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6.28 14:00 / 기사수정 2008.06.28 14:00
- 엑스포츠뉴스 유로 2008 FINAL : 그들에게 건다 - '무적함대' 스페인
[엑스포츠뉴스=전성호 스페인 담당 기자] '압도적인 분위기'
스페인은 현재 대회 유일한 무패 팀이다. 이탈리아와 8강에서 무승부를 거둬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것을 제외하면 모두 압도적인 경기력을 바탕으로 승리를 따냈다. 특히 스페인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치른 21번의 A매치에서 19승 2무의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간 동안 상대한 팀이 잉글랜드,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 그리스, 덴마크 등이었다는 사실이다.
기세에서도 결승전 상대인 독일에 밀리지 않는다. 8강에서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를 격파했고, 절정에 올라있던 러시아를 4강에서 다시 한 번 세 골 차로 물리치며 네덜란드와 스웨덴을 격침했던 '히딩크 매직'을 잠재웠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이런 기세와 자신감은 경기력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결승 상대인 독일은 조별예선에서 크로아티아에게 졸전 끝에 패한 적이 있고 터키와의 4강전에서도 비록 승리했지만 소심한 플레이를 보여 요하킴 뢰브 감독의 분노를 샀었다. 반면, 스페인은 이탈리아와의 8강전. 러시아와의 4강전의 0-0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차분하게 공수의 균형을 유지했고 앞서가던 상황에서도 공격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다.
징크스도 없다. 원정유니폼을 입으면 부진하다는 징크스와 '메이저대회 4강' 징크스까지 러시아와의 4강전 승리로 한 번에 모두 깨뜨렸다. 쩔쩔매던 징크스가 깨지면 승승장구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스포츠계의 상식. 그만큼 스페인은 심리적으로도 최고의 상태에 올라있다.
압도적인 전력
스페인의 최대 강점은 기복이 없다는 점이다. 한 명의 에이스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명의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패스를 중시하는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가능한 점이다. 러시아와의 4강전에서 터진 스페인의 세 골 역시 정확한 패스의 연결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페인은 현재 대회에서 유일하게 80%가 넘는 패스성공률을 자랑하는 팀이기도 하다.
원터치 패스로 밸런스를 꾸준히 유지하는 스페인을 따라가다 보면 상대팀은 지치게 마련이다. 이런 템포와 리듬에 이번 대회 모든 팀들이 끌려다녔다. 또한, 상대가 아무리 밀집된 수비를 펼쳐도 스페인은 유기적인 움직임과 패스로 이를 뚫어냈다.
중원은 스페인의 또 다른 자랑이다. 스페인은 수비형 미드필더 마르코스 세냐를 축으로 다비드 실바, 샤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황금 미드필드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아스날의 그 파브레가스!)가 백업 멤버로 뛰고 있을 정도.
그 중에서도 키 플레이어는 무적함대 공격의 엔진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실바. 실바는 최전방 공격수의 뒤를 받치면서 공간을 침투하고 공을 배급하는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친다. 물론 실바의 이러한 공격력은 샤비와 세냐 등 중앙 미드필더들이 보여주는 안정감 있는 경기 운영과 커버링에 의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중원을 장악하는 가운데 전방의 페르난도 토레스와 다비드 비야, 다니엘 구이사 같은 막강한 스트라이커들에게 연결된 패스는 좀 더 쉽게 슈팅과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스페인은 경기당 평균 슈팅 횟수와 평균 유효 슈팅 횟수에서도 대회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압도적인 선수층
중원과 공격진이 이처럼 강력한 동시에, 스페인은 수비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의 존재는 또 하나의 강점이다. 두 팀이 팽팽한 승부를 벌일 경우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다. 이 때 최근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전(前) 소속팀 아스날에서도 주전 자리를 잃었던 레만보다는 카시야스가 더 든든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간 불안했던 마르체나와 푸욜의 중앙 수비수 듀오는 경기가 거듭할수록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결코 이들 앞에서 쉽게 헤딩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며 루카스 포돌스키 역시 안드레 아르샤빈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세르히오 라모스와 이번 대회 최고의 왼쪽 수비수로 떠오른 후안 카프데비아는 스페인의 양측면에서 수비는 물론이고 위력적인 공격가담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다.
자국리그 선수 위주로 구성되던 예전과는 달리 현재 스페인은 프랑스 다음으로 많은 선수가 해외 리그에 진출한 나라다. 특히 토레스,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같은 선수들은 잉글랜드 축구를 경험하며 유연함에 강력함을 더했다. 이 점은 독일을 상대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라 리가 득점왕 구이사, 리버풀 주전 골키퍼 페페 레이나, 아스날의 리더 파브레가스가 벤치에 있을 정도로 선수층이 두터운 것도 스페인의 장점.
압도적인 사령탑
독일의 뢰브 감독은 좋은 감독이지만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경험과 지략에는 아직 비할 바가 아니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이기고 있을 때도 절대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지 않는다.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려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수비에 치중하게 되며, 이는 경기 운영에서 균형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종종 이어진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공격과 수비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 있는 전술을 추구한다.
상대의 전략에 말려 의욕이 앞서면 자칫 스스로 균형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런 전략을 펼치는 대표적인 팀 중 하나인 이탈리아는 8강에서 스페인이 골에 대한 의욕으로 밀고 나오길 기다렸지만 아라고네스 감독은 스페인의 공수 밸런스를 120분 내내 유지시키는 신중한 경기운영을 펼쳤고 결과적으로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기존의 스페인은 유로 2004에서 4-2-3-1, 2006 월드컵에서는 4-3-3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라고네스 감독은 스페인의 미드필더의 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4-1-4-1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원톱을 받쳐주는 공격적인 미드필더 4명과 그 밑에 강한 수비력을 갖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해 공수의 균형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스페인은 이 전형을 유로 조별예선 후반에 도입해 4-4-2와 혼용하며 사용한 이후 프랑스, 이탈리아를 모두 꺾었다. 4강전에서 공격수 비야가 부상당하자 아라고네스 감독은 파브레가스를 교체투입하며 이 전형을 사용하여 패스 연결은 물론이고 주도권 장악에 한층 힘을 실어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결승전 프리뷰
다비드 비야가 부상으로 결승전 출장이 불투명하지만, 스페인은 라울(레알 마드리드의 그 라울!)이 끼지 못한 공격진을 가진 팀이다. 토레스가 건재하고 러시아전에서 골을 터뜨린 구이사가 있다. 비야가 부상으로 결장한다면 아라고네스 감독은 4-4-2 대신 기존에 사용하던 4-1-4-1 포메이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토레스가 원톱에 서고 그 뒤를 사비와 파브레가스가 받치며, 양쪽에선 이니에스타와 실바가 뛴다. 그리고 그 아래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세냐가 굳은 일을 도맡을 것이다.
독일의 약점은 수비다. 독일은 이전 5경기에서 6실점을 했으며 크로아티아와 터키에겐 각각 2골씩을 내줬다. 문제는 이들보다 스페인의 공격력이 훨씬 강하다는 점. 지난 시즌 잉글랜드와 스페인 리그에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토레스나 구이사, 파브레가스의 공격을 독일 수비진이 감당하지 못할 경우 결승전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날지도 모른다. 특히 독일은 190cm가 넘는 장신 수비수들이 많아 제공권에서는 우위를 장악할 수 있지만 스피드가 떨어져 스페인과 같이 짜임새 있는 패스로 공략하는 팀에게는 고전할 수 있다.
여러모로 볼 때 스페인의 우승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과연 스페인은 최후의 승자가 되어 44년 만에 앙리 들로네 컵을 들어올릴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참고로 윌리엄힐, 레드브록스, 스카이벳 등 유럽축구 베팅업체들은 모두 스페인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사진=유로 2008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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