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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희망고문'을 멈추고 '기본'으로 돌아가자

기사입력 2008.08.13 21:39 / 기사수정 2008.08.13 21:39

엑츠 기자



[엑스포츠뉴스=상하이, 박형진 기자] "세계의 벽은 역시 높았다"

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 식상하다.

지난 10일 이탈리아에 0-3으로 완패한 한국 올림픽대표팀은 13일 온두라스전에 승리했으나 이탈리아와 카메룬이 0-0 무승부를 거두며 조 3위로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가장 충격적인 경기는 역시 이탈리아전이었다. 이탈리아전은 "세계의 벽은 역시 높았다"는, 너무나 식상한 문구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기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세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이 높은 벽을 어떻게 넘어설지에 대한 고민 없이 안이하게 메달을 운운했다는 것이다.

'호언장담' 박성화호, 뚜껑을 열어보니‥

박성화 감독은 5일 친황다오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4강을 언급했다. 박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이 다른 팀에 밀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월드컵 4강과 같은 기적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8강 진출과 메달 획득을 호언장담했다. D조 조별 예선 상대에 대한 대처방법을 묻는 질문에도 "철저한 분석을 마쳤다"며 자신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박성화호는 그야말로 '부실' 그 자체였다. 박성화 감독은 카메룬전을 앞두고 카메룬이 평가전을 치른 호주와 비슷한 성격의 팀이라고 했지만, 카메룬은 호주와 비교가 되지 않는 스피드와 파워를 가진 강팀이었다. 결국, 박성화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함께 백지훈을 빼고 신영록을 투입하며 자신의 전술적 과오를 인정했다.

"직접 경기까지 봤다"며 분석에 자신감을 나타냈던 이탈리아전. 박성화 감독은 기존의 4-4-2 전술 대신 4-3-3 전술을 사용했지만, 박성화 감독의 특성을 파악한 카시라기 이탈리아 감독은 수비진에 변화를 주며 완벽하게 한국의 공격을 차단했다. 박성화 감독은 이번에도 후반전 시작과 함께 선수 두 명을 바꾸며 전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기술위원장 "개인기" 운운하지만‥

박성화 감독은 매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세계와 한국의 개인기 격차를 언급했다. 카메룬전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카메룬 선수들이 생각보다 파워와 스피드가 좋았다"고 밝혔고, 이탈리아전 직후에는 "이탈리아 공격수들의 스피드와 기술이 워낙 좋았다"고 언급했다. 온두라스전이 끝나고 8강 진출이 좌절되자 "한국축구가 개인 기량의 향상을 위해 힘썼으면 좋겠다"며 이번 대회의 가장 큰 교훈으로 '개인 기량 차이'를 꼽았다.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단장을 맡고 있는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역시 이탈리아전에 대해 "할 말이 없는 패배였다. 선수들의 기술 차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며 개인 기량의 차이를 패인으로 지적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선수들이 마치 그물에 갇힌 고기 같았다. 전술이 안 먹히면 개인 플레이라도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온두라스전을 차지하더라도, 한국 선수들의 개인 기량은 카메룬과 이탈리아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보였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말대로 이러한 부분은 유소년 축구의 유성을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 기량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면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맞춤 전술, 맞춤 전략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맞춤 전술·전략이 필요했던 박성화호

카메룬전과 이탈리아전을 통해 드러난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최대 약점은 '중원'이었다. 주전 미드필더인 기성용과 김정우는 패싱 능력에서 강점을 보이는 선수이지, 강한 압박과 몸싸움으로 중원을 점령하는 선수는 아니다. 결국, 카메룬의 힘과 이탈리아의 기술에 밀린 한국은 중원을 내주며 경기 주도권을 내주었다. 중원의 두 선수가 뒷걸음치기에 바쁘자 엄청난 수비부담이 김진규-강민수의 수비라인에 지워졌고, 한국 수비는 두 경기에서 네 골을 실점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금메달이 아니라 8강 진출만이라도 이루고자 했다면, 박성화 감독이 '우승후보 수준'이라 말한 카메룬과 이탈리아전이라도 제대로 대비하고자 했다면, 적어도 김남일이나 조원희 같은 '파이터형 미드필더'를 한 명 정도는 와일드카드로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몬톨리보와 같은 정상급 기술을 가진 한국 선수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그러한 기술을 방어할 수 있는 투지가 있는 선수는 분명 한국에 존재한다. 박성화 감독은 잠재력 있는 젊고 훌륭한 선수를 잘 선발하기는 했지만, 올림픽 조별예선 경기에 적합한 선수단을 꾸리기엔 실패한 것이 아닐까?

전술적인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박성화 감독은 두 경기가 끝나고 "지금까지 우리가 준비한 축구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박성화 감독이 얘기하는 '준비한 축구'란 양쪽 측면 수비수를 이용한 위력적인 측면 공격일 것이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은 다른 팀 역시 한국팀을 분석하고 이에 대처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결국, 카메룬은 힘 있는 선수를 투입해 한국을 밀어붙였고 선제골을 허용한 뒤에도 젊고 빠른 선수를 투입해 동점골을 만들었다. 카시라기 감독은 박성화 감독의 롱 패스 축구를 완전히 파악해 수비진을 교체했고, 이 전략이 완벽히 맞아떨어지며 완승을 거두었다.

또 한 번의 '희망고문'‥ 이제 '기본'을 말할 때

한국축구의 가능성과 희망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바로 '4강 기적'이다. 박성화 감독 역시 월드컵 4강을 논하며 메달 획득을 자신했다.

그러나 '4강 기적'의 주인공 거스 히딩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은 자신만의 전략과 전술을 갖추고 월드컵에 임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 같은 당시 최고의 스타 선수도 대표팀의 성격에 맞지 않아 제외했고, 김남일과 같이 주목받지 못한 선수도 과감히 기용했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강한 유럽팀을 상대로 수비를 튼튼히 하면서도 실점 후에는 공격적인 교체 전술을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뽑아냈다.

히딩크 감독의 '4강 신화'는 비정상적인 훈련 기간, 열광적인 응원 등 경기외적인 요인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감독의 맞춤 전술과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이 인터뷰를 통해 말한 것처럼 히딩크는 "세계를 향해 도전"했지만, 그 도전은 무작정 부딪혀보는 것이 아니라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도전하는 것이었다.

선수의 개인 기술 역시 축구의 '기본' 중 하나이지만, 감독의 철저한 분석과 이에 따른 전술·전략 역시 중요한 '기본'이다. "메달을 노린다"는 박성화호의 준비되지 않은 '무모한 도전'은 결국 또 한 번의 '희망고문'이 되고 말았다.

박성화 감독이 느꼈던 개인기량의 차이는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다. 분명 선수 개인기의 향상을 위한 유소년 축구의 육성 등 제도적 개선은 한국축구의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다. 그러나 기량이 좋은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는 지도자의 '기본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선수가 있어도 별수 없는 법이다.

이제 '기적'의 시대는 끝났다. 기본기를 갖추지 않는 상황에서 또 다시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지 않을까. 올림픽 축구의 처절한 경험이 한국축구에 '보약'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 10일 이탈리아전에서 고전한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이근호 (사진제공:골닷컴)]



엑츠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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