, 결론적으로 지명되는 순서도 고졸우선-현대5순위-7순위였다. 

타이거즈 입장에서도 5∼6순위에서 조용준이 남아있었으면 픽을 했었을 것이다. 현대 스카우터가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정확히 뽑아간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 해 지명자 중 특이한 인물이 서재환과 임동진인데, 서재환은 서재응의 형으로 동생을 영입하기 위한 포석으로 깔아놓은 지명이었는데 뜻밖에 서재응을 따라 미국으로 가버렸다. 형을 따라 동생이 올 줄 알았더니 동생 따라 형이 가버린 셈이다.

그리고 임동진은 원광대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주가를 올려놓고는 타이거즈와 계약금 문제로 투닥거리다가 대만으로 가네 어쩌네 하더니 요즘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2000년의 김원, 김재구 지명권 해지부터 시작해서, 임동진의 계약파동 그리고 안병학의 보스턴행까지 원광대와 타이거즈는 그다지 좋은 인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앞으로라도 연고지출신의 우수한 선수들이 원광대에서 배출되어 두 곳이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기를 바란다.

 

※ 이 글은 타이거즈팬 중 한 분인 이기종님께서 모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꽁꽁 숨어있던 글을 최근에 어렵게 발견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나 아까운 마음이 들어 본인에게 허락을 맡고 극히 최소한의 수정만 거쳐 이곳에 올립니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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